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외 지음, 정재곤 옮김 / 세상사람들의책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무하마드 유누스. 몇 해 전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이 사람이 선정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내 그 이름은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올 해 수업시간에 이 사람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다. 아마도 대출담보에 대한 이야기 도중에 잠깐 나왔던 듯하다. '아, 맞다 그런 사람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 끝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책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읽으면서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삶의 일대기와 그라민 은행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체계 없이 뒤섞여 있어 두서없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치타공 대학에 재직할 당시 빈곤에 대한 성명서를 작성하면서 '경제학 선생일 뿐인데' 어떻게 성명서 문안을 작성하느냐고 주저했던 저자의 회고담처럼, 전문 작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데는 분명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고 있는 내용은 그 부족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그의 중요한 업적은 가난한 사람들을 그 곤궁에서 구제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방법이 기존의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었다는데 있다. 그는 가난에 대한 극복의지가 분명한 사람들에게 몇 명씩 그룹을 구성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연대의식과 의무감을 각자에게 지운 것이다. 그 후에 그룹 구성원들에게 소액의 자금을 담보 없이 융자해주었다. 그리고 빌려준 돈을 장기에 걸쳐 소액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언뜻 보면 돈을 빌려준 것에 불과한데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현재 그라민 은행에서 융자한 금액의 상환율은 100%에 가깝고, 융자받은 사람의 3분의 1은 이미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막 가난에서 탈출하려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유누스는 모든 사람은 살아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약간의 돈을 지원해준다면 모든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 결실이 그라민 은행이다.


  그의 활동에 대한 찬사도 존재하지만, 반대도 있다.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우파적 인사들은 그라민 은행이 방글라데시의 전통과 종교를 말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좌파적 인사들은 그라민 은행의 활동은 인민들에게 마약을 조금씩 나눠주는 셈이며 그를 통해 인민들의 혁명의지를 꺾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비판이 놀랍고 섬뜩하다. 설사 그라민 은행이 전통과 종교를 말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가난에서 구하지 못하는 전통과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또한,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지 그들은 답해야 할 것이다.


  그라민 은행에 대한 이런 허무맹랑한 비판은 제쳐두어야 하지만, 이 방법이 가난을 비롯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누스 또한 '소액융자가 모든 사회적 악을 해결하지는 못한다.'(340쪽)고 인정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소액 대출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형 노동을 하여 극한의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만 그 이상의 단계에서도 과연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결되고 자녀교육에 더 투자하여 삶을 개선하게 되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이 소유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소유물을 뺏겨서 더 적게 소유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육받은 자녀들은 자립형 노동보다 기업이나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라민 은행이 만든 '다수의 먹고 살만한 부'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한, 유누스의 소액 대출에 의해서 대다수 인민의 삶이 개선되더라도 그것은 국가 전체의 시장을 통한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킨 것은 아니므로 GDP 등으로  측정되는 국가의 부에 미치는 영향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의 SOC투자나 경제발전계획을 통한 기존의 성장방식이 사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라민 은행의 방식의 한계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의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저개발 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원조의 효과가 크지 않음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진정성이 담긴 새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또한, 평생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현실성 없는 말만 주워 삼기는 허울 좋은 지식인이 되지 않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진정한 지식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역사도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도 진행 중인 작업이다. 그에 대한 일방적인 회의나 배척은 지금까지 보여준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뜻한 시선으로 그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그가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응원하고 성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불어 이 책이 출판된 이후의 그라민 은행의 상황과 그라민 은행의 한국지부인 '신나는 조합'의 활동 상황에 대해서도 앞으로 더 알아나갈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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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둘리 2011-01-3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보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한계점도 소개되서 흥미롭습니다. 왜 그 점은 생각지 못했을까요? 대출받은 돈으로 모두 염소 다 한 마리를 산다면 경제학의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서도 충분히 파국을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요.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가지를 치는 방법이고 좀 더 근본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