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정조와 그의 시대에 관한 드라마와 영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07년 한국은 그야말로 ‘정조의 시대’다. 그는 이제 대왕으로 불린다. 우리가 조선조에서 대왕으로 일컫는 왕은 세종과 정조 둘 뿐이다. 아마도 그의 젊음과 개혁 그리고 그 치열함에 반비례했던 짧은 생애가 그를 세종만큼 유명하게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쓴 『조선 왕 독살사건』이란 책을 본 이후 나는 정조하면 울부짖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위로 사도세자가 겹친다. 정조가 취임일성으로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쳤듯이 사도세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정조에 이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조를 다른 방향에서 조명하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당시를 조명한 거의 유일한 책이다.

  뒤주에 갇혀 죽은 세자. 아마도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조선시대 왕가의 최대 비극인 이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는 이를 사도세자의 정신병과 영조와의 불화 때문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저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당시 노론과 소론 양당파간의 이해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비극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당파간의 정쟁이 여러 차례 환국을 거쳐 ‘너죽고 나사는’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당대에 와서는 왕과 세자까지도 자신의 당파 성향이냐, 아니냐에 따라 마음대로 바꾸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택군(擇君)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사도세자도 노론이 주도한 택군작업의 희생자라고 주장한다. 또한, 세자는 정신병이나 지병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이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여러 일화를 바탕으로 세자는 총명하고 담대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역설한다.

  아무리 소론 성향의 세자를 노론이 해하려고 했어도 아버지인 영조가 지켜주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늦게 얻은 아들을 그토록 귀여워했던 영조. 어떻게 친아들을 뒤주에 가둬죽이는 패륜을 저지른 것일까. 영조는 세자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세자의 관서행과 나경언의 고변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그 오래전부터 영조는 세자를 의심하고 있었다. 노론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세자의 행동이 영조에게는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보였던 것이다. 자신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외아들이자 친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영조는 ‘미물도 불쌍히 여겨 불나방이 등잔으로 달려들면 손을 휘저어 내쫓고 개미도 밟지 않고 건너서 갈’만큼 인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 만큼은 그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 참…권력이란 무엇인지. 저자의 말대로 ‘권력은 눈물과 인정을 넘는’ 것 인가보다. 비정한 아버지 영조 말고도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조가 떠오른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나라에서도 권력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고, 아들을 죽이는 사례가 많을 것이다. ‘권력이 무엇이길래?’ 한숨과 함께 의문이 든다.

  저자는 사도세자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혜경궁 홍씨의 기록과 과연 동일인물인가 의심이 들만큼 다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소론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이루고 왕권 강화를 이루었을 것이며 북벌까지도 꿈꿨다고 말한다. 북벌이라는 말로 민족감정을 자극, 사도세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끌어올리려는 것은 아닌가 의심도 든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체제 유지를 간절히 바랬던 노론 사대부들도 싫지만, 사도세자가 이루려했던 왕권강화와 북벌도 과연 역사의 올바른 추세였을까? 반면에 사도세자가 집권해서 왕권강화를 이루었다면 나중에 정조가 집권하여 개혁 드라이브를 펼치기 훨씬 쉬웠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소론이나 노론이나 사농공상의 신분제 안에서 그놈이 그놈이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사도세자와 정조가 꿈꾸던 세상은 더 나은 세상은 아니었을까? 시대적 한계 안에서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 곧 역사의 진보이니까 말이다. 정조 사후 벌어진 암담한 조선 역사 때문에 그들이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꿈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등장하는 전문용어나 단어 중에 낯선 단어가 꽤 많았던 것이다. 이 책의 의도가 그동안의 역사 연구 성과를 대중과 함께 나누고자 한 것이었다면 추가적인 설명이나 주석을 달았어야 했지 않을까. 흥미로운 소재를 쉽게 풀어써 역사에 쉽게 다가가게 한 미덕은 인정해야겠지만, 이런 불친절함이 다소 아쉬웠다. 최근에 회자된 ‘불고기 사주고 콜라 안 사줘서’ 독자들의 마음 상하게 만드는 일은 아닐지. - 내가 읽은 책이 2003년에 발간된 구판이라 휴머니스트에서 발간한 최근판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 사족으로, 이 책을 읽고 저자의 다른 책인 『조선 왕 독살사건』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조선왕 독설사건』을 먼저 읽은 후에는 다소 겹치는 내용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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