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질문 3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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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거칠게 말하면 상록수식의 끝맺음이다. ‘우리 모두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원함으로써 권력을 감시하자는 결론은 옳지만, 너무 옳아서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고, 1권부터 커질 대로 커진 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잔뜩 뒤집어 까놓고, 시민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는 식으로 마무리되어 솔직히 허망했다. 메시지는 좋지만, 소설적으로 너무 투박하고 순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어색한 희망가라고 해야 할지. '소설' 이상의 것을 하려다보니 정작 '소설'답지 못하게 돼버렸다. 생각할 거리는 다양하게 던져줬지만,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잃었다.

 

   물론 소설의 결말대로 시민단체는 더 많아져야 한다. 더 많은 시민단체가 생기고, 더 활발하게 활동했으면 한다. 하지만 성리학의 전통이랄지 너무 교조적으로 흐르거나 타협하지 않는 투쟁방식은 경계하고 싶다. 선민의식도 안된다. 솔직히 말해 장우진 기자와 같은 영웅담은 어느 정도 시민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데 유용하겠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자가 필요할 뿐, 지도자란 필요 없기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와 인정의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태범이나 임예지의 행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모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는 것. 그래서 이 사회의 범죄와 적폐들이 재벌과 권력자들에게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평범한 갑남을녀들도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우리들 모두 관행범죄사이의 그 어디쯤에서 매일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다. 어떤 관행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를 좀먹는다. 모든 관행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고, 그 관행에 대한 일탈을 허용하는 사회문화, 조직규범도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광장에서의 민주주의도 좋지만 이제 현장에서의 민주주의도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우리 삶 속에서 비민주적인 부분을 시정해나가야 한다. 내일부터 이른바 갑질방지법이 시행된다고 하는데 이 또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시민의회도 인상깊다. 사실 평소에 가졌던 생각과 비슷하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과 같은 방식으로 시민 누구나 추첨에 의해 선발되어 입법권을 가지는 방식을 생각했었다. 효과적인 구현방안은 고민해봐야겠지만, 우리 사회가 꼭 시도해봤으면 하는 제도 중에 하나다.

"모자라는 게 아니라 내가 장담할 수 없고, 모르는 부분이오. 최변, 우리 모든 인간들의 세 가지 공통점이 있잖아요. 한 번 태어나는 것, 한 번 죽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것. 바로 그 완벽하지 못한 것에다 10점을 배정한 거요. 최변도 그 10점은 배정받고 있는 거고, 그래서 서로 함께 살면서 그 10점을 서로가 발견하고, 이해하고 감싸고, 용서하면서 100점을 채워가려는 노력이 결혼 생활 아니겠소?" - P67

편함을 두고 불편함을 습관화한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성가신 고역이었다. 그저 목적이 있으니까 마지못해 참고 견디는 고행이었다. 그건 국회의원으로서 누리는 특권이 금세 몸에 배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권력의 단맛은 얼마나 빨리 습관화되어버리던가. - P115

국민들의 감시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권력자들은 그 순간 광야의 포식자 하이에나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건 권력자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권력 자체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감시 감독을 소홀히 하는 직무 유기를 저지르는 것은 모든 권력자들에게 맘대로 직무 유기를 저지르라고 기회를 주고 허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국민이 저지르는 가장 큰 어리석음과 망상은 정치인들이 자기네가 원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주리라고 믿고 방심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심장이 뛰듯이 살아 움직이지 않고서는 그 사회와 국가는 병들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는 시들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은 절대 불변의 사실입니다. - P215

모든 기업은 투명하고 정직하게 경영해도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익만으로도 기업인들은 보통 시민들보다 몇십 배에서 몇백 배 부자로 잘 살 수 있습니다. - P216

우리는 ‘광장’에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었지만, 정작 실제 삶이 영위되는 ‘현장’에서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나 민주적인 제도와 문화가 실행되고 있는가. 광장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듯이, 삶의 현장에서 교장, 총장,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가. 광장민주주의와 현장민주주의는 여전히 비대칭적으로 괴리되어 있다. - P323

‘시민의회’란 기존의 국회와 별개로 존재하는―선거가 아니라 추첨에 의해 뽑힌 시민 대표들로 구성되는―말하자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외의 제4부라고 할 수 있다. 4년 임기 내내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현재의 무의미한 국회는, 원칙적으로는, 폐지하는 게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 폐지도 결국은 현 국회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 이상,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타협적으로 현행 국회는 그대로 두고, 그 국회와 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통제·평가하는 권한을 가진 시민의회를 따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 P367

하지만 원래 민주주의란 지도자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잘났든 못났든 민초들 자신이 공적 공간에서의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를 통해서 최선의 집단적 지혜를 얻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자가 필요할 뿐, 지도자란 필요 없는 존재이다. 추위를 무릅쓰고 우리가 몇 달 동안 광장으로 나간 것은 단지 ‘지도자’ 하나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 P368

‘모든 권력은 횡포하고, 타락한다. 그러므로 줄기찬 감시 감독이 필수다. 그 역할을 대신 맡는 게 시민단체들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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