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앞둔 당신에게
줄리아 카메론 지음, 정신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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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날개의 저자 프로필이 인상적이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하여 그의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으나 스콜세지의 아내로만 취급받는 현실 앞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혼 후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며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는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창조성을 일깨우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비행기 여행을 앞두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친구들에게 "날 위해 기도해줘" 부탁하기도 하고, 비행기 여행은 안전하다고 되뇌이며 이성적이 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가장 최신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항공사를 고르고 골라 표를 구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공포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머릿속은 온통 걱정과 망상으로 가득찬다. 


여행 당일, 비행기에 탑승한 뒤에도 공포는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해 신께 기도를 올리고,

옆좌석 승객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기도의 내용에는 한정이 없다.

늘 감사함의 기도, 두려움을 없애달라는 기도, 

적은 간식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할 땐 웃음을 자아내기도 나왔다. 


책은 비행 공포증을 이겨내며 그녀가 한 번의 여정을 잘 마치고, 또 다른 여정으로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다음 과정은 훨씬 수월하다.

딸의 출산을 맞아 떠나는 비행기 여행은, 그 전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비행공포증은 인생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었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이 적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당신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라.

게이트에 서 있는 공항 직원에서부터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과연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지 한번 상상해보자.

 나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내 안의 걱정도 어느 새 조금은 사라질 것이다."

'공항'이라는 전제를 소거하고 마음에 담는다.

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세상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던가. 

당연히 타인의 1톤 불행보다, 내 1그램의 불행에 몸부림치는 것이 사람이겠지만, 가능하다면.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자신의 고민과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고 싶은 마음은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수십 명,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안전한 여행'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나에게만 집중했던 마음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우리는 이른바 동료의식까지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두려움이 생긴다면, 그 일을 왜 꼭 해야하는지 세가지만 떠올려 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실천의지가 강해지고, 훨씬 즐겁게 일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또한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도 다스릴 수 있다고. 


다른 유명인사들의 경구들도 담겼다. 


"당신이 비록 날개 없이 태어났다고 해도

 날개가 자라는 걸 막는 일만큼은 하지 말라.

 - 코코 샤넬"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한 페이지만 읽은 책과 같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 - 조지 무어"


읽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이건 혹평이 아니다.

방심한 채 편안히 읽어도 마음을 채워주는 고마운 책이다. 

넓게 봤을 때 우리는 모두 여행자가 아니던가.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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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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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늘어져 읽을까 하다가, 첫장부터 나를 일으켜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낯익은 이 문구, 이 책에서 나온 것일까 하며.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며 스물 다섯 해를 살아온 스스로를 반성한 안진진.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다짐한다. 

동어반복 같은 그 말, 사실은 진리와 같은 그 말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인생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에 내 생애를 걸어야겠는가. 시작부터 그녀를 응원한다. 


그녀는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돌아본다. 

"내 삶을 변명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삶을 들춰내야 한다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변명처럼 들린다. 게다가 스물다섯의 다 커 버린 나이에는 수치스러운 변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검토할 수도 있다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 삶의 뿌리를 더듬기 위해 어머니가 등장하는 것이 꼭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다."


쌍둥이로,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엄마와 이모의 삶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던 그녀는, 

일찍이 삶에 대한 동기를 잃어버렸던 것을 직시한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엄마 탓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오히려, 가정, 사회, 제도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영악함만 있고 자존심은 없는 인간들"을 경멸하는 우리의 안진진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며, 인생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 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안진진은 결혼을 다짐한다. 

내가 뭔가를 의아하게 여길만하면, 어김없이 작가의 대답이 들려왔다. 

가령, 인생에 생애를 걸겠다는 다짐이 결혼으로 이어져야겠느냐, 는 의문에 그녀는 답한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제발, 부탁이니, 누구도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며,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본인 역시 이미 충분히 사색하지 않았겠느냐고.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아무렴, 나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할 뿐. 


결혼을 마음 먹었으나 사랑이 뭔지 알길이 없어, 안진진은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에서 갈등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유사 사랑인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한 그녀의 고군분투. 


"나는 감상과 유치함에 대해 언제나 과감하게 적대적이었으니까." 라고 말하는 안진진이지만, 

그녀의 로맨스는 확실히 오글오글한 면이 있었다. 그게 싫지 않고, 귀여웠다.

