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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 [VCD]
한재림 감독, 오달수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숨은 명작이다. 개봉할 떄부터 '꼭 극장에 가서 보자' 생각했지만 결국 가서 보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도 오늘은 보자, 내일은 본다 하면서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어제 보게 됐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토록 재밌는 영화가 왜 흥행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제목에서부터 보여주는 유머는 영화 내내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그 상황이 우습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명장면들이 숨어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주는 고단함은 그 아버지가 조폭이어도 벗어날 수 없나 보다. 40대가장 인구(송강호)는 밖에서는 '칼에 찔릴까' 두려워하면서도 벌이를 위해 조폭으로 살고 있다. 뉴스에서는 그를 '중간보스'라고 하지만 회장님의 말 한 마디에 처지가 뒤바뀌고, 다른 보스 밑에 있는 똘마니들은 인사도 하지 않는 참 애매한 위치다. 큰 돈 좀 만져서 가족들과 강남의 단독 주택에서 잘 살아보려고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조직 내의 다른 파벌의 시기로 '담김'을 당할까 걱정해야 하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을 안하면 먹고 살기조차 힘들다. 이렇게 밖에서는 이리 부대끼고 저리 치이지만, 집에서의 지위도 달라지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를 피하고, 딸은 그를 부끄러워 하고 싫어한다.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전락한, 가족들과 대화하기 어려운 말 뿐인 가장으로서의 아버지. 정말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조폭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를 통해 고스란히 재현된다.
제목이 말하는 우아한 세계란 무엇을 말할까. 결국 결코 아름답지 못한 아버지 인구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반어적 표현일수도 있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적용되는 세계. 인구는 들어가려고 하지만 들어갈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은 아닐지. 그 반어적 표현을 통해 인구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가된다. '우아한 세계'라는 반어적 표현이 가장 농축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영화 마지막에 인구가 캐나다에서 가족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는 장면이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울부짖는 아버지 인구의 모습. 그러면서도 걸레를 들고 와서 깨진 라면그릇을 치우는 기러기 아빠 인구의 모습. 정말 이 모습을 보며 울어야 되는가 웃어야 되는가.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되겠지만. 우리 아버지를 봐도, 주위를 둘러봐도. 이 사회가 아버지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과거의 권위주의적이던 아버지들이 자초한 결과일수도 있지만. 그 벌을 왜 우리 아버지들이 받아야 하는지. 유쾌하지만 결코 유쾌하지는 않은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