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기는 사마의 더봄 평전 시리즈 1
친타오 지음, 박소정 옮김 / 더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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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사마의는 인기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조조나 공명, 관우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다시 쓰는 작업은 종종 있었지만, 사마의의 관점에서 시대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그 무관심의 작업을 지은이는 해냈고, 매우 재미있고 생동감 있는 책을 만들어냈다. 책은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읽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사실 요즘 들어 사마의가 관심을 받고 있다. 왜일까? 아마도 결과를 중요시하는 이 시대의 풍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사마의는 최후의 승리자니까. 이 책의 이름도 그래서 결국 이기는 사마의. 사람들은 승리에 집착한다. ‘스카이캐슬이라는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면 자식에게 권력과 부를 대물림하려는 상류층의 뒤틀린 욕망을 잘 보여준다. 이들에게 한 번 물어보자. 삼국지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아마 많은 사람이 사마의라고 답할지 모른다. 사마의는 명문 세족의 자제였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자식들에게도 사마의를 본받으라고 하지 유비와 같은 인물을 배우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마의의 승리요인은 기다림이라고 한다. 공명과 싸울 때도 그랬고, 조상과 최후의 일전을 벌일 때도 그랬다. 하지만 기다림은 모든 사람에게 비법이 될 수는 없다. 양식이 충분할 때, 힘이 남아있을 때 기다린다. 힘이 없으면 기다릴 수 없다. 결국, 사마의의 기다림은 그의 배경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내공을 쌓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기회를 기다리는 태도는 분명 배울 점이지만 누구나 기다린다고 승리할 수는 없다. 지은이는 사마의의 관점에서 그의 승리요인을 분석하면서도 평가는 냉정하다. ‘제갈량은 시대를 구했지만, 사마의는 자신만을 구했다라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의 평가는 어느 시점에서 가능한 것일까에 대해 다시 의문이 든다.

 

  초등학생 때 삼국지에 한창 빠져있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 묻곤 했었다. ‘○○~너는 유비가 좋아, 조조가 좋아?’ 그러면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유비를 꼽고, 공명을 말하고, 조운이나 관우라고 답했다. 그때는 졌..싸의 협객들과 함께 서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최후의 승리자, 명문가의 자제와 한 편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닌지. 삼국지를 새롭게 읽는 재미를 한껏 느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간언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지만 주군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내 능력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계속해서 간언한다면 주군은 분명 언짢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것이 첫째다. 주군이 간언을 받아들였더라도 만일 상황이 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간다면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것이 둘째다. 내 예상이 맞더라도 내 지략이 주군보다 높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니 주군은 위협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셋째다. 강력하게 간언하면 이런 세 가지 불리한 일이 생기니 당연히 해서는 안 된다. 간언할 줄만 알면 평생 탁월한 모사밖에 될 수없다. 간언하지 않는 현묘함을 알아야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걱정이 사라진다. 전쟁터에서 시의적절한 계책을 내는 데는 내가 유엽 당신보다 못하지만, 관계官界의 권모술수는 내가 당신보다 나은 것 같구려. 조조의 근심은 유비가 아니라 궁궐 안에 있다네!’
_ 127쪽

사마의는 항상 그래왔다. ‘다른 사람이 내게 무슨 일을 맡기는 그 일을철저하게 해낸다. 지위에 맞지 않는 권력을 다투지 않는다. 권력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것이다. 책임과 능력이 일치하지 않으면 정치적 재앙의 근원이된다.
_ 167쪽

제갈량은 그러나 이엄이 개부할 권력만은 주지 않았다. 공자는 "예기와 명작은 남에게 빌려줄 수 없다"唯器與名不可以很고 했는데 어찌 제갈량이 그 속에 담긴 이치를 모를 수 있으랴? 이엄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했다. 하는 일도 없이 표기장군이라는 고위직도 얻고 후방은 아들이 지킬 텐데, 걱정할 것이 뭐 있겠는가?‘ 마침내 이엄은 2만 강주병을 이끌고 북상해 한중 에서 제갈량의 군대와 합류했다.
_ 296쪽

용이 많으면 물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람이 많으면 일을 관리할 수 없는 법이다. 진정한 권위는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다. 관직과 권력 면에서 사마의는 서부 군사지역의 최고권력자였지만, 대촉 작전 경험과 전적에 있어서만큼은 장합의 위엄과 명망이 조금 더 높았던 것 같다.
장합 같은 노장은 독자적으로 어느 한 부분을 맡아서 이끌어야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어느 한 부분을 담당했다면 장합은 적군이 그의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백전 장성將星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밑에 있을 때 그는 나이를 내세워 뻣뻣하게 굴며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꼰대가 되었다.
‘이 자를 제거하지 않고 어떻게 서부 군사지역에서 진정한 일인자가 될수 있겠는가?’
조조 시대의 원로 명장은 이제 아무 말 없이 자리에 누워 있었다. 사마의는 장합의 시신을 침통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 장군, 당신의 시대는 진즉에 막을 내렸어야 했소. 이제 그만 편히 쉬시구려.’
_ 320쪽

