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하는 게 좋을 나의 신념

1.모든 사람들을 수용하려면 자신의 모든 면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모든'에 걸려있는 욕심.

2.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아도 남편은 나를 존중해야 한다. - 우격다짐. // 내가 나를 존중해야 남편도 나를 존중하게 될 걸?

3.나 자신의 수입이 있어야 자신감이 생기고, 떳떳하게 개인적인 돈(친정식구, 친구에게 쓰는 돈)을 쓸 수 있다. - 그래서 돈을 벌만한 일을 찾으려 하고, 그게 안될 때 좌절감을 느낀다. -결국, 자본주의 논리에 걸려든 셈

4.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한테 대접한다. - 어렸을 때, 가장 예쁜 그릇과 가장 반듯하게 썰어진 음식은 손님접대에 쓰고, 자투리나 볼품없는 그릇은 가족들 몫이었으며, 가장 멋진 옷은 외출복으로 입고 무릎나온 추리닝 바지는 집에서 일할 때 입던 엄마.(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엄마가 겉으로는 안그런듯 하지만, 속으로는 엄마자신과 아버지와 가족들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나의 낮은 자존감이 싹텄던 것 같다. 그런 태도의 일면이 생활속에서 이렇게 드러나게 된 것 같다.) 그런 습성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서 상담하겠다고 나서는 건 아닌지...나 자신의 마음속 부르짖음과 가족들 이야기 들어주는 건 소홀히 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귀기울여 듣고...

오늘 아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걸 가족에게(그리고 나자신에게도) 대접하자." 그리고 나아가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웃과 친구와 친지에게도 가장 좋은 것을 대접하자.-"사는 건 정성일세"라고 하셨다던 경허스님의 말씀을 우선 가정에서 실천하면서 내 체력의 한계를 감안해서 조금씩 범위를 넓히자. 아이들이 커가면서 지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수입이 조금씩 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유니세프, 월드비전, 몇몇 천주교 재단에 기부하는 것은 계속하고, 나의 노력은, 아이들이 클때까지는 나자신의 공부(어떤 공부가 될지 아직 안 정했지만)와 우리 가족에게 향하자. 

가족이기주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조카들과 이웃의 아이들도 돌아보면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를 너무 소홀히 대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남편이 가정적인 사람이라서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준 것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니(나도 남편에게 그렇고),  나 스스로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어야 메마름과 공허감에 빠지지 않게 될 것 같다. 그동안 계속해서 남편에게 요구하고(말없이), 기다리고, 실망하고 화내고 그랬는데, 허사였다. 그런 사람인 걸 좀더 일찍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어리석었던 것을...내가 나자신과 남편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안달하던 기운이 아이들에게 돌아가고...어제도 들째 재원이한테 크게 화냈다. 내가 어렸을때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받아들이기 힘든 단점(시야가 좁고 융통성 없음)을 그 애가 행할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안그러려고 해도 엄마한테 혼나던 장면대로 하게 된다. 나름대로 조절하려고 하지만, 그게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제어가 어렵다. 아직 그 시절의 나자신과 화해가 안됐기 때문이리라. 이제 화해하고자 한다. 어릴 때 그럴수도 있지...이제는 괜찮지 않은가...

코리박사는 내담자에게 알려주는 내용을 상담자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라고 권한다.

내가 요즈음 내담자에게 질문하고 싶은 내용이 그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받았나요? 가장 좋은 것을 받았나요? 부모님은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분들이었나요? 부모님이 당신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은 것-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요즈음 나에게는 관심, 이해, 받아들임, 존중, 정돈된 집, 깨끗이 빨아진 옷, 정성이 담긴 음식 등등 시간과 사랑을 요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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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이라고 하면, 자신이 어떤 것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는채 빠져있는 경지를 말하는 거겠지? 갑자기 사전적 해석이 궁금해진다.

삼매(三昧)-불교에서,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일 / 다른 말 아래 쓰이어 그 일에 열중하여 여념이 없음을 이르는 말. 삼매경.(독서~)

그동안 참 정신산만하게 지내왔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산만하기 때문에 우리 딸들이 쬐끔 산만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일은 많이 벌이고 싶어하고, 정리는 전혀 못하고... 이런 어수선한 상태로 거의 10여년을 살아왔으니, 조용하고 정리된 것 좋아하는 남편이 견디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요즈음 든다.