그 덕분에 묵직한 제목에 비해 책은 전체적으로 명랑한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안진진은 스물 다섯이니까. 


이런 생각 역시 풋풋했다.

"마음에 어떤 표시가 나타나야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것인지 나는 정녕 알 수 없었다."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사랑이 뭘까 탐구하는 그녀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며 열렬히 응원했다.

결국 그녀가 찾은 사랑은, 나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여 줄 수 있다.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남김없이 다 솔직해 버리면 사랑이 누추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녀의 사랑 역시,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똑같은 사랑을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안진진은 <새의 선물>의 진희를 떠올리게도 했다. <모순>을 먼저 봤다면 <새의 선물>을 보며, 안진진을 떠올렸을 것이다.

안진진의 어린 모습이 진희구나, 하고. 

스스로를 영악하다 생각하나 한없이 순진무구한, 아이. 

생각할 줄 아는 근사한 아이. 

모순 뿐인 세상을 기꺼이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 

어떤 표독스러운 말을 할지라도, 사실은 그 누구도 미워할 줄 모르는 착해 빠진 아이. 

그것은 어머니와도 같다. 술주정뱅이에, 일생을 부랑하던, 못 고칠 병을 얻고서야 집에 들어온 남편을 받아주는 안진진의 엄마.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했을뿐만 아니라 포기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안진진 역시, 삶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면에서, 안진진과 퍽 대조적인 사촌 주리가 등장한다. 

끝내 안진진에게, 너희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옳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촌 주리. 

동의 여부를 떠나, 그녀가 무례했음을 성토하고 싶은 나를 두고, 안진진은 말한다.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빼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 준 중요한 진리였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모든 의무를 다했어."

끝내 주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진리란, 오직 하나만이 존재하므로.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안진진은 그녀를 이해할 것을 그만둔다. 

"탐험해봐야 할 수많은 인생의 비밀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주리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재미있는 인생의 비밀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말이다."


안진진은 주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이모와 이모부 때문에 철저히 원천봉쇄되었다 생각한다. 

단지 유예된 것은 아닐까.

살면서 오는 고통은, 그 고통 자체의 크기보다, 내가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을 테니. 

몸이 아픈 것마저 "그게 다 응석인 거야. 평생 늘어진 팔자에 할 일이 그것말고 뭐 있어야지"라고 엄마에게 평가받던 이모가,

자살을 택하고 말았던 것처럼. 

"이모는 자신의 죽음으로 자식들의 삶이 완벽하게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막아냈다. 주리와 주혁은 평생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반추하며 살아갈 것이었다."


스물 다섯의 안진진을 보며 나를 떠올리기란, 겸연쩍은 면이 없지 않다.

작가 나이 불혹이 넘어 썼으니 그때 가질 수 있는 삶의 통찰이 담겨있다해도, 안진진이 그 나이인데는 이유가 있는 법.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가끔은 과거의 나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 미래의 나마저 엿보았음을.


안진진이 아닌 양귀자로부터 나온 말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 

"이십대의 젊음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천하무적의 무기이니까."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안진진으로부터 나왔다면, 모자란 나보다 진작 삶을 통달했다고 인정해줘야겠다. 

불혹이 넘어 이십대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스물 다섯에 이십대의 찬란함을 깨쳤다면 안진진, 진작 내 친구 삼았어야 하는데! 


읽으며 이거다,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해 본다. 

나의 이십대에 읽었다면, 나를 조금 더 흔들었을까, 흔들리는 나를 붙들어주었을까.

이제는 쓸모없는, 무용한 생각. 

순간의 무용함 또한,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니까.

'순간'에 방점을 찍는다. 

결국, 무엇보다 유용하다고. 


다시 옮기는 안진진의 말.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빼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 준 중요한 진리였어." 


나는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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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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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된 가난은 처절했다. 

작가의 말에선 가난의 묘사를 오히려 축소시켰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딱히 죄를 짓지 않고도 단지 도망쳤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어린 줄스를 폭행하고, 죽이려 든다. 

이미 몇 번이나 방아쇠는 당겨졌고, 붙잡힌 뒤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건 이미 총알을 다 썼기 때문.  

그들에게 빈촌의 십대 소년이란 살해해도 되는 존재다.

두들겨 맞아 엉망이 된 아들을 보고도, 로레타는 돈을 뺏겼는지 여부만 궁금해한다.

