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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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미있는 소설이다. 악당이라고 등장하는 놈들마다 멍청했고, 주인공 샤오 빈은 전혀 영웅 같지 않았다. 그들이 각자의 곤경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은 마치 머리끄덩이를 부여잡는 초등학생들의 싸움 같았다. 그들의 몇 달간의 전쟁은 진지해지면 진지해질수록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리우 당서기와 마 공장장, 양 첸 인민공사 당서기와 일개 정비공 샤오 빈이 대적하게 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다. 공장에서 일한지 6년차인 샤오 빈이 당연히 따낼 것으로 알았던 공공 아파트 배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고지식하고 꽉 막힌 돈키호테 같은 인물인 빈은 이 문제에 분노한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본능을 이용하여 상부에 탄원하고, 신문에 리우와 마에 대한 풍자화를 기고하는 등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그러나 그런 시도에도 리우와 마 공장장은 꿈쩍도 않고, 오히려 빈을 미친놈 취급하며 끝없이 괴롭힌다.

  이 모든 싸움의 끝에서 빈은 모든 곤경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고향을 벗어나 더 큰 꿈을 찾아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싸움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던 ‘아파트’도 얻지 못한 채 양 첸의 회유에 넘어가버린다. 승진을 약속하는 양 첸의 사탕발림에 양 첸이 이미 리우와 마와 한통속임을 까먹어버린 듯 너무도 쉽게 양 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 승진이라는 것도 리우와 마보다 한 단계 낮은 것이었다. 하지만 샤오 빈은 그것을 알면서도 양 첸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인다. 몇 달 간의 일들이 모두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다.

  이 책의 원제가 ‘연못에서(in the pond)'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빈과 리우 등이 일으키는 풍파가 결국에는 한 마을에서 일어난 소동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싸움의 과정에서 빈은 자신의 예술가적 소질을 발견하고 대학에 입학할 기회까지 얻는다. 물론, 그 기회가 리우의 훼방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종국에는 그 모든 것을 뒤집을 만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그마한 이익에 눈이 멀어 더 큰 것을 놓치고 만다. 다시 연못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술에 무지하고 자신의 실수를 호시탐탐 노리는 지도자를 위해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못은 평화를 유지할 것이다. 먹이가 부족하지 않는 한.

  사회의 불의에는 둔감하지만 자기의 이익에 민감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순간 화려하게 타오르지만, 결국 현실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사그러들고 마는. 결국 연못의 작은 피라미에 불과한 사람들. 책장을 덮고 나서 눈을 돌려보니 수많은 샤오 빈이 있었고, 돌연 내 사타구니도 아파왔다. 책을 읽으며 낄낄거릴 때는 생각지 못했던 아픈 결말이었고, 갑자기 엉덩이에 털이 돋아나고 마음은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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