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질문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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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권과 달리 극적인 사건이 터지지 않지만, 가슴은 더욱 답답해진다. 입법·사법·행정·언론·기업의 5대 권력이 학연·지연·근무연으로 서로 얽히고 얽혀,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우리 사회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 않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지면 더 강하게, 더 오래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지만, 힘깨나 쓰는 자들이 법 위에 앉아서 자가증식하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런 조폭놀이의 철저한 객체였던 김태범이 이 번 권에서는 주체로 변신한다. 성화그룹의 권력과 인맥에 철저히 깨졌던 김태범이 이제 다른 위치에서 그들과 똑같은 일을 벌인다. 이런 모습은 상징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조직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 조직을 위해서 조폭의 논리를 구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조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모든 조직의 조폭화, 모든 개인의 행동대원화가 우리 사회 전반을 요약하는 말이 아닐까? 정말 작가의 말대로 이거 날 샌 나라는 아닌지. 그래서 김태범의 슬픈 개인사를 보면 한 없이 응원하고 싶지만 덮어놓고 응원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모든 악습과 적폐를 끊어낼 수 있을까. 소설에서는 고석민의 입을 빌려 모든 것이 대통령의 의지에 달린 것처럼 이야기 한다. 이것은 광야에서 달려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순진한 생각이다. 대통령의 선한 의지는 중요한 필요조건이 될 수 있겠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결국, 법과 제도가 이런 악습을 금지하고 제제하도록 강화되어야 하고, 느리지만 문화가 달라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가속화할 수 있는 요인들을 찾고 검토하고 행동해야 한다. 답답한 마음으로 이제 3권을 펼쳐든다.

 

문제는 대통령이고, 결론도 대통령입니다. 모든 게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_ 284

‘도시는 자꾸 비대해지고, 비대해지는 만큼 경쟁은 치열해지고, 경쟁은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고, 그 적대감은 서로를 경계하며 소통이 차단되는 개체화가 되고, 그 분열은 서로를 소외시키다가 끝내는 자기 자신까지 소외시키기에 이른다. 그 자기 소외는 곧 정신 질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현대 도시인들이 갖는 가장 큰 비극이다. 그 치유책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하소연할 수 있고, 넋두리를 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 P15

돈과 지위가 보장하는 기득권의 그 달콤함과 안락함은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었고 막강한 힘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돈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흐물거리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는 권력이 있었던가. 모든 국가권력은 돈 앞에서 하나같이 물컵 속의 각설탕이고, 용광로 속의 쇠붙이고, 끓는 물 속의 얼음덩이였다. 국회의원이고, 판검사고, 공무원이고, 모두 마음먹은 대로 주무르는 쾌락은 마치 내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돈의 위력이란 그다지도 막강하고 무한대였다. 그 힘에 실려 느끼는 황홀한 쾌감이란 그 어떤 것하고도 비교가 안 되는 최고의 세상살이 맛이었다. 일개 하수인일 뿐인 자신의 기분이 그럴 때 정작 회장님의 기분은 어떨 것인가. 분명 자기가 천하를 지배한다는 황홀경에 취해 있을 거였다. 그 권력을 줄기차게 누리기 위해서 회장님은 비자금 확보를 그렇게 중시하는 게 아닌가. - P18

"국민이란 실체가 아니라 형체일 뿐이야." - P198

감정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색깔을 섞으면 검정색이 되듯이. - P272

전관 변호사는 지는 재판이 없다는 말을 흔히 들어왔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보니 그건 참 너무 야비했고, 조폭 찜 쪄 먹는 조직 범죄였던 것이다. - P343

겸손을 모르는 자한테 겸손한 것은 겸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 P350

"사시·행시 패스한 자들이 절대 못 고치는 고질병이 있어. 난 머리 좋아, 난 남달라, 난 특대를 받아야 해, 하는 생각이 머리에 꽉 들어찬 인종들이야. 그 옛날 과거 급제한 것하고 똑같이 생각한다니까. 그런 거만, 자만, 오만, 3만이 만발한 자들이 국가의 사법권이고 행정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나라꼴이 제대로 될 게 뭐야. 이거 날 샌 나라야." - P350

글쓰는 일은 언어와의 싸움입니다. 첫째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하고, 둘째 단어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고, 셋째 단어의 활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본적인 행위의 첫 번째가 국어사전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고, 두 번째가 좋은 책들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그 원시적인 방법의 끈질긴 실천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성실을 잃지 않으려고 제 자신에게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수련이 일기 쓰기와 편지 쓰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일찍부터 글쓰기 수련의 왕도라고 일컬어져 왔을 것입니다. 일기는 일과 중심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인식과 의식 중심으로 써나가면 글쓰기에 큰 효과가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하루에 몇 줄씩이라도 일기 쓰기를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노력이 저를 지탱해 온 힘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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