겨우 열 다섯살 전후의 어린 소녀는 "자신이 아직 어린데도 벌써 실패했음을 의식했다".


빈곤한 상상력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에겐 업신여길 대상이 필요하다. 

"검둥이들", "냄새나는 폴란드인", "느끼한 라틴 놈들"

"그놈의 검둥이들은 백인보다 애를 두배나 많이 낳아요. 아니, 열배던가? 어느 쪽인지 잊어버렸네요. 게다가 전부 영세민 지원을 받으면서, 그 돈으로 포커를 친다지 뭐예요. 내가 다 알아요."


그리고, 서로를 짐스러워한다. 

"그는 엄마를 사랑했다. 누이동생도 사랑했다. 그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이 더러워질까 걱정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면 자신의 약한 부분이 드러날 것 같았다."


처음엔 줄스가, 나중엔 모린이, 아니 베티도.

기회만 잡는다면 벗어나고 싶은 존재, 가족. 

벗어나고 싶은 서로의 '그들'. 

모린은 말한다. 

"이제 모든 걸, 모든 사람을 잊어버릴 거야. 곧 아이도 태어날 거야. 난 이제 다른 사람이야."

줄스의 대답.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온통 악조건 속에서 이마저 부족할세라, 엄마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고고했던 모린,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그러나 결국 성적은 떨어지고, 어느 회사의 비서가 되겠다는 꿈(!)조차 사그러든다.

더이상 그녀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음 수순은 성매매. 

결국 나는 최소한의 복지를 떠올린다. 


절대적 빈곤 속에서, 뭔가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살았다는 점에서, 모든 삶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해의 끝은 어디일까. 

배고픈 자가 훔친 빵을 이해하고, 폭력만을 배워 타인을 해한 자를 이해하고, 

이유 있는 살인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찌할 수 없던 과거를 이해하고, 

이해하고, 또 이해하다보면, 

죄란 무엇인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흘 내리 굶었다고 모두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제 이름을 알기 전부터 맞고자랐다 한들, 모두가 폭력적이 되는 건 아니라고.


결론을 두고 보면 그렇겠지만,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나는 분명 다르다고.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고. 

 

모린은 극중 조이스 캐롤 오츠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책을 씁니다. 아는 것이 무엇이기에?"


작가로서의 양심이자, 사명감, 그리고 경각심으로 읽혔다. 

가난을 말해서 돈을 버는 사람, 그러나 '그들'과 다른 세계에 속한 외부인.

개인적 자성과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책은 시간 순으로 진행되면서도 시점을 계속 달리한다. 로레타에서, 줄스로, 모린으로. 

사건도 무수하여, 지루할 틈이 없다. 

스쳐 지나가는 곁가지 소재까지 묵직하기 그지없다. 소재의 고갈 따위는 조이스 캐롤 오츠에겐 남 얘기일 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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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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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다. 

더블린이건, 서울이건, 사람이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

울고 싶고, 웃고 싶다.


15개의 단편으로 엮여 있는 <더블린 사람들>은, 각각의 단편으로 봐도, 하나의 장편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각 이야기가 딱히 얽혀있지 않지만 더블린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튼튼한 얼개를 갖추고 있다. 

딱히 아름다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두 한량]은 여자 등이나 처먹는 한심한 족속들이다.

레너헌은 건달짓과 온갖 속임수와 간계 따위에 염증을 느껴 어느 순박한 처녀와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코얼리의 공모자일 뿐이다.


[경주가 끝난 뒤]의 지미는 허영과 허황된 꿈에 젖어 감당할 수 없을 도박빚을 지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솟구치는 나의 애정은 뭘까. 

매우 섬세하게 그려진 그들을 들여다보며, 사람을 만난다.

어디에 있건, 어느 시대를 살았건, 사람. 


[분풀이]의 사내는, 이 시대에 그려낸 자화상인가 싶을 정도. 

상사의 부당한 대우에 분개하나 아무말 하지 못하고, 기껏 용기내 한마디 했다가 모두를 -당사자도- 기겁하게 하고, 

친구들과의 술 한잔으로 시름을 잊는다. 

(친구들과 팔씨름으로 힘자랑을 하는 장면에선, 최근의 미-프 수장들의 악수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작은 구름 한 점]의 챈들러는 친구의 성공을 숭배하고 동경하다 못해 제 가정을 하찮게 보며 비관에 빠지다가, 이내 자책한다.

