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인 것을 언급하며, 그 평가 뒤에 의도가 숨어있음을 지적한다. 인조반정 이후에 광해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반정세력의 명분확보를 위한 의도적인 '광해군 죽이기'의 측면이 크고, 일제 시대 이후 이나바 이와키치 등에 의해 이루어진 광해군 재평가에는 식민사관이 근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정치적인 시선을 넘어서 광해군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 또한 정치적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보인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조선의 대내외적 상황을 6·25이후 현재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연관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보인다. 강홍립과 로버트김에 대한 비교에서 그렇고(238쪽), 인조반정 이후 명의 태도와 박정희 피살 이후 미국의 태도에 대한 언급(274쪽)에서 그렇다. 더 나아가 마지막 장의 '광해군, 한반도, 그리고 오늘'이라는 절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광해군은 진정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여주는 거울인 것일까.


  광해군을 떠올리면 왠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참 불우한 인물이다. 정치적 환경도 그랬지만 인간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고, 임진왜란 중에 얼떨결에 세자로 책봉되어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그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세자자리에서 쫓겨나지나 않을지 마음 졸여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오른 왕위였지만 집권 기간 내내 지지 세력이 없어서 고생해야 했다. 그나마 지키던 왕위도 반정에 의해 쫓겨나고 아들과 부인이 유폐 중에 죽는 걸 보면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그 업적으로 평가하기 이전에 광해군은 이미 측은지심을 자극한다.

  흔히 입에 올리는 광해군의 치적은 그 불우함과 대비되면서 빛을 발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보통의 왕이었다면 궁궐 밖으로 나가기 힘들었을 터이지만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분조를 이끌면서 인민들의 참상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인지 광해군은 전후 복구사업에 최선을 다했고, 당시 백성들의 큰 고통의 하나였던 공납문제를 대동법을 시행하여 해결하려고 하였다. 물론, 대동법은 100여년이 지난 숙종 때에 가서야 완전하게 시행이 되지만, 광해군대에 그 개혁이 시작되었던 것이 중요하다.

 

  또한, 외교에 있어서도 점점 세력을 키워가는 후금과 쇠퇴해가는 명 사이에서 조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명을 부모와 은인과 같이 생각했던 당시 사대부들과는 달리 철저히 실리에 입각한 외교정책과 정보수집 덕분에 조선은 그의 집권기에는 명청교체라는 격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2MB 각하의 실용적이지 않은 '실용외교'와는 근본부터 다른 '원조' 실용외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하의 실용외교는 ‘한미동맹 강화’라는 이념 위에 서있어서 국민의 안위와는 충돌하는 사이비 실용외교지만, 광해군의 실용외교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 자체가 이념이요, 목적인 진짜 실용외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들로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광해군은 확실히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들보다 융통성이 있었고, 상황 인식에서 앞선 능력을 보여줬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전란 후의 피폐해진 와중에서도 새로운 궁궐의 신축을 무리하게 추진한 점, 지지 세력이 없는 부정적인 환경을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회피하고 숨으려고 한 점 등을 보면 그렇다. 당시 광해군 앞에 놓인 국내외적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광해군의 성정으로 보아 주위의 도움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난국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에게는 우군이 없었고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그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때로는 무리하게, 때로는 자포자기하며 그의 슬픈 운명을 재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그는 슬픈 왕이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역사에서 정조와 광해군을 역사 속에서 불러냈다. 광해군과 정조가 '시대와 불화'했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의도를 동반하는 행동이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역사 속에서 한 인물을 불러낼 때 그 의도 또한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도에 의해서 역사인물을 왜곡시키지는 않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광해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불운한 인물이었다. 저자가 서두에서 자신이 광해군의 무덤을 찾은 경험 속에서 밝혔듯이 그는 우리 기억 속에서 철저히 잊혀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초혼'이 광해군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이 시대에 대한 해답으로 그를 불러내서야 되겠는가. 이 시대는 그가 살던 시대와 유사할 수는 있어도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행한 정책이 힌트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정답은 될 수 없다.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에 대한 인용으로서 광해군을 불러내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해군에 대한 거의 유일한 단행본이어서 반가웠지만, 광해군과 마주 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그를 수많은 청중 앞의 연단으로 불러낸 것은 아닌지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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