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김태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서두와 결론에서 비판하고 있는 ‘행동주의 심리학’과 우리나라 주류심리학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심리학 전공자도 아니고, 심리학에 대한 많은 책을 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사람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노무현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이후에 나는 노무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책의 출간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더군다나 덤으로 오바마까지 분석해 놓았다니 두 배로 반가웠다.

  저자는 노무현은 결점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건강했다고 한다. 성격유형은 MBTI에서 ENTJ로 지칭되는 속칭 ‘장군형’인데, 그 성격유형이 가지고 있는 단점마저도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심리적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회불안이었다. 노무현의 아버지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분이었지만, 그 때문에 가난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질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노무현의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원망했다. 그것은 일종의 패배주의였다.

   
  아버지의 길을 가면서도 어머니를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었다. 성공 사례는 아버지의 좌절을 보상해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끈질긴 패배주의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점점 더 심하게 성공 사례에 집착하게 되었다. – 229쪽
 
   

  여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 중에 하나지만 어린 노무현에게 이 문제는 큰 충격이 되었던 것 같다. 왜 정의로운 사람은 실패하는가에 대한 문제. 노무현의 명연설로 불리는 대선후보 연설에도 그런 문제의식의 일단이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노무현은 그 두려움, 심리적인 문제에 맞서고자 했다. 반드시 자신이 승리해서 정의가 성공한다는 사례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노무현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고, 아픔이었는지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이 그의 말대로 ‘오랜 생각’일 수밖에 없음도.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바마의 사례도 노무현과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비슷한 지점에서 만난다. 오바마는 노무현과는 달리 내향적이고 감정적인 INFJ다. 이 성격유형은 ‘순교자형’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오바마 역시 어린 시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조부모님과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지지와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방황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고질적인 심리적 문제는 역시 아버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어떻게 극복하고 화해하는가의 문제, 사실 그것은 자신의 뿌리와 존재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내면의 심리적 문제를 들여다보고 아버지와 결국 화해함으로써 그 것을 동력으로 삼아 진보운동, 사회개혁을 꿈꾸기 시작한다.  

   
  자기의 내면과도 화해하지 못하면서 세상과 화해할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자기의 내면세계도 변혁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변혁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내면을 통합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두 가지를 통찰해야 한다. 그 하나는 무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다. 무의식과 사회에는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혀온 심리적 병의 원인이 숨어 있다. 마음의 병은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 있고 사회모순에서 오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하고 사회모순을 의식화해야 한다. 만일 두 가지 중 하나를 회피한다면 우리 마음의 반 이상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 112쪽
 
   

  이 책을 보고 또다시 느끼는 것은, 어린 시절 심리적 안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밖에서 뛰어놀게 하는 것, 그 존재자체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매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몸으로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 앞으로 부모가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해주었고, 동시에 부담도 됐다. 그리고 동시에 누구에게나 심리적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문제와 맞서느냐 회피하느냐가 운명을 가른다는 것이다. 오바마와 노무현이 그랬듯이 우리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그것에 맞서서 해결해야하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사회를 변혁해나가야 함을 알게 한다. 

   
  역시 큰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든 '행복한 유년기'만은 보장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이 땅의 부모들이여. 제발 어린 시절만큼은 자녀들이 또래들과 어울려 마음껏 뛰놀게 하자. 괜한 출세욕으로 아이를 주눅 들기 좋은 환경으로 밀어 넣지 말자. 심리학적 견지에서,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이란 아무래도 '아이의 행복한 유년기를 사수하라'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 49쪽  
   

  저자의 심리분석은 매우 공감이 간다. 물론 정작 노무현 자신은 그 심리적 기제를 저자만큼 알지는 못했을 테고, 이제는 확인할 길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회지도자, 더 나아가 온 국민에게 심리학 주치의가 한 명씩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MB에게 심리주치의가 한 명 붙는다면 현실이 좀 달라질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고. 책을 덮으면서 다만 아쉬운 점은 조금 편향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편향적이라는 말이 좀 거칠지만, 저자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것 같다. 저자의 정치적 성향도 거기에 일조했겠지만, 서거한 노무현을 분석하면서 슬픔과 안타까움과 비분강개함이 없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금만 힘을 뺐더라면 싶다. 조금만 감정을 절제했더라면 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책의 객관성과 신뢰성도 담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노무현과 오바마의 심리를,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흥미 있고 진실한 책이었음을 동시에 평가하고 싶다.  

   
 

성격보다는 심리적 건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겠다. 16가지 성격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들면 그 어떤 성격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노무현과 오바마가 훌륭한 것은 그들이 특정 성격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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