아이들의 요구를 어느정도 선에서 제지해야 할지 정해놓지를 않고, 하자는대로 해주고 싶어서 아이들 욕구를 따라다닌 결과다. 쉬고 싶어서 내버려둔 적도 많고...

오늘 태극권 배우다가 갑자기 그 의미가 다가온 대목:

1.손을 먼저 움직이고서 팔과 몸이 따라가도록 하지 말고, '몸이 먼저 움직이고, 어깨, 그 다음 팔꿈치, 그리고나서 손'의 순서로 움직이라는 말씀. 이런저런 욕구들을 따라가지 말고 중심을 잡고 움직이라는 말로 들렸음.

2.세세한 근육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하라는 대목: 내가 하고 있는 활동에 의식을 함께 해서 집중하라는 말로 들림-얼마나 자주 몸 따로 마음 따로 하고 있는가...청소하면서 아이 성적 생각하고, 아이가 돌아오면 빨래 널 생각하고, 남편이랑 있으면서 내담자 생각하고, 밥먹으며 책 생각하고...그러니 능률이 안오르고 정신이 피곤하지.

3.하루에 한가지 동작을 배우는 아주 느긋한 진도-과정에 충실하라는 걸로 느껴짐. 자주, 한동작과 다른 동작 사이의 연결 동작이 헷갈리는데, 내가 얼마나 치밀하지 못하고 황황한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상담일 잠시 쉬면서 재충전하고, 중심잡기를 하고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내가 이런저런 일에 지치지 않고,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내담자와 다른 상담자가 상담하는 것이 나을 내담자를 구분하고, 내담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하려면, 아이들에게 해 줄 것과 안해 줄 것을 보다 더 분명히 하고, 해 줄 것은 더 마음을 기울여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아이 중심에서 벗어나서 부부중심으로 삶의 줄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태극권이 기수련을 겸하는 운동이라서 깊이가 있고, 일상생활도 좀더 차분해지는 것 같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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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하는 글쓰기 중,   - 스티븐 킹의 창작론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러하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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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삶과 글을 읽으며 이 사람도 참 살기 힘든 사람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글쓰는 재주도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섰을까'...

뭔가(독서와 글쓰기)에 빠지지 않고는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으리라 생각해 보았다.

하긴, 독서와 글쓰기에 문외한인 내가 어찌 그 깊은 마음을 알랴만은...

 

나에게 생명수는 뭘까? 행복해지고 싶다.

지금까지 숨차게 달리다시피 하며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선' 힘은 상담공부랑 마음공부의 힘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갈림길에 이른 듯한 기분이다. 그대로 상담분야로 나아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볼지...

내가 어차피 매우 의존적인 사람이 분명하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굳이 애쓰며 상담가(거의 도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내담자를 제대로 치유할 수 있는)의 길을 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껏 도인을 동경해왔던 것이 스스로 우습게 여겨진다. 도인이 되고 싶었다. 몹시도. 마음속에 내가 그려왔던 도인은 어느정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다른 사람을 힘차게 도와줄 수 있는 도인상이었다. 오리정승 이원익의 일화에서처럼 소소한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

그런데, 그런 성품이 내 천성의 거의 반대되는 성품이기 때문에 그토록 구하려 애썼던 것 같다.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다. 내가 그런 성품을 페르조나로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그 반대되는 나의 성품의 대부분은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음을... 난 대책없이 감성적이고, 뭔가 하나에 푹 빠지다가도 싫증 잘 내고, 옳은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주로 하고싶고...그런 사람인 것을 알겠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 갈 길을 모색해 봐야겠다. 상담소에서 일주일에 한번 하는 공부는 계속하고, 태극권도 꾀부리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 나가고, 그러면서 이 갈림길에서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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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요즈음 머릿속이 수세미처럼 엉켜있는 듯한 느낌이다. 상담공부를 계속하는 것에도 회의적이고... 인격으로 치유하는 것이, 내담자에게 봄이 오도록 해야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도, 다 부담스럽다. 내가 정서적으로 오르내림이 크고, 내 마음에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3월의 날씨처럼 따뜻해지는가 하면 도로 겨울날씨로 되돌아가곤 한다.) 무슨 수로 봄을 선사하랴...

