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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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懲毖'란 <시경> '소비小毖'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즉, 징비록은 유성룡이 자신이 겪은 전란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다시 분석하여 후대에 교훈으로서 남기려 한 것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7년 전쟁)의 십여년 전부터 노량해전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하면 보통 이순신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우리가 결국에는 이긴 전쟁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국사 교과서나 우리들의 사고에서는 의도적으로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임진왜란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고, 우리가 질 수도 있었으며, 그나마 영토를 지킨 것은 명나라 군대의 도움도 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나라꼴은 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전란이 없었기 때문에 군사의 훈련이며, 전쟁 장비며 성이며 모든 것들이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그나마 전쟁을 대비해 축조된 성들도 요즘 말하는 '전시행정'으로 평지에 크게 지어놓았다. 전쟁에 대비한 어떤 짜여진 대비는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도 무지했다. 일본은 조총으로 무장해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그 때 조선에서는 활을 쏘고, 짧은 창으로 대비하는 것에 그쳤다. 그것마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유성룡이 신립에게,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가지고 있으니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라고 말하자, 신립은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라고 답했다고 한다. 얼마나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소린가. 결국 신립은 평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의 조총에 맞섰다가 참패하고 목숨까지 잃었다.

뛰어난 장수도 없었다. 징비록을 보면 유성룡이 신립과 이일이 당시에 가장 뛰어난 맹장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립은 용감하긴 했지만 전략이 없었고, 이일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로, 왜군을 만나기만 하면 도망가는 처지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순신을 비롯해 여러 의병장들이 나중에 조선의 체면을 세우기는 했지만 한 나라에 이 정도로 뛰어난 장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현실인 것이다.

유성룡은 전란이 있기 전부터 신비로운 징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 신비로운 징조를 인간이 몰랐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전란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비로운 징조들이 아니더라도 조정 돌아가는 꼴과 군사들의 현실 들을 보았으면 '지금 전란이 일어나면 당해낼 수가 없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이미 전쟁의 징조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징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유성룡이 후대에 교훈으로 주려 했던 사실들은 성을 어떻게 축조하고, 지형을 어떻게 이용하고, 포대를 어떻게 쌓느냐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유비무환의 정신.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찾으며, 시류를 민감하게 주시해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하며, 나라 안으로 부터 기강을 다지는 것. 이 것이 유성룡이 말하는 국가와 개인의 전쟁대비법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이순신에 대한 대하드라마가 방영되고, 이순신에 대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하면서 임진왜란과 이순신, 원균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드라마 또한 이순신과 원균을 재평가하는 작업에 앞장서고 있고, 한 쪽에서는 역사왜곡이라고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잘 모르겠지만 이순신을 '성웅'에서 '인간이지만 훌륭했던 장군'으로 되돌려 놓고, 원균을 '동물'에서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옳지 않나 싶다. 물론, 기록과 여러가지 근거에 기초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유래없는 이 임진왜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징비록에서 유성룡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에도 옮겨졌으면 한다. 고전이 현재에도 가치있는 것은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고전을 새로운 감각으로 번역하고, 여러 삽화와 자료를 첨부한 서해문집 출판사의 '오래된 책방' 시리즈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고전을 충실하게 계속 번역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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