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에 빨간약 바르기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친구의 선물로 이 책을 읽게 됐다. 친구의 선물이라는 사실때문에, 친구의 얼굴과 책장 한 장 한 장이 연결되어 왠지 이 책에 대해 좋은 말만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계속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무엇일까? 죽음? 나의 죽음?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끝이기에 슬퍼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다. 그렇다면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아닐까? 가족 또는 친구, 애인의 죽음. 그것만큼 슬프고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세 편 모두 하나의 이야기처럼 관통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모두 앞서 말한 비극과 만난다는 것.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얻은 상처는 단순한 찰과상처럼 쓰라리고 따끔한 잠시간의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얼핏 정상적인 삶처럼 보이지만 이따끔 드러나는 비정상적인 회한과 무기력증.  중요한 부속품이 망가져버린 기계처럼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의욕없는 삶을 덤으로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그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소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 치유는 사랑으로 이뤄진다. 아니, 우정이라 해야할까? 그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인간이 인간과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감정. 그 감정으로 인해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소설은 매우 잔잔하다. 때론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그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냥 경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잔잔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미덕이며 특징이다. 또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특이한 인물들. 「키친」의 '에리코'라든지, 「달빛 그림자」의 '히라기'라던지. 그 인물들은 주위에서 쉽게 접하기 힘들다. 이들은 소설의 잔잔함에 파문을 일으키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또하나의 미덕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번역과정에서 정체불명의 것이 되어버린 의태어나 단어들, 종종 보이는 어색한 대화들이다. 그 점때문에 읽는 데 약간 불편했다.

  아, 결국 사랑이다. 너무 식상한 결론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보다 중요한게 또 어디있을까. 사랑하자.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