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두 번 서점 나들이를 한다. 책을 사놓는다고 다 읽는 것도 아니지만, 갈 때마다 한 권 정도는 산다. 왠지 그럴 때면 기분이 고양되는 느낌이다. 보통 서점을 둘러 볼 때 베스트셀러 코너, 신간 코너, 매대, 분야별 서가 순으로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계속 놓여 있는 책들은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랬다. 애초 읽으려고 생각했던 책은 아니었지만, 갈 때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여 있어서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싶어서 샀다. 호기심에 사놓고 한동안은 읽지도 않았다. 그러다 한 번 읽기 시작했더니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손석희 앵커의 추천사 중에 '나는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이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는 데에 경이로움까지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다.'라는 말이 있다. 나 또한 문유석 판사의 생각의 대부분과 그와 생각이 겹친다는 손석희 앵커의 생각까지 포함하여 그의 성향이 상당 부분 나와 겹친다는 데 놀라움을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가 이 책에서 끊임없이 주장하는 바는 '정답은 없다.', '도그마에 빠지지 말자' 이지만 저자와 생각이 같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마치 내가 정답을 찾은 사람처럼 신났다.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글재주가 없어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고 있었다. 앞뒤 좌우로 가득한 꼰대들, 주변의 눈치 보기, 인생의 단계별로 놓여 있는 듯한 통과의례, 남들과의 비교, 기타 등등. 답답한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자'로 살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하지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합리적이고 교양있는 개인주의자들의 연합임을 나도 느끼고 있다.

 

   그 연장 선상에서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의 갑갑함이 어디서 온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나는 나라가 너무 작아서가 아닐까 싶다. 너도나도 똑똑하고 경쟁력이 있지만, 그들 모두에게 돌아갈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파벌을 이루고 무리 안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다른 무리를 배척하고. 이 좁디좁은 우물 안에 너무 잘 생기고 큰 물고기들이 가득하니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병폐가 아닐지. 그렇다면 해결책은 우물 밖을 넓히거나, 옆 동네에 우물을 개척하거나,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스트레스를 줄이며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꼭 공부를 잘해야 성공하는 게 아니고, 꼭 대기업에 들어가야 안정적인 게 아니고, 사람들의 도전 과제가 다양함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목표만 다양하게 설정해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 잘해나가지 않을까? 그만한 능력이 다들 있으니까. 하지만 오로지 공부에 목숨 걸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 쓰는 집단주의 문화가 더 큰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끝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명문장은 없지만, 글이 너무나 편하고 부드럽게 읽힌다. 지은이가 쓰는 판결문도 이처럼 읽기 쉬울까. 그렇다면 더욱 감동적일 것이다. 첫 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번째 장은 배꼽을 잡으며, 세 번째 장은 고민하며 읽었다. 최근에 신간이 나왔다고 하니,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화두로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지은이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개인주의자여! 약진 앞으로! 내가 있는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개인주의자로서 당당히 살아가자. 따로 그리고 때때로 같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견뎌야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말이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식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불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 돌 정 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_ 9쪽

‘다름‘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톨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 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평생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야 될 정도로 백인 경관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한 로드니 킹이 그로 인한 LA 폭동 때 평화를 호소하며 했던 말이다.
_ 10쪽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 꽃씨야.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_ 14쪽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 지루하게 배우던 로크, 밀,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 말이다.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 19세기 얘기를 21세기에 하고 있냐는 반문이나올 것이다.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앞에 ‘포스트‘ 내지 ‘후기‘가 붙은 길고 복잡한 대안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 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_ 23~24쪽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_ 25쪽

어차피 정답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서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_ 27쪽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불행하다는 속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염세주의 철학자는 "수요일에 태어났다고 예외일 수는 없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_ 28쪽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_ 32~33쪽

가성비 좋은 행복 전략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직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기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 생명체의 기본 사명이므로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자기가 선택가능한 직업 중 최선을 선택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취미 활동, 봉사, 사회 참여 등 다양한 행복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_ 54쪽

결국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인 수직적 가치관을 버리고 수평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 서 다양성의 존중, 아니 그걸 넘어서 다양성을 숭상하는 것이 사회 다수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첩경이다. 처음에는 위선이어도 좋고, 듣기 좋은 사탕발림이어도 좋다. 성숙한 가치상대주의가 내면화될 때까지 의식적으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한 가치의 미덕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_ 55쪽

평생 하루하루를 분노, 절망, 투쟁, 당위만으로 채우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불행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 가는 곳에 행복한 유토피아가있을 리 없다. 나는 소박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채워가는, 그러면서도 마음이 가는 일에는 주저 없이 자기 힘닿는 범위에서 참여하는 이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인류역사에는 언제나 비극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불행한 시대에서도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_ 62쪽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갖고 있지는 못하기에 서로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_ 119쪽

베트남도 캄보디아도 결코 우리에 못지않은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겉모습만 보고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치를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_ 127~128쪽

더 심각한 것은 ‘왜 선비인 척하느냐‘는 한마디다. 요즘 인터넷에는 ‘선비질‘이라는 용어가 횡행한다. ‘선비‘가 모멸적 용어인세상이다. 위선 떨지 말라는 뜻이다. 속시원한 본능의 배설은 찬양받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위선과 가식으로 증오받는다. 그러나 본능을 자제하는 것이 문명이다. 저열한 본능을 당당히 내뱉는 위악이 위선보다 나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_ 133쪽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_ 136쪽

판을 흔드는 아이디어를 불쑥 내는 부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관리자들의 할 일이다. 그게 부담스러운 관리자는 무능한 거니까 그쪽이 나가야 하고, 학벌 타령은 이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이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증거다.
_ 166쪽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감히 대단한 명답을 제시해 분쟁을 해결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얻기는 아주 어렵고, 잃기는 아주 쉽다. 오직 진심만이 그 신뢰를 얻는 열쇠일 것이다. 조정 달인의 비결은 아마도 이것이었던 것 같다.
_ 174쪽

유토피아는 믿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다보면, 상상보다훨씬 나빠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스스로 공동구매하지 않으면 강제배급받게 될 테니 말이다.
_ 194쪽

우리 현실에 맞게 응용할 수 있을 뿐 그대로 베끼면 되는 모범답안은 세상에 없다. 할 일은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하나하나 실용적으로 찾아가며 앞서가는나라들의 장점이나 경험을 부분적으로 참고하는 것이다.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유토피아적 환상을 경계하며, 더디더라도 분명히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담대한 낙관주의를 가지고서 말이다.
_ 265쪽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Dare to be an optimist.
_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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