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 고우영 초한지 1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시장통. 수염 덥수룩한 사내가 애들은 가라는 말로 역설적이게도 어른들을 불러 모은다. 그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는 지저분해보이는 중년 남자가 있다. 볼품없는 모습에 발길을 돌리려는데, 그는 과일을 담는 나무상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막걸리 주전자를 옆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좌우지 자지간에 내 말 좀 들어보소. 세상살이 바로 장기와 같다는데~장기놀이의 원조 이야기 좀 한 번 들어보시게.' 취한 듯 안 취한 듯 설렁설렁 시작하는 이야기에 귀는 쫑긋, 발 길을 멈춘다.

  이 만화를 보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국민 만화가라는 故 고우영 화백의 초한지는 이런 면에서 '국민'이라는 수식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국민'은 다시 여러 계층으로 나뉘는 법! 그의 초한지는 너무도 걸걸하고 투박하며, 우스꽝스럽고 유쾌하며, 음담패설로 넘치고, 재치와 만담이 가득한 광대의 서커스를 보는 듯 하다. 이런 특징으로 그의 만화는 국민이라는 말보다는 서민적이라는 말과 더 잘 어울린다.

  '고우영 초한지'는 초한지의 만화화라기 보다는 고우영식으로 해석한 패러디물에 가깝다. 초한지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만화적으로 표현된다. 유방은 색골이고, 역이기는 괴짜노인, 한신은 로맨티스트, 항우는 다혈질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지만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놓치는 듯한 아쉬움은 남는다. 또한, 배경은 진나라 말의 혼란기이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현대식 기기들(전화기, 건물, 무기 등)은 그의 만화가, 철저한 고증에 의한 초한지의 번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해석에 의한 패러디임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이런 장치 역시 만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성적 비유와 음담은 이 만화의 한계다. 성인 남성 위주의 해학과 유흥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만화를 여성이나 아이들이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한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는 풍경이 떠오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초한지를 한 번 접해 본 성인 남성에게 추천하는 만화이다. 아무튼 1권부터 8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읽는 동안, 작가의 표현대로 '좌우지 자지(!)간에' 한 바탕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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