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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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질병이다. (11쪽)

와오. 이렇게 말하는 직업인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물론 저자가 좋아하는 것은 고통이나 분비물이 아니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설렘과 자신감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전작 <질의응답>이 그랬듯 오묘한 농담이 그득한 책이다. 가령, 임질에 걸리면 수도관이라도 새는 듯 분비물이 계속 쏟아진다는데, 그 챕터를 여는 인용문은 이러하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 누가복음서 17장 27절

덕분에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현미경이 만들어지고 세균을 발견하게 된 뒤에도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는 것도 그렇다. 현미경이 보여주는 세포나 세균, 기생충 등을 아름답게 따라 그렸을 뿐 그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삼백 년쯤 뒤라고. 인간사 참. 

AIDS의 기원이 동물과의 밀접한 접촉에 있다고 하나, 성관계라기보다는 도살하고 도축하는 과정에서의 접촉 때문이라는 설도 생각 못 한 포인트. 거기까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책을 보다 보면 성병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매독이 처음 나타났을 때 이탈리아인은 프랑스병, 프랑스인은 이탈리아병, 독일과 영국은 프랑스병, 러시아는 폴란드병, 아시아인은 유럽인병 등등으로 불렀다고. 허허.

"재앙이 닥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더 나아가 누군가를 탓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76)

흔히 위험한 직업일수록 신이나 미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의지에 앞서 탓할 대상이 필요한지도. 

그런가 하면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질기고 위대한가 싶기도 하다. 미생물을 발전시킨 것이 포도주 덕분이라는 것도 그 예다. 더 좋은 포도주를,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과학을 발전시킨 것. 위대한 술과 욕망이여! 

질 검사를 위해 쓰이는 검경이 무려 이천 년 전의 도시, 폼페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도 놀랍다. 또한 검경을 발전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예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서, 질확대경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유태인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는 몸서리가 처지기도 했다. 

그 밖에도 니체가 보인 말년의 광기가 매독 때문이라는 유력한 설부터, 자궁경부암 검사는 5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고 어떤 검사는 굳이 할 필요 없다는 등의 실용적인 이야기들도 담겼다. 하지만 머니머니 해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으로 보인다. 


성병은 도덕성과는 관련이 없다. 성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성병에 걸리는 일은 섹스의 일반적인 결과이며, 결국 섹스는 우리 인간이 즐기도록 프로그램된 활동이다. 성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므로 감염은 종종 우리가 하는 선택만큼이나 운이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이다. 

12쪽

모두가 성병을 좋아하기 바란다기보다는 극단적인 편견이나 시각을 바꾸길 바라는 것이다. 가령 입 주위의 헤르페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생식기 헤르페스에는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어떤 병에도 절대 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건 어쩔 수 없... 하기야 어떤 병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또 한 가지, 저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도 건네준다. 인류에게 훌륭한 치료제가 많다는 것은 좋은 소식. 그러나, 내성도 만만치 않다는 나쁜 소식도. 

"항생제 내성은 오랫동안 예측된 건강 위기이며 우리 시대의 큰 도전 중 하나다. 내성 발달을 늦추기 위해서는 항생제를 아껴 써야 한다. 우리는 상식과 존중으로 항생제를 다루어야 한다."(32)


아픈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관리 잘 해서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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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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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나오자 엄마는 막막해졌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할머니가 몸조리를 도왔지만 둘째 딸까지 그렇게 해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할머니는 서울에 올라오지도 않았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흔해 빠진 일이다.


아들을 낳고서야 엄마는 당당해졌다. 집에 놀러 온 어른들은 "어디 고추 좀 보자"를 재밌는 말처럼 주고받았고 가끔은 행동으로 옮겼다. 그때마다 강경하게 거부하는 동생이 안쓰러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럽기도 했다. 왜들 그렇게 고추에 집착하는 걸까 의아해하며.


학창 시절, 한 남자 선생님은 십 대 소녀인 우리들을 앉혀놓고 말했다. 여자가 강력하게 저항하면 강간은 일어날 수 없다고.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는 채로 그 말을 곱씹었다.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로 아주 오래.


