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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 여씨와 유씨 - 건설과 숙청 ㅣ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작가의 노력이 매우 돋보이는 책이다. 작가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야기를 낯설게 보려고 애쓴 것이 잘 느껴진다. 그것은 ‘여씨와 유씨’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에게 여후는 척부인을 천인공노할 방법으로 죽인 희대의 악녀라고만 기억된다. 하지만 작가는 여후의 눈으로 당대를 바라보려고 시도하면서 역사적 시선에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초한쟁패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아닌 진평을 화자로 삼은 것도 흥미롭다. 또 하나,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고증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복식을 고증하여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건에 대해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점이나 복식을 엄격하게 고증하려고 노력한 점에서 시리즈에 대한 작가의 자부심과 결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이 책을 ‘기름기를 쪽 뺀’ 요리로 표현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 책은 기름기 없는 닭가슴살과 같다. 닭가슴살이 근육형성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퍽퍽해서 이 부위에 대한 호오는 극명하게 갈린다. ‘몸짱 만들기’와 같은 특정한 목적을 두지 않고서야 닭가슴살만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만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도 그렇다. 우리는 닭가슴살같이 먹기에 퍽퍽한 지식들을 학술서나 논문으로 접할 기회도 있지만, 굳이 만화라는 형식을 찾는 데는 퍽퍽한 고깃살을 맛깔나게 요리한 ‘닭가슴살 샐러드’와 같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닭가슴살 본연의 맛, 다시 말해 순정한 지식 또는 엄격한 역사적 시선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음식이 거칠다. 엄정한 사실과 유익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만화 본연의 가치에 대한 독자의 기대는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고 생각된다. 사실 초한쟁패의 내용은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들어본 내용이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새롭게 전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잘 이야기하려해도 독자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에 기대어 일단 팔짱을 끼고 듣기 때문에 노력만큼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4권부터 다룰 ‘문경지치’나 ‘한무제와 곽광’과 같은 소재는 다르다. 문경지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많을 테고, 한무제 시대를 재미로 즐겨 읽는 사람도 많지 않다. 때문에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이 시대를 그려내는 것은 작가로서는 자신의 능력을 더 돋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작가의 말대로 진한시대는 중국의 고대,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고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이 시기를 하나의 기획물로 만드는 작업은 사실 그래서 그 자체로 흥미를 돋운다. 또한 의미도 깊다. 누구보다도 더 이 시리즈에 기대를 품고 있는 독자중의 한 명으로서 - 지금까지는 다소 아쉬움도 있었지만 - 끝까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펼쳐질 시리즈를 지켜볼 것이다.
사족. 이 책에 관련된 서평들을 읽어보다가 마노아님의 서평(http://blog.aladin.co.kr/manoa/4354500)이 공감이 가서 덧붙인다. 1권부터 3권까지의 시리즈를 보면, 이 시기를 처음 접하는 독자보다 이미 알지만 좀 더 새로운 시선을 덧붙이고자 하는 독자에게 적합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