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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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장 같은 울분을 품고 살아도 그 울분이 비가 되어 적시는 광경은 인생에서 파란과 해원의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그렇군요. 햇살을 보려면 먹구름을 참고 견뎌야 하나 봅니다. 그렇군요. 햇살을 보려면 먹구름을 참고 견뎌야 하나 봅니다. 마침 ‘비장悲壯’의 사전적 뜻풀이를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있군요. ‘슬프면서도 그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하다.’ 그래서 제가 좋아합니다, 비장한 미학을 말입니다. 억눌러서 장한 아름다움. 제가 혹애하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 이 선생은 이제 아시겠지요.-25쪽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손 선생님은 무슨 늪을 겪어보셨나요? 제가 만나본 것은 성실성의 늪이예요. 성실함만으로는 답이 찾아지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성실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황이지요. 슬럼프인데도 쉬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끝없이 노력해요. 성실 외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예전엔 즐거워서 하던 일이었는데, 점점 스스로를 잠식하는 고통이 되고 맙니다.-80쪽

단원이 글씨 오른쪽에 호리병 모양의 도장을 찍었는데, ‘빙심氷心’이라 새겨져있습니다.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 옥병에 들어있다네一片心在玉壺’라는 시구에서 따온 말인 즉, 세상이 어떻든 누가 뭐라 하든 단단하고 맑은 심지는 변치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이 선생은 어떠신가요. 저는 저러고 싶습니다. 단원 그림이 제 마음의 자화상이랍니다. 저의 꿈이 야무진 건가요.-108쪽

늙음은 낡음이 아니지만 낡으면 늙습니다. 닳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고집이 세고 견문이 좁으면 낡습니다. 늙음은 나쁘지 않지요. 한낮의 해가 저물면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잖아요. 노을은 뒤를 보여주는 반사경입니다. 대낮의 들뜸을 가라앉히지요.-123쪽

재미난 얘기가 있습니다. 선조 대에 예조판서를 지낸 이호민은 흰머리가 나는 족족 뽑았다고 해요. 이를 본 한음 이덕형이 혀를 끌끌차며 퉁을 줍니다. "벼슬이 그만큼 높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다고 센머리를 뽑습니까." 이호민이 정색하며 대답합니다. "사람을 죽인 놈은 반드시 죽이는 것이 국법입니다. 백발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여 온 놈입니다. 저는 법에 따라 처단하는 것입니다."-129쪽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경우가 있지요. 행복은 마음에 있는 게 맞나 봅니다. ‘Happiness'란 영어가 ’Happen'에서 비롯됐다면서요.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이란 거죠, 행복은. 밖에서 온 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운입니다. 굴러온 호박이 행운이고, 가지 나무에 열린 수박이 행운이죠. 행복은 바랄 바를 바라는 겁니다. 바라되 분수껏 바라면 행복은 자기 마음의 작용이라 언제는 얻을 수 있지요.-153쪽

자족해서 행복합니다. 족足하다는 게 무엇입니까. 한비자가 말했지요. 족함을 아는 것이 족이라고. 『도덕경』에도 나옵니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도록 누릴 것이니라.’ 이런 말은 석가도, 묵자도 다 한 얘기입니다. 다함없는 행복은 없습니다. 모자라는 데서 족해야 행복해집니다.-159쪽

‘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벽이 많다’고 해요. 중국의 문인 장대張岱는 이런 글도 남겼더군요. // ‘사람이 벽이 없으면 사귈 수 없다. 깊은 정이 없기에 그렇다. 사람이 흠이 없으면 사귈 수 없다. 참된 정이 없기에 그렇다.’ -207쪽

조선 한량에게는 마마 호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지요. 바로 정실입니다. 귀가한 남편의 행색을 두 눈 부릅뜨고 살피지요. 정조 연간의 시인 이옥李鈺은 정실의 눈썰미를 기막히게 표현했습니다. // 술만 마시고 왔다지만 歡言自酒家 // 기생과 논 줄 나는 알아요 儂言自倡家 // 어찌하여 두루마기 소맷자락에 如何汗衫上 // 꽃처럼 연지가 물들었나요 儂脂染作花 // 이 선생에게도 진작 밝혔듯이 저는 일생일업一生一業이 음풍농월吟風弄月입니다. 누가 묻더군요. 어찌하면 오래토록 풍월을 즐길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제가 답했지요. 정실을 두지 않는 게 아니라 연지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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