그 학창 시절, 젊은 선생님이 아이를 가져 배가 불룩해졌다. 우리는 물었다. "선생님! 딸을 원하세요, 아들을 원하세요?" 선생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들!"이라 했다. 누군가가 되물었다. "왜요? 선생님도 딸이잖아요!" 선생님은 득달같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들을 낳고 싶지!"


나는 이미 여러 곳에서 꽤 자주, 내가 여자로서 보고 겪어 온 것들을 말하고 또 써왔다. 그런데도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것이, 앞으로도 계속 쌓여갈 거라는 것이, 이게 현실이라는 것이, 여전히 기막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취해야 할 가장 작고 간단하고 시급한 저항의 행동은 목록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앉아서 생각하고 써라. 스스로 느껴라. (...) 각각의 경험이 더 큰 이야기의 일부임을 깨달아라. (28쪽)

책은 저자의 '목록'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경험은 나와 같고 또 다르다. 그녀는 당신도 이 목록을 작성해 볼 것을 권한다. 이는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연령 차별, 계급 차별, 장애인 차별, 트랜스젠더 혐오, 무슬림 혐오, 반유대주의 등과 뒤섞여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인식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이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어떤 일은 명백할 것이고 어떤 것은 모호할 것이라고. 내 잘못은 아니었나, 내가 유난을 떤 것인가, 운이 나빴던 게 아닌가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리는 잘못된 것을 인정하거나 말하고 신고하는 대신, 무시하라고 훈련되고 유도되고 심지어 압력까지 받아왔기 때문이다. 수치심과 함구는 뒤엉켜 있다. 그렇기에 목록은 중요해진다. 침묵이 계속되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억압을 영속시키게 되므로.


"우리가 이 목록들을 우리의 역사, 우리의 유산, 우리의 일부로 간주하기 시작하면 그것의 어마어마하고 방대한 영향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 이야기에 침투하는지, 그 영향력이 원래 사건의 영향력보다도 얼마나 멀리 뻗어 나가는지를 보게 된다." (29쪽)


저자가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 사이트를 개설하고 전세계 각지의 목소리들을 모으자, 남자들은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며 온갖 폭언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들이 바로 그녀가 폭로하려고 한, "일상화되고 만연한 여성혐오의 증거"(26)다. 그럼에도 한데 모인 수십만 명의 목록은 시스템과 불평등, 구조적 억압이라는 패턴을 드러냈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에게 계속해 말해야 한다고, 슬퍼하고 화내고 애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스스로를 피해자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경을 견디고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여기까지 온 힘과 용기, 회복력을 인정하고 부당한 비난과 수치심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문제는 우리가 아님을 우리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억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를 가시화하고 인정하는 것부터가 해결의 기본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이를 시작으로 잘못된 시스템을 해체하고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태도와 문화적 규범을 바꿔야 한다. 그 과정은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안정적 재원, 지원 지역 간의 격차 철폐, 소수인종 후원, 포르노의 위험성을 알리고 성적 합의와 건강한 연애에 대해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 성폭력 사건에는 특별훈련을 받은 경찰관을 배치하기 등등. 무수히 많은 대안이 있다.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은 하지 말자. 


​이렇게 제도적 변화를 모색하는 동안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경험을 인정하라. 그것이 내 삶을 형성한 방식을 느껴라. 이 일엔 남자도 참여할 수 있다. 태도를 바꾸고 주위 환경을 바꿔라. 


저자는 교육계, 경찰계, 사법계, 정치계, 언론계 등에 넓고 깊게 퍼져 있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짚는다. 성차별을 당연시하며 성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문화들 말이다. 특히 학교가 성 고정관념과 여성혐오, 괴롭힘을 강화하며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에는 치가 떨릴 정도였다. 


여성의 우울과 불안지수가 남성보다 높다는 통계는 언젠가부터 의아함이 아니라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더이상 여성에게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잘못된 시스템과 남성에 의한 폭력을 말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목록을 작성해 보자는 제안은 무척 의미있게 다가온다. 우울한 일을 떠올리고 말하는 것이 때로는 지겹고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실재한 일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취급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목록을 만들어보자. 공유하든, 하지 않든, 그 경험들을 기록하자.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지 말자. 