"소용이 없었다. 그는 시를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의 귀청을 꿰뚫었다. 소용없다, 소용없어!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나 매한가지였다."


[어머니] 아, 어머니. 일류 수도원에서 교육 받고, 프랑스어와 음악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로맨틱한 삶을 꿈꾸던 소녀.

혼기가 차자 홧김에 구두수선공과 결혼해 키어니 부인이 된 어머니. 딸을 위한 그녀의 열정을 보라! 


무엇보다 책에 깊이 빠져들게 된 건, 비교적 생애 초기를 그려낸 처음 세 단편 [자매]와 [우연한 만남], [애러비]였다. 

[자매]의 '나'는 생애 최초로 죽음을 마주한다.

"나도 그렇고 이날도 그렇고 전혀 슬퍼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느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성직 매매와 같은 께림칙한 분위기도 엿보이지만, 나는 죽음을 접한 소년에게 초점을 맞추게 됐다. 

학교를 빼먹고 만난 어른과의 [우연한 만남]은 반갑지 않다. 

[애러비]의 '나'는 첫사랑을 앓고, 소년에서 어른의 세계로 한걸음 들어선다. 

"그녀의 이름이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기도와 찬사로 때때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종종 나의 두눈에는 눈물이 그득했고(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때로는 나의 심장으로부터 홍수가 터져서 가슴속으로 쏟아져나오는 듯했다."

"그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허영에 쫓겨 농락당하는 한 마리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두 눈은 번민과 분노로 불타올랐다."


소년의 성장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이블린]은 프랭크와의 야반도주를 앞두고 갈등에 휩싸인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자니 어머니의 일생 - 종말에 가서는 광기로 끝나버린 평범한 자기 희생의 일생 - 의 비참한 환영이 그녀 존재의 핵심에 마법을 거는 듯했다."

그녀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택하건, 다른 선택지이긴 한걸까. 


[하숙집]의 무니 부인은 딸의 사랑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드디어 이때라고 판단했을 때 무니 부인이 그 일에 개입했다. 그녀는 마치 식칼로 고기를 썰듯이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가슴 아픈 사건]의 지루하게 살던 제임스는, 시니코 부인을 만나 그녀를 영혼의 반려자라고 생각하나, 그녀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교제를 그만둔다. 몇 년 후,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 상념에 빠진다. 

"왜 그녀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나? 왜 그녀에게 죽음을 선고했던가? 그는 자신의 도덕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 생활의 방정성을 되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삶의 향연으로부터 추방된 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은 관련된 이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낱낱이 공개된다. 그래야만 했는가. 


[죽은 사람들]의 아내를 향한 욕정에 사로잡힌 가브리엘은, 아내로부터 어린 시절 그녀를 연모하다가 이른 나이에 사망한 소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하나씩 하나씩 그들은 모두 유령이 되리라."

"온 세상에 사뿐히 내리는 눈 소리, 그들의 최후의 하강인 양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사뿐히 흩날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치밀하게 섬세하게 인간을 그려내 애정이 담뿍 들었는데, 작품 해설에 의하면 제임스 조이스 본인이 말하길 

"더블린의 마비된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이다"라고 했단다.

그 마비된 영혼, 어디에나 있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모두가 같다.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한일동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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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 엄마보다 더 아픈, 상처받은 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이현정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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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여성을 위한 책이다. 그 영향력과 치유법에 대하여.

우선 제목에 대한 답을 하자면,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받아들이자. 


"위대하고 아름다운 모성애를 가진 엄마라는 존재는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신성시되기에", 

엄마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는 모두에게, 특히 여성에게 쉽지 않다. 

저자는 엄마와의 관계가 평생에 걸쳐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러나 저자 역시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딸로서 그 사실을 자각한 뒤 독립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기에, 용기를 냈다고 밝힌다.

물론, 엄마 "탓"을 하자는 말은 아니다. 

"분노의 투사가 아니라 이해를 향한 여정"을 제시한다.

책은 쉽게 읽히고, 다양한 사례와 저자 자신의 경험까지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어 격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1부는 "문제 인식하기"로 엄마의 나르시시즘 문제,

2부는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인생 전반에 미친 영향",

3부는 치료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늘 자신안의 "혹독한 비판자들"의 설교와 잔소리와 모욕 속에 살았다고 한다.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으며, 무슨 일이건 잘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비난과 그 세뇌.

