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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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제는 조금만 두꺼운 책은 읽지 않게 된다. 주중에 회사일과 출퇴근 지옥에 지쳐서 주말에 책을 좀 읽으려고 하면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잡다한 집안일은 끊임이 없고 그나마 짬이 생겨도 스마트폰과 TV를 멍하니 보고 있을 때가 많다. 지은이의 말대로 고3때나 바쁠 때 더 많은 책을 읽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생에 적절한 긴장이 필요한 거고.

고전 읽기나 논술용 독서토론은 집어 치우고, 재미있고 즐기는 독서를 하자. 독서를 즐거운 습관, 여가의 하나로 만들 뿐 더 이상의 효용을 억지로 요구하지는 말자.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이긴다. 지은이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여러 경험담과 에세이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일부러 망가지는 건지 판사님의 일탈이 귀엽기도 하고.

지은이의 주장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얼마 전 종영된 ‘스카이캐슬’을 보면, 차민혁 등이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들이 앞다투어 이기적 본능에 충실해야 성공한다는 독후 감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독서가 게임보다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독서강박증에 빠질 이유도 없고, 독서를 공부하듯 해야할 필요도, 신성화할 이유도 없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함께 할 친구로 독서를 선택했으면 그만이다. 여러 선택지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났다. “개인주의자 선언” 이후로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팔로잉’ 하는 것 같아 즐거웠다. 물론 굳이 살 필요까지 있었나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어렵게(!) 마음을 다 잡았다. 여전히 후회는 없다!

대하소설은 커녕 조금만 두꺼운 책 앞에서도 멈칫거린다. 사실 읽자면 지금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텐데 지레 겁을 먹게 되어버렸다. 나이를 먹을수로 하루도 짧고 일 년도 휙휙 지나가고 남아 있는 나날이 벌써 손에 잡히는 것만 같다. 내일이 없는 사람마냥 여가가생겨도 그저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먼저 이리저리 찾다가 오히려 아무 재미도 없이 흘려보내고 말 때가 많다.
열 권 스무 권짜리 책을 잔뜩 쌓아놓고 마루를 뒹굴거리며 매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던, 해가 영원히 지지 않을 것만 같던 8월 여름방학의 나날들이 그립다.
_ 85쪽

그 결과 고3 때 오히려 짬날 때마다 전투적으로 책을 읽은것 같다. 인간 심리라는 것이 묘해서 가장 바쁠 때 오히려 여가에도 독서나 운동, 글쓰기 등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고, 한가할 때는 그냥 소파에 늘어져 티브이만 보게 된다. 상대적선호의 법칙‘ 이랄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하기 싫을수록 그외의 모든 일들이 평소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적절한 긴장이 필요하긴 한가보다. 게다가 나야 워낙 책벌레 체질이었으니 공부와 독서가 경계선 없이 함께 가기도 했다.
_ 123쪽

그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연결되어있다. 나 홀로 관계로부터 단절되어 세상과 영향을 주고받지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관계의 촘촘한 거미줄 속에서 나는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으며, 또는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_ 127쪽

책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몇 가지를 글로 적어보거나 남과 수다를 떨어보는 거다. 나는 페이스북에 독서노트 삼아 짤막한 독후감을 끄적끄적 올리곤 해왔는데 결국 그 책에서 내가 내 것으로 흡수한 것은 달랑 그게 전부인 것이다. 그거면 내겐 충분하기도 하고.
_ 170쪽

나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무지는 공포와 혐오를 낳는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든 언어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소음과 위협, 공포에 둘러싸여서 사는 것은 불행하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면 의외로 타협하고 수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에게도 평화를 준다. 동시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준다. 미디어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오는 지금은 더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귀를 닫아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당장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세상에나 빼고는 다 정신 나간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_ 193쪽

자신이 믿는 정의 때문에 분노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또는 틀렸어도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_ 219쪽

감히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이들수 있기를 소망한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책과 함께하는 사람.
_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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