우리가 인식해야 할, 단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시스템이 문제라면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것. (231쪽)


"당신의 목록을 만들어라.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다. 그것으로 뭘 할 건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좋은 의도 또는 성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핑계로 그것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가거나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묵살하거나 없애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신의 것, 당신만의 것이다. 그것은 진짜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이 목록들을 우리의 역사, 우리의 유산, 우리의 일부로 간주하기 시작하면 그것의 어마어마하고 방대한 영향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 이야기에 침투하는지, 그 영향력이 원래 사건의 영향력보다도 얼마나 멀리 뻗어 나가는지를 보게 된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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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건강해지는 위생 상식 - 곰팡이, 해충, 세균, 바이러스
최덕호.정진영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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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면 다른 동물과 환경에 해를 덜 끼치고 싶다. 동물성 식품을 지양하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숨 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아무렇게나 사는 것보다는 이것이 내 존엄을 지키는 데 그나마 도움이 된다. 동물과 환경을 말했지만 결국 나를 위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불식간에 솟구치는 살의를 느낄 때가 있으니, 모기를 마주할 때다. 몇 방 물려주는 거야 까짓 거 하겠는데 귓전을 맴돌며 왱왱거리는 소리는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동물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한다던데 대체 얘들은 왜 이러나.


선풍기도, 반팔 옷도 집어넣은 지 오래이건만 여전히 우리 집에서 여름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 바로 모기장. 이제 그만 접을까 하다가 한 주만, 딱 한 주만 더 하기를 수차례. 어라? 입동이 지나버렸다. 이제는 정말 접으려 했는데 주말 나들이에 밖에서 물리고 왔더니 또 망연자실. 집에서 물린 게 아니라 해도 그 녀석이 팔팔하게 건재하다는 증거를 보고야 만 것이다. 아이고야. 이러니 생활 위생 전문가가 썼다는 책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PART2에 큰 관심이 있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순서대로 읽었다. 덕분에 유익한 정보들을 듬뿍 얻었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웠던 부분들도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가령 꼭 락스가 아니어도 '일반적인 오염물' 청소는 샴푸나 주방 세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깨알 같은 정보는 무수히 많아서 유용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쓰지 않은 지 오래되어 유통기한이 지났을 애물단지 린스에도 쓸모를 부여하게 됐다. 소량의 린스를 욕실 거울에 문지르고 닦아내면 얼룩도 잘 생기지 않고 김도 방지할 수 있다고. 


도마도 플라스틱, 나무, 실리콘 등 각 소재에 맞는 살균법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고무장갑은 사용 후는 물론 사용 전에도 손을 씻어 위생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니, 당연한 듯하지만 놓치기 쉬운 포인트여서 반갑기도 하다. 


<아는 만큼 건강해지는 위생상식>이라는 제목에 딱 부합하는 책이기에 요약은 무의미하다고 보지만, 굳이 핵심적인 사항을 뽑자면 이 말이 빠지지 않을 듯하다.


"세균이나 벌레는 물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따라서 완벽하게 건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31)


냉장고에서도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저온은 세균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외에도 세탁기, 에어컨, 건조기, 가습기 등 가전부터 조리도구의 사용법까지도 총망라되어 있다. 나를 위해 기록해 두자면 세탁조는 월 1회쯤 과탄산소다 두 컵을 넣고 온수로 1회 세탁하기. 에어컨 작동 후 5분가량은 환기시키기. 


세균과 곰팡이는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필수다. 그 첫 번째 시작은 적절한 환기. 이때 옷장과 싱크대, 창문과 욕실 문까지 모두 열어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새집이고 헌집이고 할 것 없이 나름의 문제점들을 갖고 있으니 무조건 잊지 말자. 하루 30분씩 환기!


새집 증후군을 피하기 위한 '베이크 아웃'은 나도 하면서도 정말 효과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조사 결과 유해 물질 저감에 효과가 있다고. 입주 15-30일 전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여건이 허락한다면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나의 주적이 되어버린 모기 외에도 바퀴벌레와 개미, 집먼지진드기, 머릿니에 대한 해결책까지 나와 있다. 각 곤충들의 습성과 특징들을 하나하나 짚어본다는 것도 인상 깊다. 방충망 점검과 모기장 사용 등은 나도 이미 하고 있는 것이고 고인물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는 것은 좀 난해하겠지만 역시 알찬 정보들이 함께 한다. 실내를 25도 이하, 습도 55%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도.  


