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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ㅣ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한자오치 교수는 중국에서 『사기』 연구에 최고의 권위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단순히 『사기』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은이의 해석과 평가를 곁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조고가 이사를 꾀어 음모를 꾸민 이야기, 홍문에서의 연회에 대한 이야기, 패왕별희의 이야기 등 사마천의 서술에 대해 그냥 그런 일이 있어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일들이 있었을까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가하면서 설득력 있고 흡입력 있는 강의를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사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나 설사 『사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뿐만 아니라 중요 사건에 대해 첫째, 둘째 따져가며 조목조목 의미를 따져가는 자세는 책을 깊이 읽는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은 저자가 북경TV ‘중화문명대강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했던 원고를 기초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중국 대중들을 상대로 ‘중화문명’의 일부인 『사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중국인의 자긍심을 드높일 만한 서술과 비학술적인 용어들의 사용이 자주 눈에 띈다. 예컨대 만리장성의 끝이 평양에 이른다는 서술과 창해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서술(본문 240쪽)은 학술적인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나 마치 확정적인 사실인양 말하고 있다. 또한 사마천은 진보적인 민족관념의 소유자였고, 『사기』에 남아있는 그러한 인식이 2000여년간 중화민족이 ‘우애로운 대가족’을 이뤄서 사는 데에 이바지했다고 서술(본문 324쪽)한 점은 조금은 낯뜨거운 해석이다. 마지막으로 사법부라는 표현도 자주 눈에 띄는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사법부’라는 개념에 들어맞는 기관이 과연 진한시대에도 존재했는지 의문스럽다. 아마도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기 때문에, 법을 적용하여 죄인들에 대해 판결하고 처벌하는 일을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관리를 ‘사법부’로 표현하여 대중의 이해를 도운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용어를 책에도 고집한 것은 당시 중국에 서구의 삼권분립과 같은 정치체제가 존재했다는 환상을 불러 일으켜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 책은 ‘돌베개역사고전강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고전을 오늘의, 우리의 시각으로 읽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아래에 인용한 신영복 선생의 추천의 말도 가슴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 책이 과연 ‘『사기』의 세계로 안내하는 가장 믿음직한 지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고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지만 그 누구도 그리스민족의, 로마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중화민족’에 대한 찬사는 이 책의 ‘믿음직한 지도’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생각된다. 또한 책에 담긴 표와 지도는 너무 얼렁뚱땅 그려놓은 듯 조잡하다. 사전 지식을 배제하고 이 책에 수록된 지도와 표만 보고 그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한다면 이 책의 편집자라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양’이 ‘전문’적인 것보다 수준이 낮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멋들어진 추천의 말이 무색해질 만큼 이 책은 스스로 격을 깎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사기』연구의 권위자 이인호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을 옥에 비유했는데, 왜 이런 옥의 티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지 아쉽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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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물은 미래에서 흘러와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과거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A’라고 한다면 미래는 ‘非A’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모순과 갈등을 지양한 ‘새로운 현재’가 곧 미래입니다. 미래는 오늘과 질적으로 판이한 B, C, D일 수는 없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입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기 위해서도 고전 공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 본문 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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