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일반판 (2Disc) - 할인행사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에이치비엔터테인먼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성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성경에 따르면 인간들이 한통속이 되어 신의 영역을 넘보려고 바벨탑을 세우자 신이 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인간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실을 모티브로 출발한다. 영화는 다소 길고, 여러 이야기들이 산만하게 펼쳐진다는 느낌을 줘서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도 준다. 하지만 끝까지 보다보면 지루하지 않거니와 각각의 이야기가 맞물려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각자 다른 곳에서 서로 맞물리지 않는 것처럼 제각각으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로 맞물린다. 때문에, 일본과 미국, 모로코에서 벌어지는 그 다양성이 일반성이 되고, 하나의 사실이 다양하게 변형된다. 사실 영화에서 보이는 모든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 오해는 서로에 대한 이유없는 혐오와 불신에서 비롯되고, 그 불신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서 생긴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벌어진 멕시코 출신 미이민자에 대한 과잉대응, 모로코의 한 작은 마을에서 보이는 리처드(브레드 피트)와 미국인 여행객들의 태도. 감독은 타문화와 타민족에 대한 경멸과 혐오가 소통의 부재 속에서 증폭되고 있음을 갈파한다.

  그렇다면, 벙어리인 치에코는 어떤 이유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가. 벙어리인 그녀는 벙어리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관계다. 이 상황은 언어가 다른 민족들끼리의 관계와 다름이 없다. 그리고 벙어리에 대한 편견 역시 타문화와 타민족에 대한 편견과 다를바 없다. 오히려 치에코의 이야기는 이 문제가 타민족끼리의 문제가 아닌 인간 서로간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대화가 서로간의 이유없는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친해진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친해지기 전에 서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오해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난 네가 깡패인 줄 알았어. 맨날 인상쓰고 말없이 교실 뒷자리에 앉아있길래.' 이런 말에 대해 친구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야. 난 눈이 나빠서 눈을 찌푸리지 않고는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아.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먼저 말 걸만큼 숫기가 있지도 않고.'라고 말이다.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도 이런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간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좀 더 규모와 형태가 달라질 뿐이지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진정성만 가지고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신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문제는 '일부러' 오해와 불신을 강화할 경우이다. 현재의 패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적을 만들고 증오를 키울 경우에는 방법이 없다. 사실, 어떤 집단 내부의 단결을 도모할 때는 집단 외부의 가상의 적을 만드는 것만큼 쉬운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는 감독의 생각이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였다.

  며칠 전에도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폴란드 이민자 한 명이 억울하게 죽었다. 백인의 백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이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오늘도 곳곳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라'는 광고가 나부끼고, 수많은 동남아인들이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고 고되게 일하고 있다.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들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정도를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섹시하고 매력적인 '백인' 미녀들에 대한 신변잡기에 집중하고, 그들이 당한 억울한 사연이나 편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다. 남희석이 대신해서 사과하면 끝인가? 세계는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타문화와 민족에 대한 테러와 공격이 난무하고, 수많은 외국인과 부딪히며 살아야 할 지금. 이 영화는 다소 이상적임에도, 정말 필요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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