모기기피제는 거의 쓰지 않지만 언젠가 유용할 것 같아 기록해 둔다. 현재까지 4개 성분만 효력과 안전성이 인정되어 허가되었다고. IR3535, 디에칠톨루아미드, 이카리딘, 파라멘탄-3,8-디올. 그 외 성분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현재 기준으로는 무허가 제품이라고 한다.


스마트폰과 키보드, 책에도 세균이 득실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도 한 번 더 각성했다. 외출 뒤엔 손을 씻는 것 못지않게 양치질 또한 위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를 하루 대여섯 번씩 닦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모를 때보다는 낫지 않을까. 


각종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방법도 잘 나와 있다. 사용 용도에 따라서 환경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가 각각 관리하므로 좀 복잡하긴 하나, 그 체계를 거칠게나마 알아두는 것이 요긴할 듯하다. 


한 마디로, 집이라는 공간을 쾌적하게 관리하는데 필요한 유용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책이다. 사람 사는 것이 다 제각각이지만 일정한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재생산을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으니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펼쳐보면 좋을 듯하다. 굳이 아쉬운 것 한 가지를 꼽자면 '유모차'라는 표현 정도. 


집에 오랜 시간 머무르지만 완벽하게 청결한 상태로 만드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물론 능력도 없고. 살 만한 곳,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 곳이면 족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책 읽는 내내 솟구친 것은 청소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이로써 나와 내 가족의 건강 증진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테니 반가운 일이 분명하다.


'해당 서평은 리뷰어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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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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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의 기자이자 저널리스트, 오리아나 팔라치.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그녀가 쓰지 않은, 그녀의 자서전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그녀가 생전에 쓴 기사, 칼럼, 에세이, 인터뷰 기사, 강연 원고, 편지, 일지 등 거의 모든 자료들을 망라하여 그녀의 행적을 좇고, 그 중 그녀가 자신의 생애를 직접 기술한 내용만 실은 것이 이 책이라고 한다. 대단한 공이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탈리어판 편집자는 이 책이 그녀 삶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고 있다.


1929년생. 그녀의 유년기에는 전쟁, 무솔리니, 가난이 있었다. 무솔리니에 항거하는 피렌체의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를 이끈 지도부 중 한 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소녀 시절부터 그 저항운동에 참여한다. 
전쟁을, 폭격을 두 눈으로 목도했고, 그때부터 반전과 자유를 신념으로 삼게 된다. 

의대에 입학하나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 신문사의 리포터로 활동한다. 1967년엔 베트남 종군기자를 지원하고, 그 후 전세계를 누비며 기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게 된다. 무려 세 번의 총상도, 그녀를 막진 못했다. 

그녀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정확성과 사실성이 족쇄처럼 느껴졌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그녀는 글쓰기는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자신은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얼마나 마약처럼 글쓰기에 빠져들었는지를 보여준다. 

뜨거웠으나 고통스럽게 끝나고 만 사랑. 그녀의 고통이 생생히 느껴진다. 책 전면에 걸쳐 그녀의 인생 자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자유에 대한 투철한 신념 역시 인상깊다. 그녀는 자유는 꿈이지만 결코 단념할 수 없다고, 완벽하고 순수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 꿈을 좇기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pp191-195). 본인이 쓰지 않은 자서전이라는 이 복잡한 작업을 출판사가 자진하게 된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나는 죽음을 증오한다. 나만큼 삶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삶을 즐기고 삶에 애착을 느낀다. 나는 태어난 것을 기뻐한다. 불행한 일을 겪을 때도 태어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p231) 

어느 분야거나 지난 세대를 풍미한 여성이라면, 여성으로서의,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거나 갖게 된 생각도 궁금할 테다. 이런 질문이 더이상 의미를 상실할 때, 그때 페미니즘은 역사의 뒤안길로 향하리라. 

