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단숨에 읽었다. 충분히 재미있고 흡인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내가 과연 책을 읽은 걸까. 만화책을 읽은 걸까. 정말 한 편의 만화같다. 재미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소재 등을 봐도 이 소설은 영락없는 일본만화다. 아무리 일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가 연계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지만 내가 볼때는 모든 문화예술의 장르가 '만화'로 단순화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보이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 소재, 이런 사람이 실재로 존재할까 의심스러운 개성넘치는 주인공들. 이 요소들만 봐도 너무나도 '만화적'이다. 이런 특징은 비단 이 소설 뿐만이 아니라 요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일본문학의 공통분모인 것 같다. 이 만화같은 일본소설들이 우리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상을 탔다는 훈장을 달고 우리 안에 너무 깊숙히 들어온 것은 아닌지. 그 우스꽝스러운 훈장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기에 마치 검증된 작품인 양 우리를 오인하게 만들고, 재미와 유쾌함, 오락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세태와 맞물려 우리 문화계를 점점 잠식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을 하게됐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수도, 너무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 더 나아가 일본소설의 유쾌함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문학의 퇴행'일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고 싶다.

  외래어의 남용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우리나 일본이나 영어를 섞어쓰면 세련되고 유식해보인다는 착각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발견되는 것은 외래어가 덕지덕지 뭍어있는 지저분한 모습이다. '옷가슴부분에 이니셜을 수놓거나 와펜을 달아 쌍둥이 형제의 아이덴티티가 파괴되지 않도록(123쪽)'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표현인지. 이건 빙산의 일각이고 외래어가 어색하게 섞인 비슷한 표현이 수도 없이 나온다. 지은이는 이 국적불명의 언어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단지 '즐겁게 살'기 위해, 기분전환과 오락을 위해 이런 책을 원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문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럼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걸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인생이 늘상 광대의 쇼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도서시장의 문제가 이 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런 문제의식이 솟았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유쾌함에 젖었지만 책장을 다 덮고 나서는 앞서 옮긴 생각들이 두서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조용히 있을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내 서평도 횡설수설의 글이 되고 말았으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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