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지은이의 이름을 자주 들어보았지만 정작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읽어야지 생각하고 목록에 적어두긴 했지만 지금까지 인연이 닿지 않았다.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마음이 어지러워 글자마저 읽히지 않고 해서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그림이 많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서양화로 시작했던 여정이 뜻하지 않게 우리 그림으로 향하게 되었다. 책도 얇고 예쁘장해서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고 덮어둘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걸?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이건 반어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라 정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지은이가 말하고자 한 것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헛헛해진다.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내가 인간관계를 어렵게 느끼는 뿌리는 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가정부터가 틀렸다는 의심이 들곤 한다. 관계가 어렵고, 소통이 힘든 것은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설정해놓은 경계 안에 상대방을 밀어 넣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은 아닌가? 대화라는 이름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정작 듣지는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의식을 느낀다. 다시 말해, 말을 하는 것 이전에 공감하고 교감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 관계를 어렵게 하는, 다시 말해 소통을 망치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굳이 이런 경험을 늘어놓는 것은 이 책이 나에게 이 문제를 다시 꺼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야말로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쓴 것이 아니라 느끼는 그대로 쓴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림의 작은 상징하나, 동작하나, 표정 하나하나에서 화가의 속뜻을 풀어낼 수 있었겠나 싶다. 겉으로만 이해하고, 또 그것을 쉽게 입에 담을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 느끼고 진정 좋아서 파고들어간 글은 그 느낌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후자에 가까웠고, 그것은 우리 전통화와 지은이 사이의 진한 소통 또는 관계의 기록으로 내게는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해묵은 문제를 떠올리게 된 이유 말이다.


  사실 나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있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우리 역사, 우리 문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느끼고 있을 걸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사실 우리 미술사, 문화사, 생활사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은 고등학교 때나 대학에 와서나 전혀 없었다고 해야 맞다. 그저 정치사, 경제사 뒤에 딸려오는 한두 페이지 정도의 외우기 '귀찮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시험대비용으로 시대별로 유명한 그림이나 화가의 이름들을 외우기에 급급했고, 지금까지도 정작 이름을 외운 그림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책에서 다룬 김홍도의 '씨름'만 해도 그렇다. 고등학교 교과서 표지에 있었던 그림이었지만, 그 위에 낙서하기에 바빴지 정작 그 그림을 느껴보기나 했는가. 그림, 음악, 문학, 예술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먼저인데 머리로 외우려고 했을 뿐이었다. 사람 대하는 방식이나 그림을 대하는 방식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의 의미가 남달랐던 것 같다. 이름만 듣던 그림들을 실제로 보게 되니 생각보다 흥미롭고 깊었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단순히 금강산을 그린 풍경화가 아니었고,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선비의 기개 이상의 사연도 담겨있었다. 김득신의 '야묘도추도'는 또 얼마나 정겹고 재밌으며 신윤복의 '미인도'는 이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넋을 쏙빼놓다니! 그 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떠올리니 김홍도의 '황묘농접도'나 '송하맹호도' 더욱 애틋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 그림에도 이런 사연이 있고 색깔이 있는가. 내가 눈은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구나 싶어 우리 그림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박탈감도 찾아왔다. 지은이가 화폭에서 느낀 그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에서다. 이 박탈감의 근원도 마음으로 느끼기 이전에 뭔가 알아내고 캐내고 외워서 백점 맞고자 하는 욕심의 발로인가. 그저 느끼는 것,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왜 이렇게 어려워지는가.     

 

  그냥 그림책 한 권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가슴이 책을 덮을 때 들춰보니 뜻하지 않게 묵직해져있었다. 우리 그림, 더 나아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넘어서 사물 또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것 같다. '좋은 작품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고 했던가? 대유학자의 초상을 보니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자연스럽게 허리가 곧게 펴지더라고 했던가? (본문 115쪽) 진정 그렇다. 앞으로 지은이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계획이다.


  사족이지만 책에 대해서 덧붙이면 책의 구성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큼직하게 컬러로 그림을 볼 수 있게 해놓은 것도 마음에 들고, 지은이가 글에서 말하고 있는 부분만 잘라 확대해서 덧붙인 것도 좋았다. 그림마다 이광표 기자가 덧붙인 작가 설명도 글에 들어가며 또는 나가며 작가에 대해 눈에 담을 수 있어 그것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우리 그림만큼이나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고, 덕분에 지은이의 다른 책들에 대한 소장 욕구도 더불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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