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인종학살은 끝이 났다.'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을 보면서 '정말 그것으로 모든 비극은 끝이 났을까?' 다시 묻게 됐다. 영화는 분명히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만화영화를 볼 때처럼 '그리고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자막에서 느꼈던 안도와 기쁨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의 한 장면이 복선처럼 떠올랐다. 그 장면은 후투족 대통령과 투치족 반군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UN평화유지군 사령관이 이제 평화의 시작이라며 축배를 제의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장면에 이어서 후투족 대통령이 암살되고 끔찍한 학살이 벌어진다. 마치 복선과 같은 이 장면은,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결말도 폭풍이 몰아치기 전 잠시동안 찾아오는 고요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벗어버릴 수 없게 했다. 슬픈 대륙 아프리카. 이 이야기는 르완다 내전에 관한 영화지만 르완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멋대로 정해버린 구획 안에서 지금도 수많은 민족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후투족의 지도자가 전범재판소에 불려 나가고 투치반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권선징악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지 않을까? 벨기에가 르완다를 점령하기 이전까지 후투족과 투치족은 특별한 갈등 없이 어울려 지내왔다. 영화에서도 두 부족은 겉모습으로 구별할 수 없을만큼 비슷하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벨기에 사람들은 코와 키와 같은 잣대를 만들어 후투족과 투치족을 억지로 구분하고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지배계급으로 만들어서 두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을 식민통치에 이용했다. 후투족의 상대적 박탈감은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끝내고 돌아가버리자 폭발하여 투치족과 후투족간의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문제는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부도덕한 통치기술, 후투족 반군 정치 지도자들의 광기와 선동, 세계의 무관심과 방조이다. '세계는 하나'라고 외치며 '세계화'와 '지구촌'을 부르짖으면서도 왜 세계의 한켠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이렇게 무관심한지. 서구 국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의 무관심함이 너무 화가났다. 그들이 주장하는 '세계화'는 결국 물건을 팔아먹을 때만 소용되는 것인가. 돈 치들이 연기한 주인공 폴 루세사마키나는 솔직히 말해 영웅은 아니다. 그는 친한 이웃이 투치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가는대도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라는 이유로 방관하기도 하고 고위층에 선을 대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소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자 뜻하지 않게 영웅이 되고 만다. 후투족이나 투치족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내가 이렇게 무심히 보내고 있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총과 폭탄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장면은 없었지만 집단적 광기에 젖은 후투족 민병대가 칼로 아스팔트 바닥을 긁는 장면이나 얼굴 한 번 나오지 않는 후투족 지도자의 라디오 방송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고 두려웠다. 보여주지 않고도 공포를 이끌어낸 감독의 기교가 대단했다. 투치족의 시체더미를 보고 두려움에 넥타이조차 제대로 매지 못하여 오열하는 주인공을 연기한 돈 치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꼭 한 번은 봐야될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히 누군가가 조장했을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의 갈등을 볼 때, 그리고 비무장지대에 흐르는 남한과 북한의 갈등과 긴장을 볼 때, 르완다는 어쩌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해진다. 부디 누구의 선동과 광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들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