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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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과 노회찬의 탈당. 홍준표의 당대표 당선. <나는 꼼수다>의 히트. 이 모든 것들을 김어준은 이 책을 통해 이미 예언하고 있다. 그의 범상치 않은 풍모에서 이미 도인의 풍모가 느껴지는데 거기에다 예지력(?)까지 더해지니 정말 야사에나 나올 법한 ‘거사(居士)’가 따로 없다. 보통 사람의 시선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외모와 좌중을 뒤흔드는 입담, 호쾌한 웃음에서 엿보이는 자신감, 스스로 ‘무학의 통찰’이라고 표현하는 명석함까지 김어준은 분명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런 모습들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앉은 자리에서 한숨에 읽어버릴 만큼 재미있고 통쾌하다. 한편으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의의는 단지 현 집권세력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읽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하고,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지 않는다.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진보세력에 대한 통찰과 고언이다.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엄격성, 교조성에서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어준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타협하고 설득해야 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위정척사의 의병장처럼 자신의 선명성과 투쟁성만을 내보이는 것만이 과연 최선의 길인가. 현재의 고통을 치유할 생각보다 오직 역사와 말하겠다, 미래에는 우리의 희생을 알아줄 것이라고 말하는 자세는 독재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혹은 미움과 불신 때문에 서로 경원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작은 차이 때문에 우리 정치의 큰 틀을 바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총괄해서 정리하자면, 이념은 서구의 것이되, 그걸 수행하고 주장하는 방식은 여전히 성리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 193쪽
 
   

  물론 현실은 더 복잡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현재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들이 나중에 되돌아보면 의미 있는 것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서로 몰아세우지 말고 서두르지도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보자. 충분히 듣고 충분히 생각해보자.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나의 역량이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의 씨앗이다. 진보세력 전체의 화해와 통합이, 집권할 수 있는 역량이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정치적 기회가 와도 그것은 악몽일 뿐이다. 천천히 하지만 진실하게, 해보자. 쫄지 말자. 정말, 가능, 하다.

   
  카테고리를 어떻게 하면 잘 나눠서 입지와 스탠스를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카테고리 자체를 확 갈아엎고 구조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짜는,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어. 지금 시대는 바로 그걸 요구하고 있어. 이명박 때문에, 그리고 덕분에, 그런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 찬스를 놓치면 안 돼. 이거 역사적 찬스야. 결핍이 거대한 만큼, 그 크기만큼 거대한 찬스야. 그런데 이런 역사적 찬스에 자기 손으로 그걸 못하잖아, 그럼 시대가 그걸 강제한다. 시대에 떠내려간다. 그럼 죽는 거야. 잉여 되는 거야. 아, 그게 막 보여. (웃음) 이 거대한 흐름이 왜 안 보일까. 안타깝다. (웃음)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나 이념이나 이런 거 그만 떠들고, 자기 존재 다 걸고, 맞부딪쳐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 해. 그게 진짜 혁명의 자세야. -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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