그녀는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에 관해 글 쓰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변해간다. 그녀는 말한다. 무슬림 국가에서 남자는 얼굴을 가리지 않으며, 중국에서 남자는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오그라든 7센티미터의 발을 만들지 않고, 순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태형을 당한 일본 남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여성은 정의와 상식이 주는 안정된 균형 없이,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릇된 방식으로 살아간다." (p83)

그녀가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일하러 나가! 일해!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p61)이라고 주문한 엄마. 팔라치는 엄마 역시 늘, 언제나, 많이 일했기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묻는다. 엄마가 했던 건 일이 아니냐고. 엄마는 답한다. "아니었어. 그건 노예였어."(같은쪽)

"남자들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적이고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여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해부학상의 어떤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체의 차이와 더불어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터부를 말하는 것이다." (p79)

스스로를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다"(p183)고 말하는 그녀. 결혼생활에 숨어있는 속박과 소유욕을 혐오하며, 절대 결혼한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고 당당히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모순이 보인다. 연인과의 동거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녀. 그것이 매우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바꿔 보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에 반감을 품으면서도,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문제는 짚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 역시 의아하다. 보다 복잡한 문제도 있다. 가령, "나는 모성의 개념에 집착한다." (p187)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은 아래의 문장. 
"내게 최고의 덕목은 남자다움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남자다움이고, 용기는 남자다움이다. 한 여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칭찬은 "당신은 남자다워요. 당신은 위대한 남자예요." 라고 생각한다. 나는 위대한 남자가 되기 위해 뭐든 할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삶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지만, 이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해서는, 여자는 영원히 하등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다고 해도, 그녀의 삶은 충분히 근사하고, 귀감이 될 만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유교의 영향일까. 
그녀 스스로 "내 인생은 언제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p157) 고 말하는 것엔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또한 그녀의 미국에 대한 선망에는 조금은 비합리적인 면이 보이기도 한다. 

가장 뜨악했던 것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다. 그녀는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인정한다. 그는 착한 무슬림은 소수라고 말한다. 
"친구들이여, 이민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서양에 침투해서 유럽의 이슬람화, 즉 유라비아 공포로 몰아넣는 트로이 목마다. 이민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우리를 정복하고 말살하고 파괴하기 위한 수단이다." (p258)

완벽하지 않았다 해도,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자유에 대한 신념, 삶에 대한 열정. 여전히 빛난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행성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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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 한국 KBS, 영국 BBC, 독일 ZDF 방영 다큐멘터리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류종훈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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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엮였다. 급변하는 정세에 편승하기 위해 졸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1년 6개월 이상 걸렸고, 해외 방송사들과도 공조 하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침 좋은 시기를 맞은 듯하다. 



북한을 알기 위해 책은 두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파워 엘리트', 경제를 알기 위해 '해외 노동자'.


인상깊은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정일이 수십 년간의 후계자 수업을 받고 중년의 나이에 정권을 승계받은 반면, 김정은은 김정일의 급격한 건강 악화로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권력을 승계받았다. 김정일은 그의 사후 김정은 정권을 함께 이끌어갈 조력자들을 요직에 배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 정권 7년 동안 핵심 요직의 거의 모든 인물이 바뀌었다고 한다. 제작팀은 김정은을 북한 최초의 시스템형 지도자로 분석한다. 실무 위주의 인물들을 등용하고, 주로 젊은 인물들을 쓰지만, 노령의 나이여도 능력만 있다면 관계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 알다시피, 북한은 사실상 왕조체제다.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는 인물 중 김정은의 이복 누나인 김설송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한 것은 그녀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공식적인 자리에 보이는 것은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정이다. 김정은 내외를 개방적이고 젊은 통치자 부부로 연출한 것도 김여정이라고 한다. 


정치지도층보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해외 노동자 부분이다. 연구 기관마다 5만 여명에서 1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이들은 북한 경제를 떠받치고 있어 스스로를 '달러 히어로즈'라 부른다고.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히어로즈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슴이 미어진다. 가혹한 노동 환경, 그에 미치지 못하는 보상에 육체는 물론 심리적 고통까지 호소한다고 한다. 심지어 말레이시아의 탄광은 그들의 죽음을 덮고 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1960-70년대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특정 국가나 국민이 아닌, 보편적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결국 모든 것은 돌고 돈다. 최소한의 인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가 누구든지간에. 


미국의 압박에 따라 해외 노동자 송출이 불가능한 위기가 다가오자, 북한은 스스로를 정상 국가임을 보여줘야 했고, 각국과의 정상회담은 필연적이었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이 됐든, 이 시류 잘 이어져 평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절은 지난 분위기 같다만, 어찌됐든 평화만은 부디.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 가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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