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 특히 규칙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의 방향과 결과도 결정이 된다. 누구도 자기가 내리는 결정이 의도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내려진 결정들이 모두 불가피한 결정은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렸더라면 지금 다른 모습의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들이 확고한 증거와 제대로 된 논리에 근거한 것들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그런 후에야 기업, 정부, 국제기구 등에도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16쪽

우리는 어떤 규제 이면에 있는 도덕적 가치에 수긍하지 않을 때 그것을 규제라 여긴다.-25쪽

유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은 1995년 한 TV 인터뷰에서 이 점을 훌륭하게 정리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은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서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입니다. 30년 후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보상이지요." -55쪽

그러나 경제 활동을 하는 데 이기심만이 유일한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도 수없이 많다. 물론 이기심이 가장 중요한 동기일지는 모르나 유일한 동기라 할 수는 없다. 정직성, 자존심, 이타심, 사랑, 연민, 신앙심, 의무감, 의리, 충성심, 공중도덕, 애국심 등은 모두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다.-74쪽

"사회 공동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남자, 여자라는 개인, 그리고 가족 단위만 존재할 뿐이다."라는 대처 여사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없이 고립된 이기적 존재로 살아 온 적이 없다.-80쪽

미국식 경제 모델을 지지하는 주장은 미국인의 생활수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이 세계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한 나라의 평균 소득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따지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생활수준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소위 말하는 미국의 우월성은 상당히 빛을 잃고 만다. -152쪽

문제는 그냥 시장에 맡겨 두면 상류층의 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정도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경제정책연구소(EPI)조사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06년 사이 미국 총소득 증가의 91퍼센트가 소득 순위 상위 10퍼센트에게 흘러 들어갔다. 더욱이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한 몫은 총소득 증가의 59퍼센트에 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에는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금 징수와 소득 이전이 시행되기 전의 소득 분배를 보면 벨기에와 독일은 미국보다 더 불평등하고,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미국과 비슷하다. -196쪽

우리에게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당사자인 경제 주체들보다 관련 상황을 반드시 더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규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제한된 정신적 능력에 대한 겸허한 인정인 것이다.-236쪽

모든 것을 사회 경제적 환경에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또한 말도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기회의 균등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285쪽

자본주의 경제를 운용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이런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중에서도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경제 성장을 늦추고, 불평등과 불안정을 고조시켰으며, (때로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 위기를 더욱 빈번하게 초래했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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