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 메소드 - 성공을 실현시키는 노란 책
스튜어트 G. 골드스미스 지음, 양성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성공을 말하는 책을 읽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부나 명예의 획득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다보면 '속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성공'을 향한 거침없는 레이스에 내 자신마저 편승할 수는 없다는 막연한 거부감이랄까. 두 번째 이유는 좀 치사한 트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자에 대한 불신 떄문이다. 그들이 입이 닳도록 '성공'과 '행복'에 이르는 법을 설파하지만, 그들 자신은 정말 '성공'과 '행복'에 도달했다는 말인지 되묻게 된다. 우리는 아직 닿지 못한 '행복'이라는 피안에 그들은 정말 닿아있는 것인지, 그들도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우리를 호도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그 너무나도 '인간적인'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 성공에 이르렀는가? 오히려 이 책을 팔아서 '성공'에 이르려는 것은 아닌가?

  앞서 말한 이유들 떄문에 이 책을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거의 한 달 넘게 책을 붙잡고 있으면서 읽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하고, 열띠게 읽기도 하고 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좋은 책'이라며 추천해주신 분도 있고, 읽다보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책을 너무 급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전체적으로 좀 투박한 감이 든다.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식도 투박하고 체계나 내용도 세련되지 않고, 우선적으로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여러가지 맘에 안차는 부분이 많지만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글쓴이나 옮긴이의 '진실함' 또는 '성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공, 즉,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먼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긍정적인 자아의 이미지를 갖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실행에 옮기면 된다는 글쓴이의 주장은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이나 무의식의 중요성 등에 대한 설명 등 각론에 들어가면 저자가 허투로 쓰지는 않았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의 경험과 자칭 '미다스 메소드'를 실행함으로써 나타난 변화와 지금의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거짓'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옮긴이의 사연 또한 진실하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옮긴이의 글을 보다보면, 그동안 '번역'에 대해 가져왔던 꿈과 여러번의 실패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의 원서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아내고 이렇게 책으로 출판하기가지의 과정에 대한 역자의 회고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열심히 임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책이 저자와 역자의 '진실'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쓰여진 나쁘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에 대한 신뢰나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는 굳이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주문'을 되뇌면 틀림없이 나도 성공에 이르게 될 것인가? 만약에 내가 성공한다면 나의 노력 떄문인가, 아니면 '미다스 메소드'라는 주문 때문인가?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저자가 제시한 '미다스 메소드'를 불성실하게 이행했기 때문인가? 실제로,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방법 글자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따르기를 권고하고 있다. 나의 이 엉뚱한 질문에 저자는 분명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거봐라. 내 방법을 따르면 무슨 일이든 성취하게 되어있다.'며 흐뭇해 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내가 말한 방법 글자 그대로 따라했는가? 성실하게 이행했는가? 당신이 의심하고 불성실하게 이행했으므로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라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시중에 세발 달린 닭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대간들이 "옛부터 임금이 안사람의 말들에 휘둘리면 이런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으니 주의하라"는 요지의 간언을 올린다. 성종은 그게 어떻게 내 탓이냐고 항변하면서 "경들은 모든 기이한 일과 재앙을 모두 내 탓이라고 하니‥그래, 잘 알았다"며 불쾌해한다. 결국 성공에 대한 방법론도 이 경우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자신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성공에 이르게 되지만, 사실 너무도 오래고 평범한 노력의 결실이었기에 성공이 그 결과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성공의 원인을 이상한 곳에서 찾게 된다. '오늘 아침에 양말을 다른 것을 신었기에', '며칠 전에 교회에서 기도를 열심히 했기에', '그동안 선행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등과 같은. 성종때, 대간들이 기현상에 '기이한 원인'을 찾았듯이 성공에 대한 담론도 너무 이차적이고 피상적인 방법론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성공이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굳건한 확신,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라고. 그것이 어떤 주문을 외우고 안외우고 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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