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천재 -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나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익명의 롤링 페이퍼도 좋고 취중진담도 좋다. 마주보고 앉아서 하는 평가가 사실일리 없지만 그것마저도 좋다. 나에 대한 평가만큼 남에 대한 평가도 관심있다. 앞담화도 좋지만 뒷담화는 더욱 사랑스럽다. 이런 취향때문인지 인물에 대한 탐구를 본위로 하는 책들이 좋다. 이 책도 나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지만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은 비트겐슈타인이나 하이데거와 같은 접하기 두려운(!)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히틀러와 루소와 같은 흥미로운 '문제적 인간'도 다루고 있기에 읽게 됐다.

  책을 보면서 처음 느낀 생각은 '참 정성을 들인 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책의 생김새도 잘 생겼거니와 각 인물에 배정된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곳곳에 사진 자료가 배치되어 보기도 좋았다. 오자나 탈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실함'의 화룡점정은 색인과 참고문헌이었다. 책의 편집 뿐만아니라 저자의 글도 정성이 느껴졌다. 한 번 책을 손에 잡으면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도록 씌여졌지만 문장이나 단어의 선택에 공을 들인 인상을 받았다. 빨리 읽을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게하는 좋은 글이었다. 

  '얼굴'이 예쁜 것도 감사한데 '성격'도 좋았다. 매우 재미있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인물들의 모순과 불안이 가득찬 삶을 그대로 보여준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뭔가 특별해보이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모순과 불안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되고, 안도와 환희(?)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또한 '광기'와 '천재'라는 단어로 교묘하게 연결된 아홉 인물 자체가 재미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다룬 아홉명의 인물모두 어렸을 때 겪은 상처와 불안이 존재 내부에 깊게 자리잡아있다. 하지만 그 정신적 불안정에 굴복하여 자기파괴에 이르지 않고 그러한 성취를 이룬 것이 '광기'라고 할만도 하고, 그러니까 '천재'라고 할만도 하다. 아돌프 히틀러와 같이 그 삶 자체가 '광기'인 인물은 그 근저에서 '불행한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적 풍경'이라는 제목이 붙은 3장은 사상사와 인물사가 중첩되어 어려운 느낌을 주지만 근대 철학의 흐름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끝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조제프 푸셰'였다. 혁명이라는 역사의 격동기에서 그가 보여준 모순의 삶은 그 자체가 코미디이자 드라마이다. 하지만 푸셰가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모두가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면, 푸셰는 말년병장처럼 그 일과를 돌아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가 얄미울 수는 있어도 증오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은 앞으로도 또 있을 것이다. 성실한 참고문헌 덕분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이라는 푸셰평전을 알게 되어 다음 독서의 여정은 그쪽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