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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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책에서 임금에게 간언하는 대목을 보면, 대부분 속 시원하게 왕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고사(古事)를 인용해 돌려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왕의 비위를 맞추려는 소심함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참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오늘의 잘못을 바로 치고 들어가는 방법은 적진으로 돌격하는 것과 같아서 자칫 목적달성도 실패하고, 큰 희생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옛 일의 권위를 빌려서 말하는 것은 적진을 우회하여 포위하는 방법으로, 상대가 순순히 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옛 일을 빌려서 이 시대에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차고술금(借古述今)의 정신이고, 그 어떤 방법보다 매서운 현실참여의 유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문구와 일화를 고전에서 추려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사자성어를 소개하여 독자의 교양수준을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매 꼭지마다 사자성어와 함께 현 시대에 대한 지은이의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일간지의 칼럼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짧아서 쉽게 읽히고, 출퇴근 시간 등 짬을 내어 한 꼭지씩 읽으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우선, 언급하고 있는 사건들은 시의성을 잃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많다. 그리고 사자성어와 그에 대한 설명 이외에 덧붙인 말들이 오히려 중언부언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꼭지가 너무 짧아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대부분의 경우에는 지은이의 말이 일침(一針)이라는 제목과 달리 매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정민이라는 지은이의 명성에 비해 완성도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면 선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현재 나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연암 박지원의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고,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달려 있다. [得失在我, 毁譽在人]’ 참 연암다운 패기와 당당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벗어날까 전전긍긍하고, 실수와 실패가 두려워서 색다른 시도와 도전에 머뭇거리는 나에게 또 얼마나 정신이 번쩍드는 말인지! 실로 일침과 같은 문구였다.


  일상에 젖어서 하루이틀 보내다보면 문득 공허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중요한 결정들도 깊은 고민 없이 습관처럼 해치워버린다. 이런 날들이 누적되어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걷고자 했던 삶의 궤적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 몸과 마음을 성찰할 수 있는 준거틀이 필요하다. 이 책이 제시하는 준거틀은 바로 동양의 고전이다. 선인들은 전미개오(轉迷開悟)하여, 심입천출(深入淺出)하란다. 그리고 역경을 만나도 감이후지(坎而後止)라니…! 감히 내가 범접할 경지가 아니지만, 일침과 같은 그 조언들을 받아들여 인격의 한 단계 성장을 기대해본다. 못내 아쉬움이 남는 책이지만 일단의 유익함이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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