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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3disc) : 한정판
김지훈 감독, 이준기 외 출연 / 플래니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를 보고나자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볼만해. 조금 신파적이긴 하지만 시의적절한 것 같"다는 그 말이 영화를 너무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무거운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상업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유명 배우의 캐스팅, 웃음과 감동을 적절히 섞은 이야기. 한마디로 이 영화는 슬프지만 누구의 기분도 나쁘게하지 않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벗어날 수 없었던 생각은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물음이었다. 진우(이준기)처럼 시위를 주도하며 거리로 뛰쳐나갔을까, 민우(김상경)처럼 분노하는 가족을 달래며 광장에서 조금 비켜서서 불안하게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아마도 민우처럼 뒤로 쳐져 있다가 마지못해 시위의 끄트막, 그것도 맨 뒤에서 쭈뼛거리고 있지는 않았을지. 머리의 명확한 구별짓기와 행동의 분명함이 일치되지 않는 소시민으로서 숨쉬고 있지는 않았을지. 그 때문에 부끄럽고 슬펐다.
내가 볼 때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그들은 영웅이다. 어린 아들과 사랑스러운 아내를 두고 결국 전남도청으로 향한 인봉(박철민)도 철없는 만담꾼이 아니라 영웅이 되고, 용대(박원상)도 여자 뒤나 졸졸 따라다니는 난봉꾼이 아니라 열사가 된다. 머리 속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만, 옳지 않은 것에 맞서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무지하게 어렵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영웅이 되었다.
한동안 폭도로 이름붙여졌던 그들. 극중 신애(이요원)가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울부짖고 민우가 "나는 폭도가 아니야"라고 분노하듯 그들이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평범하게 살고 있었지만 결코 평범해질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을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광주를 말하며 민주화 운동 이력을 경력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많지만 진정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잊혀가는 이들에 대한 진혼곡이며, 기억을 일깨우는 알약으로서 성공한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