사마의는 곽회를 보면서 역시 지혜와 용기를 두루 갖춘 대단한 장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량, 어쩌면 나 혼자서는 당신을 당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사람마다 자기 재능을 발휘하게 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와 힘을 모을 수가 있다. 반면 당신은 뛰어난 재능과 지혜를 믿고 남의 도움 없이 무슨 일이든 자신이 직접 하려고 하지.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실수는 하게 마련이라네!’
_ 344~345쪽

사마의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타인의 장점을 잘 배운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사마의에게서 그의 수많은 적수들과 벗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마의는 의심 많은 조조,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조비, 은인자중하고 업무에 힘쓴 손권, 실력을 감추며 스스로를 보호한 가후의 모습과 심지어 제갈량의 공격도구와 행군 진법까지 보고 배웠다.
_399~400쪽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깜냥에 맞는 일을 하고, 큰일을 하면 그만큼 큰 권력이 생기는 법이다. 모름지기 일의 성공 여부는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_ 425쪽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권력이 주어진다. 만약 내가 당신이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아무리 최고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그저 집에서 빈둥거리는 신세가 될 것이다.
_ 438쪽

‘권력이란 남이 준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란 언제나 이과 맞물려 있고 일이 있어야 권력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은 그저 빈 종잇장이나 다름없다. 사마의는 이제 할일을 찾고 있었다.
_ 446쪽

나도 마찬가지다. 그저 신하의 도리와 인간의 도리를 다할 뿐이다. 신하와 인간의 도리란 단순한 이치다. 몸은 낮추고 일은 제대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고 나대면, 큰 나무를 바람이 부러뜨리듯이 다른 사람들의 견제대상이 된다. 또 실속 있는 일을 적게 하면 토대가 불안정해져쉽게 무너진다. 조상의 젊은 패거리들은 확실히 나이든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방법을 생각해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들은 무모하게 덤벼들고 시의적절하게 대처할 줄 모른다. 착실하게 일하지 못하고 성공에만 급급하다 조정의 노신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지만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사생활 단속과 품위 유지를 못해서 늘 추문이따라다닌다. 옛말에 좋은 일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나쁜 일은 천리 밖까지 퍼진다고 했다. 네놈들의 추문은 개혁을 통해 얻은 성과를 덮어버리기에 충분하다.
_ 452쪽

사마사와 사마소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사마의가 그 모습을보더니 형제들을 훈계했다. "도가에서는 기세가 지나치게 성한 것과 사람이 자만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 사계절도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찾아오는데, 내가 무슨 덕성과 능력이 있다고 그 높은 자리에 오래 머물겠느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야 화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니라."
_ 453쪽

그보다 더 무서운 점은, 조상이 미천한 재주마저 다 써버렸을 때가 바로 사마의가 힘을 집중하기 시작할 시기라는 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마소는 아버지의 철학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첫째, 내공을 쌓아 남에게 발붙일 틈을 주지 않는다. 둘째, 지피지기해서 상대의 능력과 동향을 분명하게 파악한다. 셋째,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도움직이지 않고 힘을 길러 적을 제압한다.
_ 465쪽

사마의가 조정에서 수십 년 간 있으면서 불패不敗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인내력과 신중한 태도 덕분이었다. 그는 역사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스스로 해야 하는 일과자손이 하도록 남겨둘 수밖에 없는 일, 자손을 대신해 길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일과 가능한 한 길조차 깔아주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_ 532쪽

사마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자신만 구하고 시대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는 도덕적 기풍과 사람들의 인심이 갈수록 나빠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한나라 말기에는 조조, 유바, 제갈량처럼 걸출한 정치적 인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나마 정치 개혁과 발전의 기미가 있었던 것이다. 사마의는 기왕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이상, 시대의 잘못을 바로잡아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할 중임을 맡아야 했다. 천자를 보좌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뛰어난 능력으로 점점 나빠지는 시대의 운명을 되돌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마의가 한 일이라고는 이제나 저제나 자기 몸 하나 보존한 것이 전부였다. 손권은 삼공이 될 자격이 없다며 가후를 업신여겼다. 가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시대를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면에서는 가후가 순욱에 훨씬 못 미쳤다.
_ 5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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