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다산, 통하다 - 동서 지성사의 교차로
최종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저자의 말마따나 ‘괴테(Goethe, 1749~1832)와 다산(茶山, 1762~1836)은 한없이 낯익은 두 이름이지만 함께 붙여놓았을 때의 생소함은 마치 갓 쓰고 양복 입은 모습처럼 낯설’다. 그런데도 저자는 왜 괴테와 다산의 삶과 유산, 학문적 관심과 성과를 한 책에 써 볼 생각을 했을까?

 

 먼저 저자, 최종고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사상사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저자는 한국인물전기학회를 창립하고 우리나라 인물 연구와 전기학(傳記學)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와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몇 권의 교양서도 펴냈으며 시화전을 열 정도로 시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 지식인이라 할 만하다. 이런 저자가 수 년 전부터 괴테 연구에 푹 빠졌다고 한다. 저자의 왕성한 지식욕으로 보건데 괴테에 필적할 만한 우리 역사 속 인물을 찾아 비교해 보고자했음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다산은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으니 저자의 욕구를 꼭 맞게 충족시키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두 인물을 한 책에서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일말의 교류도 없었던 두 인물이라면 차라리 한 사람씩 깊이있게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250년의 두 지성이 서로 통(通)하여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결국 이 질문은 두 지성만 통(通)하는 것 이상의 범위로 나아가게 된다. 그들과 더불어 지금 우리도 통(通)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니까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괴테와 다산은 더 이상 현재의 창조적 영향력의 핵심이 아니며 그들을 다시 써 내는 저자와 읽어내는 독자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괴테와 다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인터넷, 휴대폰, 이동식 정보기기는 정보의 공유 속도와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다. 장소가 동떨어져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간 괴테와 다산의 시대와는 달리 현대는 유럽의 유행이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해지기도 하며 동양의 학문적 성과를 서양의 학자들이 수초만에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이 한데 어우러져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는 그것의 기원을 따지기도 힘들다. 문제없는 꿈과 희망의 시대가 지속된다면 좋으련만 사람사는 세상에 문제가 없으면 그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일까? 우리는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있다. 우리는 현재 맞닥뜨린 다양한 문제들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역사를 탐구하고 구체적인 한 인물에 시선을 고정하여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더구나 동서양이 뒤섞이고 국가, 기업, 개인이 얼키고 설켜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는 이 시대에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극복해낸 동서양의 두 지성을 비교함으로써 나름의 답을 캐낼 수 있을 터다.




 괴테의 시대, 유럽은 오랜 전통과 사상적․제도적 편견과 권위를 무기로 인간을 속박하고 있었다. 괴테는 이성의 힘을 신뢰하고 사상가로서 근대적 안목으로 인간성의 보편적 가능성을 긍정했다. 역사는 괴테를 위대한 인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라고 말한다. 다산의 시대, 조선은 겉보기에는 안정을 구가하는 듯 보였지만 털끝하나 썩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다산은 해묵은 법을 바꿔서라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토지제도의 변혁, 주자학 중심의 사변적 사유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인간관과 우주관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암흑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그들이 창조했던 사상,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관을 우리 시대에 맞게 재창조해야한다. 바로 이것이 <괴테와 다산, 통하다>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며 교차점이고 괴테와 다산, 저자와 독자가 통(通)하는 지점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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