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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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인공 모모가 쓰고 싶어했던 이야기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주류이다.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다. 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간혹, 그들에 대해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보일 때조차 오히려 '불쌍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거나 해체하는 쪽으로 이끌어간다.

  열 네살이라는 나이보다 더 나이들어버린, 몰라도 되는 것들에 대해서 너무도 일찍 알아버린 주인공 모모. 그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겁먹게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말과 글이 제일 강하므로 '빅토르 위고'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제도권 안에서 가장 강한 경찰이 되고 싶기도 하고, 제도권 밖에서 가장 강한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기도 하다. 누구보다 가장 착하게 살고 싶은 모모이지만, 그가 경찰이 될지 테러리스트가 될지는 그 자신조차도 알 수 없다. 이 예민한 친구는 소설가가 될 자격이 충분하지만 과연 뜻대로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모 주위의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늙고 병들었으며 죽어가고, 실제로 죽기도 한다. 특히 모모는 그를 어렸을 때부터 길러준 로자 아줌마의 죽음만은 참을 수 없다. 그녀는 그가 사랑하는, 그리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모모는 그녀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며, 함께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세상의 어두운 측면에서, 누구보다 사람답게 살면서도 물질적으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는 지엽적인 관심조차도 결국 그들의 사람답게 사는 측면을 해체하려 들었던 것은 아닌지.

  사람이 사는 곳의 환경은 그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맹모는 맹자를 위해 세번이나 이사했다. 하지만 모모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창녀와 사회의 아웃사이더들과 섞여 살면서도 그의 말마따나 '엉덩이로 빌어 먹고 살' 생각도, 마약으로 쉽게 행복을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를 붙잡은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로자 아줌마의 사랑과 그녀와의 교감이 그를 붙든 것이다.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모모의 생각처럼 '생은 미화할 것도, 상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생(生)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이다. 생은 우리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 생은 우리를 기쁨으로 이끌기도 하고 절망의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 생은 결국 우리가 끝까지 싸우고 화해해야 할, 항상 거기에 있는 그 무엇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은 것같다. 로맹 가리의 삶에도 참 관심이 간다. 누구나 다시 살고 싶은, 새롭게 살고 싶은 꿈을 꾸지 않을까? 모모도 영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기능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가. 로맹가리도 그 본능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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훵카델릭 2007-06-2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는 서평 . 꼭 다시 읽어야겠어요.이상하게도 모두가 좋아하는 이 책을 몇번이나 포기했어요.로맹가리의 다른소설을 잘도 읽었는데 말이죠;

송도둘리 2007-06-2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됐는데,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예요.
로맹가리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재미있는 책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