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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오랑캐의 옷을 입었소 - 이릉과 소무
도미야 이따루 지음, 이재성 옮김 / 시공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일간 신문의 책 섹션의 한 귀퉁이에서 이 책을 찾아낸 것은 행운이었다. 독특한 책 제목에 마음이 끌린 때문이지만, 보고 나서는 책 내용에 끌려버렸다. 이 책은 이릉과 소무를 주인공으로 한 책이다. 이릉은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계기(?)'를 준 인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소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었다.
보병 오천으로 흉노의 수 만의 기병과 맞붙어 쉽게 꺾이지 않고 극적인 탈출을 이룰 수 있었으나 결국 흉노에 항복할 수박에 없었던 이릉. 특사 자격으로 흉노를 찾았다가 억류되어 본의아니게 포로생활을 하게된 소무.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다는 한 통의 편지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리고 흉노와 한의 대결을 죽 따라가면서 그 역사 속의 이릉과 소무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 사마천과 무제 같은 주변의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등장 시킨다. 그리고 이릉과 소무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다는 편지와 시,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등 역사서까지 보여주며 이릉과 소무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한 사람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항복하였다가 자신의 가족들이 '족형'을 당하자 흉노를 따르게 되었고, 한 사람은 투항 요구를 끈질기게 거부하며 지조를 지켰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애절한 감정과 사연들. 그리고 그 애절한 감정을 직접 보여주는 '시와 편지' 하지만 이 시와 편지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리고 이 이릉과 소무의 설화의 중요한 조연인 '한무제'의 형상도 후대에 변화되어 굳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한 편의 소설 같지만 저자는 여러가지 사료들을 제시하고 스스로 발로 뛰어 얻은 자료들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을 잠시도 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릉과 소무를 둘러싼 상황과 흉노와 한,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라는 대국(大局)을 적절하게 보여주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훨씬 유익했다. 책의 초반에는 이릉과 소무를 따라가다가 후반에 '이릉 설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로 갑자기 이야기의 주제가 바뀌어 약간은 혼란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또 내가 그 분야에 잘 모르고 번역하기 전의 원서를 읽어보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번역이 읽는데 전혀 지장 없이 잘 된 것 같다고 느꼈다. 또, 책의 두께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게 저자가 책을 잘 쓴 것 같아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