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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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출간 되었는지조차 몰랐던 책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이 책에 대한 신문 광고를 보고 꽂히고(!) 말았다. 도발적인 제목과 인터뷰라는 형식, 조국이라는 인터뷰이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인터뷰는 구어체라 이해하기 쉽고 정제된 글에서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어서 좋다. 책에 소개된 조국의 분류방법 - 생각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인간성이 좋은지 나쁜지라는 기준 - 에 따라 사람을 네 종류로 나눈다면 조교수 본인은 아마도 생각이 진보적이고 인간성도 좋은 쪽에 속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잘생기고 키까지 크니 세인의 호감을 끄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나도 그간 그의 여러 칼럼을 읽어보며 호감을 가졌었는데 이제 보니 말도 참 잘하는 것 같다. 사전에 질문이 고지되지 않은 인터뷰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여러 분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은 승자독식의 사회, 불안사회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패자부활전도 없고, 무제한급과 최경량급이 같은 링에서 경쟁하는 치열한 경쟁사회.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과실을 독식하는 눈물 없는 사회. 그 경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언제 누구에게 빼앗길지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지금가진 것으로 충분할지 어떨지 모르니 고위계층이고 하위계층이고 있는 대로 돈을 긁어모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나 살기도 바쁜데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이웃들에게는 냉담할 수밖에. 공동체라는 말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우리는 서로 연대하지 못한 채로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경쟁과 불안은 한 현상에 대한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조교수는 경쟁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경쟁하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패자부활전을 용납하고 공정한 룰을 만들어 그 아래서 경쟁하자고 말한다.

  조교수가 제시하는 진보의 집권전략은 유연함인 것 같다. 진보가 애써 무시했던 ‘욕망이 있는 인간’을 인정하고 거기에 대한 진보만의 해법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무상급식과 같은 생활과 밀접한 진보적 가치의 탐색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장하준 교수는 인간의 이기성만을 상정하는 주류경제학에 대해 인간은 이타적이기도 하다며 다른 목소리를 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교수는 인간의 이기심에는 애써 눈을 돌리는 진보에게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다며 대안을 찾자고 말한다. 어쩌면 두 사람은 극단으로 달리는 두 마차를 가운데로 견인하여 사람 살 맛 나는 자본주의를 만들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를 포함하여 일반인들이 자칭 진보정치인에게 가지는 감정은 복잡하다. 진보가 주장하는 가치에 대해 동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실 진보의 엄격함, 원칙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조교수는 정치의 속성을 이해하고, 좀 더 탄력적으로 접근하자고 주장한다. 보통사람과 서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원칙은 확고히 지키되 그 수단에 있어서는 유연함을 갖추는 정치를 하자는 데 나도 동감이다.

   
  정치와 정책은 바로 욕망을 가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전제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도덕주의적으로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고 접근하면 실패하기 마련이죠. – 본문 135쪽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 본문 253쪽
 
   


  책을 읽다보니 조광조가 떠올랐다. 조광조는 정치와 학문이 분리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정치인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근본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던 조광조가 학자로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조광조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 정치가로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물론 조광조의 죽음이 이후 조선사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상당하지만 말이다. 굳이 지금 조광조를 떠올리는 것은 조국 교수를 정치판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와 학문이 홀로 서기에 힘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정치가는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학자를 정치판으로 떠밀고, 학자로서의 명성만으로 충분치 않은 교수들은 자발적으로 정치판을 기웃대기도 한다. 물론 조국 자신이 원한다면 별개의 문제지만 스스로 권력의지가 없다고 말하는데도 오연호씨가 자꾸 정치를 권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우리가 조국을 평가하는 이유는 정치인이 아닌 학자가 오해를 받을 것을 각오하면서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조교수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조교수가 등떠밀려서 정치에 발을 담그는 순간 조교수 개인이나 그가 말하던 가치들은 순식간에 진의를 의심받게 될 수도 있다. 예쁜 꽃이 보기에 좋다고 꺾어다가 집마당에 심었는데 토양이 맞지 않아 그 꽃이 죽어버린다면 어떨까. 그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조교수가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카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정치판으로 떠밀지 않았으면 한다.

  정명이라는 말이 있다. 군은 군답게, 신은 신답게 민은 민답게 살자는 것인데 사람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보여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너무 보수적인 것 같다. 하지만 태생계급에 묶어두지 않고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현재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역동적인 정명’의 가치를 지금 이 시대에 세우는 것은 어떨까. 시민은 시민, 교수는 교수,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각자의 생활에 영역에서 진보적 가치를 견지해나가는 것이다. 진보란 원래 하나의 정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정의롭게 자신과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것 아닌가. 모두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정명의 기치를 올린다면, 그 굳건해진 진보의 토대위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진보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진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거칠게 정의하자면, 남북문제에서는 군축,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경제에서는 자유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시장에서 패자를 아우르는 정책을 추구하고, 양심·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시한 각종 정치적 기본권의 확대·강화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입니다. 계급적으로 보면 진보는 강자나 부자의 편이 아니라 약자나 빈자의 편입니다. 특권을 가진 엘리트의 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법학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서민과 보통 사람이 자존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봅니다. 진보의 길이 곧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어디에 가서든 공개적으로 진보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 본문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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