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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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된 가난은 처절했다. 

작가의 말에선 가난의 묘사를 오히려 축소시켰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딱히 죄를 짓지 않고도 단지 도망쳤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어린 줄스를 폭행하고, 죽이려 든다. 

이미 몇 번이나 방아쇠는 당겨졌고, 붙잡힌 뒤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건 이미 총알을 다 썼기 때문.  

그들에게 빈촌의 십대 소년이란 살해해도 되는 존재다.

두들겨 맞아 엉망이 된 아들을 보고도, 로레타는 돈을 뺏겼는지 여부만 궁금해한다.

겨우 열 다섯살 전후의 어린 소녀는 "자신이 아직 어린데도 벌써 실패했음을 의식했다".


빈곤한 상상력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에겐 업신여길 대상이 필요하다. 

"검둥이들", "냄새나는 폴란드인", "느끼한 라틴 놈들"

"그놈의 검둥이들은 백인보다 애를 두배나 많이 낳아요. 아니, 열배던가? 어느 쪽인지 잊어버렸네요. 게다가 전부 영세민 지원을 받으면서, 그 돈으로 포커를 친다지 뭐예요. 내가 다 알아요."


그리고, 서로를 짐스러워한다. 

"그는 엄마를 사랑했다. 누이동생도 사랑했다. 그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이 더러워질까 걱정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면 자신의 약한 부분이 드러날 것 같았다."


처음엔 줄스가, 나중엔 모린이, 아니 베티도.

기회만 잡는다면 벗어나고 싶은 존재, 가족. 

벗어나고 싶은 서로의 '그들'. 

모린은 말한다. 

"이제 모든 걸, 모든 사람을 잊어버릴 거야. 곧 아이도 태어날 거야. 난 이제 다른 사람이야."

줄스의 대답.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온통 악조건 속에서 이마저 부족할세라, 엄마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고고했던 모린,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그러나 결국 성적은 떨어지고, 어느 회사의 비서가 되겠다는 꿈(!)조차 사그러든다.

더이상 그녀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음 수순은 성매매. 

결국 나는 최소한의 복지를 떠올린다. 


절대적 빈곤 속에서, 뭔가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살았다는 점에서, 모든 삶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해의 끝은 어디일까. 

배고픈 자가 훔친 빵을 이해하고, 폭력만을 배워 타인을 해한 자를 이해하고, 

이유 있는 살인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찌할 수 없던 과거를 이해하고, 

이해하고, 또 이해하다보면, 

죄란 무엇인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흘 내리 굶었다고 모두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제 이름을 알기 전부터 맞고자랐다 한들, 모두가 폭력적이 되는 건 아니라고.


결론을 두고 보면 그렇겠지만,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나는 분명 다르다고.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고. 

 

모린은 극중 조이스 캐롤 오츠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책을 씁니다. 아는 것이 무엇이기에?"


작가로서의 양심이자, 사명감, 그리고 경각심으로 읽혔다. 

가난을 말해서 돈을 버는 사람, 그러나 '그들'과 다른 세계에 속한 외부인.

개인적 자성과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책은 시간 순으로 진행되면서도 시점을 계속 달리한다. 로레타에서, 줄스로, 모린으로. 

사건도 무수하여, 지루할 틈이 없다. 

스쳐 지나가는 곁가지 소재까지 묵직하기 그지없다. 소재의 고갈 따위는 조이스 캐롤 오츠에겐 남 얘기일 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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