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플레이어 - 무례한 세상에서 품격을 지키며 이기는 기술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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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책이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불도저 같은 리더만이 성공한다는 통념을 깨부수고 싶어하는 지은이의 의지가 보인다. 공정하고 선한 리더가 오히려 성공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들어 증명하면서 몇 가지 법칙을 선언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원대한 의도에 비해서 장황하고 정교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목표로 했던 성과는 달성하지 못한 듯 싶다.


  우선, 지은이가 법칙을 선언하려고 재정의한 단어들이 실생활의 용례와 동떨어져서 매우 어색하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와닿지 않는다. -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어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 경청하기(listening)는 그렇다고 쳐도 제공하기(giving)와 방어하기(defending)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제공하되 감독하라', '스스로 제공하게 하라', '방어하되 지나치지 마라', '문을 활짝 열고 방어하라'는 말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공정한 리더'라는 말도 제대로 된 정의가 부족하다. '공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불편부당한 것인지, 공평하다는 것인지, 정의롭다는 것인지, 선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 다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폭력적인 리더의 반대말로 상정된 개념인지 잘 모르겠다.


  이러한 의문이 폭발하는 지점은 괴벨스와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비교한 책의 후반부이다. 결과적으로 교활한 리더인 괴벨스는 실패하고, 공정한(?) 리더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성공했다는 것인데 과연 세계 2차대전의 승자와 패자는 두 사람으로 대표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승리한 이유는 국력과 체제, 전략 등이 아니라 각 개인의 성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히틀러와 루즈벨트 혹은 히틀러와 처칠이 아닌 괴벨스와 루즈벨트를 비교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야 말로 '페어'한 비교는 아닌 듯 싶다.


  나도 선한 리더가 결국에는 이긴다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에 반대되는 수많은 사례들이 눈앞에서 벌어지지만, 그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나의 믿음이 투박한 민간신앙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명징한 '사실'이라는 증거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확신을 줄만큼 정교하지 않았다. 지은이도 나와 같은 신앙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다 길을 잃은 느낌이다. 결국 '무례한 세상에서 품격을 지키며 이기는 기술'이라는 부제와는 동떨어진 책이 되어버렸다. 각각의 사례들은 흥미롭지만 결과적으로 방향도, 체계도 잃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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