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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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라는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이 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재밌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알쓸신잡에서 익히 봐왔던 대로 문장을 짧게 짧게 잘 구사하고, 비유가 좋다. 중간 중간 이해를 돕는 사진과 그림자료도 덧붙여져 속도감 있게 읽힌다. 물론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위치에너지를 구해 진시황과 파라오의 권력을 비교하는 엉뚱함과 진지함은 재미있다. 한편, ‘괴베클리 테페를 근거로 건축이 농업보다도 먼저 시작된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라고 주장할 때는 건축학도의 자신감이, 동학혁명은 실패했지만 6월 항쟁은 성공한 이유를 온돌과 보일러의 차이로 설명할 때는 건축이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워낙 입담이 좋아 위화감은 없다. 건축이라는 게 그만큼 우리 삶에 중요한 요소이고, 건축을 통해 역사, 경제, 사회, 문화를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힐 뿐이다.

 

   나는 어릴 때 서울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살았는데, 대학생이 될 때쯤 재개발 바람이 불더니 아파트가 군데군데 들어섰다. 그런데 새로 생긴 아파트들이 단지를 빙 둘러서 담을 쌓아놓는 바람에 그동안 편하게 오갔던 골목길이 다 사라져버렸다. 아파트 주민이 아닌 죄로 담벼락을 빙둘러 돌아갈 때의 분노와 슬픔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등하교길과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모두 빼앗겨버린 느낌이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건축물의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일텐데,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이렇듯 폐쇄적이다. 주민의 안전을 이유로 벌어지는 만행이다.

 

   주변과 이야기하지 않는 건축, 획일화 된 건축은 아파트 뿐만이 아니다. 학교 등 공공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한 신문 칼럼에서 학교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교도소를 지을 때보다도 덜 들어간다고 비판했다. 이 책에서는 더 나아가 우리나라 학교건축은 교도소나 연병장과 막사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비판한다. 하긴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신도시에 새로 지어지는 학교조차도 여전히 내가 다니던 6~70년대 지어진 학교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런 건물에서 자란 아이들은 폭력성과 획일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건축결정론이 될 수 있어 경계해야하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획일화되고 전체주의적인 사회구조가 바뀌기 위해서는 우리 건축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이런 시설에서 12년을 보낸다면 그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똑같은 옷, 똑같은 식판, 똑같은 음식, 똑같은 교실에 익숙한 채로 자라다 보니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왕따를 시킨다. 이런 공간에서 자라난 사람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평생 양계장에서 키워 놓고는 닭을 어느 날 갑자기 닭장에서 꺼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 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대형 학교 건물 안의 똑같은 교실, 숫자만 다른 3학년 4반에서 커 온 아이들은 대형 아파트의 304호에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살다가 나중에 똑같은 납골당에 나란히 안치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체주의적인 공간에서 지내게 된다. 이런 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대기업과 공무원과 대형 쇼핑몰을 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의 학교 건축은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어른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건축의 변화가 시급하다.

_ 28~29

   언제부턴가 사는 곳은 돈벌이의 대상이 되어 사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미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부동산 만큼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 투자라고들 한다. 며칠 전에 발표된 주택정책을 두고도 논란이 뜨겁다. 회의주의자들은 무엇으로도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수요가 많아서 그러니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한다. 집값 상승을 막으려는 강한 정책은 어리석은 자들의 만용으로 비춰져 비판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무능한 집단이라고 다시 비판을 받는다.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곳이라고 재인식하게 되는 데서 시작해야 된다고 믿는다.

 

   정치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하고, 건축도 그 국민의 가치관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좋은 건축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그래서 건축가만 좋은 생각을 해서 바뀔 수가 없다고 한다. 시민 대다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가, 시공자, 허가권을 가진 관리,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이것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 개발이익만 생각하는 천박함으로는 좋은 도시를 얻을 수 없다. 주변환경과 소통하고, 이웃과 교류하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도시의 모습을 바꾸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진다.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기억해보자. 마당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1층은 엄마 주고, 2층은 동생 주고, 3층에 와이프랑 애기랑 살고 싶다는 꿈들. 집값과 땅값에 혀를 내두르며 잊히고 말았던 그 소박한 꿈들을 낡은 일기장 속에써 꺼내볼 때다.

  

제대로 설계된 공간은 갈등을 줄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더 화목하게 하고, 건물 안의 사람과 건물 주변의 사람 사이도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도 더 화목하게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다. 물론 건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갈등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세상에는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축은 건축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다. 세상을 더 화목하게 하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건축을 조금씩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_ 370쪽

 

   끝으로, 아쉬운 점은 책이 덜 정돈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책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체계가 없는 것 같다. 이 것도 의도된 바라면 할 말이 없지만, 체계가 없어서 동어반복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장과 장 사이가 아예 독립적이라면 상관 없지만, 서로 연결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순서가 엉켜 있어서 아쉽다. 예컨대 12공간의 발견이나 8위기와 발명이 만든 도시는 공간과 도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관련된 부분이므로 앞으로 오고, 나머지 부분은 2, 5, 6, 7, 11장과 같은 에피소드와 1, 3, 4, 9, 10장 같은 우리나라 건축에 관한 통찰 및 제언 같은 부분으로 구분하여 재배치한 후 내용을 정돈하는 게 낫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쉬운 점일 뿐 의미있고 재미있는 좋은 책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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