지금 상태는 작은 범위의 삶을 살기에는 문제 없지만,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을 돕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상담 분야도 넓으니까 정서가 깊이 개입되지 않는 상담 분야를 모색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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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정수
한국리더십센터 전문위원
  아내와 자주 영화관을 찾는 나는 왕의 남자를 보고 나서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패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인 장생(장우성 분)과 나약하고 여성스런 공길(이준기 분) 그리고 정신 없는 연산군(정진영 분)의 리더십이 두드러지게 크로즈업 되었기 때문에 더욱 재미를 더했는지도 모릅니다.

  장생은 일반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강한 카리스마의 소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시골출신의 광대패이면서도 서울 패거리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왕을 공략하는 아이디어와 집중력은 관중이 예측 못했던 그만의 독특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이가 마음에 후련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억눌렸던 우리네 서민들의 감정이 장생을 통해서 분출되는 대리 만족을 맛보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장생의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일 것입니다. 장생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산군과 장녹수를 대상으로 선택했고, 목숨을 걸고 리얼한 표현력을 나타내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라매의 사냥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라매는 자신이 목표로 삼은 사냥감을 공격할 때는 공중에서 목표물을 향해 대각선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막 바로 땅으로 내리 꽂습니다. 이때의 속도는 컴퓨터로도 측정하기가 어려운데 약 300킬로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동물 중에 가장 빠른 치타가 200킬로 정도를 달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속도입니다. 보라매는 이 속도를 이용해서 가장 빨리 목표물에 접근하고 먹이를 낙아 챕니다. 보라매의 먹이사냥은 목숨을 건 작업입니다. (공군이 보라매라고 하는 것도 한국 매의 독특한 사냥법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생은 이렇게 왕에게 접근하고 극적인 반전을 통하여 관객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서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장생이 보여준 리더십의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리더십을 강의하는 사람이므로 이들 주인공의 리더십을 한번 진단해보겠습니다. 리더십의 거장이라고 하는 존맥스웰박사는 리더십에는 5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하위단계인 1단계는 지위의 리더십으로 지위를 갖게 되면 자연히 갖게 되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다음 2단계는 허용의 단계로 리더와의 인간적인 관계로 따르는 추종자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3단계는 성과의 단계로 사람들은 성과를 내는 리더들을 따르게 되는데 이유는 그 리더를 따르면 그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4단계는 인재양성의 단계로 이 단계에 있는 리더는 사람들을 양성해서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해 내는 리더십이 있기 때문에 조직과 조직원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5단계는 성품의 단계인데 이 단계의 리더는 성품과 역량을 갖춘 리더로서 뛰어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갖춘 리더들을 말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테레사 수녀, 마틴루터 킹목사,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연산군이나 장생은 어떤 단계의 리더일까요? 연산군은 말할 것도 없이 1단계의 리더입니다. 연산군이 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장생은 3단계에 속하는 리더십의 소유자입니다. 이유는 장생의 탁월한 리더십과 능력으로 비록 시골출신의 광대였지만 많은 무리를 거느리게 되고 천한 광대의 신분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궁궐생활도 하게 되어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추종자들에게도 한때나마 광대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해줍니다. 일개 광대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놀라운 업적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장생은 공길(인준기 분)에게 연연한 나머지 육갑이, 칠득이, 팔복이 등 그를 믿고 따르던 추종자들이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내내 장생이 보여주었던 호연지기의 감동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막판에 보여주는 장생이 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왕의 남자는 피터드러커가 “리더십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일하는 능력”이라고 말한 것이 입증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우리시대에도 5단계에 속한 리더들이 주는 감동적인 영화로 관객의 입장에서 기립박수를 하게 되는 날도 머지않아 오게 되리라고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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