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이다. 

더블린이건, 서울이건, 사람이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

울고 싶고, 웃고 싶다.


15개의 단편으로 엮여 있는 <더블린 사람들>은, 각각의 단편으로 봐도, 하나의 장편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각 이야기가 딱히 얽혀있지 않지만 더블린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튼튼한 얼개를 갖추고 있다. 

딱히 아름다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두 한량]은 여자 등이나 처먹는 한심한 족속들이다.

레너헌은 건달짓과 온갖 속임수와 간계 따위에 염증을 느껴 어느 순박한 처녀와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코얼리의 공모자일 뿐이다.


[경주가 끝난 뒤]의 지미는 허영과 허황된 꿈에 젖어 감당할 수 없을 도박빚을 지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솟구치는 나의 애정은 뭘까. 

매우 섬세하게 그려진 그들을 들여다보며, 사람을 만난다.

어디에 있건, 어느 시대를 살았건, 사람. 


[분풀이]의 사내는, 이 시대에 그려낸 자화상인가 싶을 정도. 

상사의 부당한 대우에 분개하나 아무말 하지 못하고, 기껏 용기내 한마디 했다가 모두를 -당사자도- 기겁하게 하고, 

친구들과의 술 한잔으로 시름을 잊는다. 

(친구들과 팔씨름으로 힘자랑을 하는 장면에선, 최근의 미-프 수장들의 악수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작은 구름 한 점]의 챈들러는 친구의 성공을 숭배하고 동경하다 못해 제 가정을 하찮게 보며 비관에 빠지다가, 이내 자책한다.

"소용이 없었다. 그는 시를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의 귀청을 꿰뚫었다. 소용없다, 소용없어!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나 매한가지였다."


[어머니] 아, 어머니. 일류 수도원에서 교육 받고, 프랑스어와 음악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로맨틱한 삶을 꿈꾸던 소녀.

혼기가 차자 홧김에 구두수선공과 결혼해 키어니 부인이 된 어머니. 딸을 위한 그녀의 열정을 보라! 


무엇보다 책에 깊이 빠져들게 된 건, 비교적 생애 초기를 그려낸 처음 세 단편 [자매]와 [우연한 만남], [애러비]였다. 

[자매]의 '나'는 생애 최초로 죽음을 마주한다.

"나도 그렇고 이날도 그렇고 전혀 슬퍼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느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성직 매매와 같은 께림칙한 분위기도 엿보이지만, 나는 죽음을 접한 소년에게 초점을 맞추게 됐다. 

학교를 빼먹고 만난 어른과의 [우연한 만남]은 반갑지 않다. 

[애러비]의 '나'는 첫사랑을 앓고, 소년에서 어른의 세계로 한걸음 들어선다. 

"그녀의 이름이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기도와 찬사로 때때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종종 나의 두눈에는 눈물이 그득했고(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때로는 나의 심장으로부터 홍수가 터져서 가슴속으로 쏟아져나오는 듯했다."

"그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허영에 쫓겨 농락당하는 한 마리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두 눈은 번민과 분노로 불타올랐다."


소년의 성장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이블린]은 프랭크와의 야반도주를 앞두고 갈등에 휩싸인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자니 어머니의 일생 - 종말에 가서는 광기로 끝나버린 평범한 자기 희생의 일생 - 의 비참한 환영이 그녀 존재의 핵심에 마법을 거는 듯했다."

그녀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택하건, 다른 선택지이긴 한걸까. 


[하숙집]의 무니 부인은 딸의 사랑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드디어 이때라고 판단했을 때 무니 부인이 그 일에 개입했다. 그녀는 마치 식칼로 고기를 썰듯이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가슴 아픈 사건]의 지루하게 살던 제임스는, 시니코 부인을 만나 그녀를 영혼의 반려자라고 생각하나, 그녀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교제를 그만둔다. 몇 년 후,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 상념에 빠진다. 

"왜 그녀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나? 왜 그녀에게 죽음을 선고했던가? 그는 자신의 도덕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 생활의 방정성을 되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삶의 향연으로부터 추방된 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은 관련된 이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낱낱이 공개된다. 그래야만 했는가. 


[죽은 사람들]의 아내를 향한 욕정에 사로잡힌 가브리엘은, 아내로부터 어린 시절 그녀를 연모하다가 이른 나이에 사망한 소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하나씩 하나씩 그들은 모두 유령이 되리라."

"온 세상에 사뿐히 내리는 눈 소리, 그들의 최후의 하강인 양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사뿐히 흩날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치밀하게 섬세하게 인간을 그려내 애정이 담뿍 들었는데, 작품 해설에 의하면 제임스 조이스 본인이 말하길 

"더블린의 마비된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이다"라고 했단다.

그 마비된 영혼, 어디에나 있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모두가 같다.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한일동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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