이 '비판자들' 때문에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근원을 찾아낸다. 

'탓'이 아니라 '극복'하는 법을 제시하며, 대물림되는 잘못된 사랑을 끊고 그들을 이해하여 진정한 행복으로 가도록 안내한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에서는 나르시시즘을 아래 아홉가지 특징의 인격 장애로 분류한다고 한다.

나르시시즘은 스펙트럼 장애이기 때문에 해당사항은 단 몇 개일수도, 전부일수도 있고, 개수가 많을수록 문제는 커진다고.

1. 자만심이 매우 강해 성취나 재능을 과장하며, 잘하지 못해도 무조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2. 성공, 권력, 능력, 아름다움,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망상 속에 산다.

3.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해서 특별한 사람이나 사회지도자층하고만 어울리고 그들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엄청난 존경을 받고 싶어한다.

5. 특권의식이 있어서 별다른 이유없이 특별대우를 기대하거나 자신의 기대에 맞춰주기를 바란다.

6.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다.

7. 공감능력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정하거나 알아차리지 않으려고 한다.

8. 질투심이 많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생각한다.

9. 도도하고 거만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다.

위의 9가지 특징은 한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늘 "내가 중심이고 너는 부족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것. 

그런 엄마에게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다른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고, 늘 공허하고 욕구불만을 느낀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공허하다면,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반복하지만, '탓'이 아닌 치유의 과정이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품어온 이상적인 엄마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길 바란다. 그래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딸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조종하는 극성 엄마가 될 수도 있고, 아이를 방치하고 응원하지도 못하는 방임 엄마가 될 수도, 드물게는 그 둘의 조합이 될 수도 있다.

양극단을 오고 가기도 하고, 여러 딸을 각각 정반대의 방식으로 양육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딸 둘을 둔 경우, 두 딸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잉성취자이며 완벽주의자 혹은 열등감과 자포자기로 매사에 부진하고 평생 자학하는 양 극단. 

과잉성취 쪽은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사랑해줄 존재를 찾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내면은 거의 유사하다고. 자기 안의 부정적 메시지에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


반면, 아들과의 관계는 다르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아들에게 자신을 투사시킬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들이 모녀지간의 문제를 바로 보게 된다면,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하는 순간, 며느리를 경쟁상대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실제 모습보다 어떻게 보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안에는 매우 초라하고 불완전하며 결점투성이인 자아상이 자리잡고 있다. 

어린 소녀는 자라면서 외모가 아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을 구별해야 한다. 


2부는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딸의 삶에 미친 영향을 말한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것을 성취하지 못하면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낀다.

이들은 커리어우먼이 되든, 완벽한 전업주부가 되든, 여전히 형편없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시달린다. 

자신을 폄하하고, 거만하게 보일까봐 스스로의 장점까지도 평가 절하한다. 

이것은 질투의 대상으로 자라온 어린시절에 기인한다.

위의 모습을 과잉성취자라고 한다면, 반대로 자아파괴자도 나타날 수 있다. 

과잉성취를 했건 자학을 했건, 스스로를 망친다는데선 다르지 않다. 


이들은 왜곡된 사랑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만남이 아닌, 의존적이거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는다. 

건강하지 못한 모녀관계를 그대로 재생할 수 있는 사람,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대를 고르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그 사랑의 결과는 참혹하다. 

저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어떻게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킬지 배우라고 조언한다.

자신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에도 도달할 수 있다.


3부의 제목은 "유산의 종말(치유를 향한 구체적인 단계밟기)"이다. 

저자는 아예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완치될 수는 없다면서도, 상처를 어루만지고 마음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치료과정은 3단계로 구성된다. 1. 문제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단계. 2. 문제와 관련된 감정을 처리하기 3. 재구성 단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2단계를 건너뛰고 싶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결코 그 감정을 다루지 않고는 3단계가 지나도 아무런 치유가 되지 못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치료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엄마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슬퍼하기

2. 엄마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부정적인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3. 진정한 자아 찾기.

4. 엄마와 건강한 관계 맺기. 

5. 스스로의 나르시시스트 특징을 없애서 아이들에게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기.  


매우 흥미로웠다.

딸들이라면, 더욱이 나르시시스트 양육자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어쩌면 눈물 콧물 쏟아내며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듯하다.

상처를 들여다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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