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주 영화관을 찾는 나는 왕의 남자를 보고 나서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패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인 장생(장우성 분)과 나약하고 여성스런 공길(이준기 분) 그리고 정신 없는 연산군(정진영 분)의 리더십이 두드러지게 크로즈업 되었기 때문에 더욱 재미를 더했는지도 모릅니다.
장생은 일반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강한 카리스마의 소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시골출신의 광대패이면서도 서울 패거리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왕을 공략하는 아이디어와 집중력은 관중이 예측 못했던 그만의 독특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이가 마음에 후련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억눌렸던 우리네 서민들의 감정이 장생을 통해서 분출되는 대리 만족을 맛보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장생의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일 것입니다. 장생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산군과 장녹수를 대상으로 선택했고, 목숨을 걸고 리얼한 표현력을 나타내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라매의 사냥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라매는 자신이 목표로 삼은 사냥감을 공격할 때는 공중에서 목표물을 향해 대각선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막 바로 땅으로 내리 꽂습니다. 이때의 속도는 컴퓨터로도 측정하기가 어려운데 약 300킬로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동물 중에 가장 빠른 치타가 200킬로 정도를 달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속도입니다. 보라매는 이 속도를 이용해서 가장 빨리 목표물에 접근하고 먹이를 낙아 챕니다. 보라매의 먹이사냥은 목숨을 건 작업입니다. (공군이 보라매라고 하는 것도 한국 매의 독특한 사냥법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생은 이렇게 왕에게 접근하고 극적인 반전을 통하여 관객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서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장생이 보여준 리더십의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리더십을 강의하는 사람이므로 이들 주인공의 리더십을 한번 진단해보겠습니다. 리더십의 거장이라고 하는 존맥스웰박사는 리더십에는 5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하위단계인 1단계는 지위의 리더십으로 지위를 갖게 되면 자연히 갖게 되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다음 2단계는 허용의 단계로 리더와의 인간적인 관계로 따르는 추종자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3단계는 성과의 단계로 사람들은 성과를 내는 리더들을 따르게 되는데 이유는 그 리더를 따르면 그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4단계는 인재양성의 단계로 이 단계에 있는 리더는 사람들을 양성해서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해 내는 리더십이 있기 때문에 조직과 조직원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5단계는 성품의 단계인데 이 단계의 리더는 성품과 역량을 갖춘 리더로서 뛰어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갖춘 리더들을 말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테레사 수녀, 마틴루터 킹목사,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연산군이나 장생은 어떤 단계의 리더일까요? 연산군은 말할 것도 없이 1단계의 리더입니다. 연산군이 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장생은 3단계에 속하는 리더십의 소유자입니다. 이유는 장생의 탁월한 리더십과 능력으로 비록 시골출신의 광대였지만 많은 무리를 거느리게 되고 천한 광대의 신분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궁궐생활도 하게 되어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추종자들에게도 한때나마 광대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해줍니다. 일개 광대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놀라운 업적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장생은 공길(인준기 분)에게 연연한 나머지 육갑이, 칠득이, 팔복이 등 그를 믿고 따르던 추종자들이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내내 장생이 보여주었던 호연지기의 감동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막판에 보여주는 장생이 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왕의 남자는 피터드러커가 “리더십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일하는 능력”이라고 말한 것이 입증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우리시대에도 5단계에 속한 리더들이 주는 감동적인 영화로 관객의 입장에서 기립박수를 하게 되는 날도 머지않아 오게 되리라고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