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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이야기 1 - 전쟁과 바다 ㅣ 일본인 이야기 1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1월
평점 :
사실 뜬금없이 ‘오다 노부나가’를 읽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16~17세기 일본을 개괄하다 보니 좀 더 그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오다 노부나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시기 일본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소 특이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서구, 특히 가톨릭과의 접촉을 굉장히 중요하게 파고든다.
우연히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의 세력이 일본을 발견하게 된 것, 그들이 일본에서 동남아에서처럼 무력시위를 하기보다는 무역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한 것.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지리적 우연성과 행운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바다라는 창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종종 접해 왔던 일본인들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읽게 된다. 일본과 중국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게 된다. 지리적인 영향으로 노출이 빨랐고, 그 접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우리는 노출도 어려운 위치에 있었지만, 명분론과 척사론에 입각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실용주의가 아닐는지. 흑백이 분명한 것이 명쾌하고 쉽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지 않나.
유럽이 상업·군사적으로 접근했을 때 명과 일본은 군사적 도전에는 대처하면서도 상업적인 이익은 취하는 방향을 채택한 반면, 조선은 능동적·수동적 측면에서 일체의 교류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_ 145쪽
재미있고, 시각 자료도 풍부하고, 시각도 새로워서 읽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일본 역사의 주변부의 사실들을 너무 과잉대표한 것은 아닌지 생각도 들었고, 도쿠가와 막부가 가톨릭 신자들을 억압하지 않아서 지배종교나 세력이 교체되었다면 그것이 과연 일본 역사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었을까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기에, 그동안의 굳건했던 믿음과 사회질서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다시 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 혼란을 틈타 가톨릭 국가들이 군사적인 영향력을 강화했을 가능성은 없을지. 여러 방면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독서였다.
이처럼 막부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접근에 대한 대응을 고민하는 한편으로,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빼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이것은 일본에 찾아온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자, 일본의 미래를 위한 행운이었습니다. 이 행운은 청나라와 일본에 동시에 찾아왔지만, 청나라의 경우 이 행운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에는 다른 문제들이 더 컸고, 일본은 이 행운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같은 시기 조선에는 이러한 위기와 행운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 P39
대항해시대에 유럽이 일본에 가한 군사적 위협과 위기의식, 그리고 난학이라는 준비작업을 통해 일본은 식민지가 되지 않고 거꾸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행운의 덕을 얻으려면 행운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강렬한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준비해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정해진 법칙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물론 물질적인 조건에 크게 제약받지만, 때로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 P49
유럽 세력의 침략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 일부러 기술을 퇴화시킨 일본을 스페인·포르투갈 등이 작심하고 공격하지 않은 것은 일본의 행운이었습니다. 유럽이 에도시대 일본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앞선 전국시대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평판 때문이었으니, 이는 곧 일본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찍이 중화 문명의 성과를 흡수하는 데는 걸림돌이 됐으나 군사적으로 보면 일본을 지켜준 바다는, 이번에도 유럽 문명의 성과를 흡수하는 데는 지장이 된 반면 군사적으로는 일본을 지켜준 셈이었습니다. - P91
유럽이 상업·군사적으로 접근했을 때 명과 일본은 군사적 도전에는 대처하면서도 상업적인 이익은 취하는 방향을 채택한 반면, 조선은 능동적·수동적 측면에서 일체의 교류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 P145
요약하자면 히데요시 정권과 도쿠가와 일본, 명나라와 청나라도 가톨릭 세력이 정치·군사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유럽과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중국과 일본은 같았고, 조선은 달랐습니다. - P246
사실상 이 모든 것이 정치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조건 밀어붙이는 정치를 펴다가 부하에게 배신당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군사력과 계략을 총동원해서 일본을 차지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히데요시는 조카에게 권력을 물려줄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아들이 태어나는 바람에 모든 과정이 엉켜버린 상태에서 죽은 것이고, 이에야스는 아들에게 통치권을 물려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히데요시에게는 새로운 세계와 접할 수 있는 통로가 포르투갈과 스페인 두 나라뿐이었지만, 이에야스에게는 네덜란드와 영국이라는 좀 더 입맛에 맞는 상대가 나타나주었습니다. 이것이 이에야스의 행운이었습니다. - P346
이리하여 도쿠가와 막부는 ‘네 개의 교역 창구’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망상에 빠져서 망쳐놓은 국가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습했다기보다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치세 덕분에 한껏 넓어진 일본의 국제적 활동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제한함으로써 무사 집단의 이익을 지키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이 번성하고 일본인들이 화교처럼 일본 바깥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경제성장에 따라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피지배민들이 무사 집단에 도전하는 상황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끝내려 한 것입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배 엘리트인 무사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나라의 성장을 중단시켰습니다. - P392
16~17세기의 일본이 경험한 유럽과의 접촉은 그 후 일본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한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중화문명이, 이제는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문명들 가운데 하나로서 상대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에도시대 일본이 아무리 유럽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길을 택했다고 해도, 한 번 열린 세계관이 다시 예전처럼 닫히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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