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된 90년생 홍칼리 씨가 전하는 이야기.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진짜 샤머니즘'이란 이런 거 아닐까. 무형문화재였던 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 아직 구천을 떠도는 영혼 모두)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세상 만물에 영혼과 신성이 가득함을 느끼며 겸허히 살아가는, 그러한 자세가 샤머니즘의 마음 아닐까.

동물과 식물, 사물에도 존재가 깃들어 있다. 바로 ‘정령’이다. 정령은 만물에 녹아 존재한다. 땅과 바람, 음식물쓰레기, 책상, 쌀알에도 정령이 숨 쉰다. 그래서 무당은 쌀알을 뿌린 후 ‘아무렇게나‘ 배열된 쌀알로 점을 본다. 정령의 기운을 읽고 소통하는 것이다. - P121

정령들에게도 한이 있다. 동물들이 공장식 축산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거대 수산업이 만들어낸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때문에 바다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인간들이 탄소를 배출하면서 공기가 오염되고, 아마존의 숲을 무차별로 벌목하고 산불을 내면서 바람이 오염된다. 이렇게 땅과 바람에 억눌린 정령들이 터져 나오게 된 현상이 코로나바이러스와 미세먼지,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멀리서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한이 쌓인 정령들이 바깥으로 터져 나오면서 내는 한숨 소리다. - P121

오랫동안 궁금했다. 산업이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정말 필요한 걸까. 나는 땅의 신 파차마마에게 기도드리며 질문했다. "정말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나요? 희생 없이 공존할 방법은 없나요?" 곧이어 파차마마의 응답이 들렸다. "그래서 사물을 준 거야. 물, 불, 공기, 흙․ 다른 말로 나무, 불, 흙, 금, 물. 그러니까 의자 하나도 소중히 다루고 쓰레기 하나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면 돼. 물건 함부로 대하면 다 되돌아오는 거야. - P122

그래서 지금 지구가 아픈 거고. 사물들도 아픔을 느껴. 그래도 너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지금 살림이 거덜 나고 있어. 로봇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도 다 좋은데, 그 사물 같은 존재들에게도 무의식과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린(땅은) 너네가 무엇이든 아끼는 마음으로 쓰길 바랄 뿐이야. 너네 때문에 덜덜 떨고 있는 사물들도 있다는 걸, 사물화된 존재들이 울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사물에게 잘하잖아? 그럼 사물이 보답한다, 그게 이치야."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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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신' 이라고 불리는 큰 무당 중에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람이 있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만신 고 김금화 선생(이름도 이제 알았다)의 세월호 참사 추모굿을 이제야 본다. 목사가 다 같은 목사가 아니고, 스님이 다 같은 스님이 아니고, (천주교) 신부가 다 같은 신부가 아니듯 무당도 다 같은 무당이 아니니까. 만신은 들어봤지만, 무당이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된 건 조금 전에 처음 알았다. 한 개인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건 도자기나 나전칠기 장인 같은 예술가이자 기술자들만 해당되는 건 줄 알았지. 하긴 굿이 '종합예술'이라면 무당도 예술가니까 못 될 건 없긴 하다.




무당의 예지력, 초인적 능력만 조명받는 사회의 분위기와 다르게, 무당은 옛날부터 공동체의 한을 풀고 흥을 나누는 굿을 해오던 문화기획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무당 고 김금화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굿은 종합예술이에요. 편견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즐기는 종합예술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무당도 결국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그녀는 길 위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굿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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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당에 관해 직업적인 편견은 원래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민족의 조상이라고 믿는 단군왕검부터가 정치지도자이자 샤먼이었다고 배웠으니까. 그리고 10대 시절부터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서정록 선생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 (https://cafe.daum.net/peacetree2) 와 류시화 시인이 쓴 명상 서적과 인디언 관련 서적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아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믿는다는 제도권 종교 개신교의 신자들보다 무속인의 숫자가 더 많다고 했던가. 무속인들 중에서도 악질 사기꾼들이 있어서 가끔 뉴스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로 무속 자체를 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왔다. 


불교, 기독교 같은 제도권 종교라고 해서 전부 좋은 승려, 목사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종교인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악질 범죄자들도 끊임없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들 종교 자체를 비하하지는 않는다. 일각에서는 개신교에서 일어나는 일부 목사들의 정치 편향 발언과 범죄를 거론하며 '개독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목사, 스님하면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 보통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만 욕할 뿐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박정희 정권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탄압을 받아왔는데도 여전히 건재한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염된 사머니즘과 타락한 샤먼이 문제이지 샤머니즘도 우리의 소중한 전통 문화라는 게 나의 기본 입장이었다.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점을 보러 간 적은 없다.


진짜 제대로 된 무속인을 만날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실제로 만난다고 해도 연애운이든, 결혼운이든, 직업운이든 내 미래나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굳이 미리 알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리고 앞에서 직업적인 편견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건 '무속인은 다 사기꾼이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뿐 직접 가보긴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흔히 '신당'이라는 곳이 예전에 강호동이 했던 MBC 예능 '무릎팍도사' 에서 나온 것 같은 그런 이미지니까. 나도 그랬다. KBS Joy 채널에서 이수근과 서장훈이 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무릎팍보다는 현대적이고 카페 같은 이미지긴 하지만, 그 그게 방송이라서 그렇지 실제로 그런 분이 하는 곳에 신점을 보러 간다고 하면 어쩐지 가기 꺼려진다. 가볍게 '사주카페' 정도야 갈 수 있겠지만.


그런데 요즘 젊은 무당은 그렇지 않나 보다. 신당 대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색동 한복 대신 무색 면바지를 입고 신점을 봐주는 무당이라니. 그것도 부드러운 표정과 반말이 아닌 친절한 존댓말로. 저자는 자신의 그런 옷차림도 언행 때문에 서비스직 같다는 말을 들었다지만, 무당도 어찌 보면 서비스직이다. 그것도 최소 수천년의 기원을 가진 전문 상담서비스직 아닌가. 전업 무당이자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홍칼리 작가가 들려주는 그의 삶이 자못 궁금하다. (나도 아직 다 못 읽었다)

나는 신당 대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점사를 보고 색색의 한복 대신 편안한 무색 면바지를 입고 다닌다. 내 눈은 동그래서 사람들을 쏘아보기는커녕 소위 ‘기가 센‘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호통보다 존댓말이 익숙한 나는 말투가 너무 친절해서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 P5

무당이 된 나를 걱정하는 상상과 다르게, 나는 행복해서 무당을 하고 있다. 무당이 된 후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존재를 끌어안을 수 있고 정화할 수 있는 이 직업이 좋다. 낮에는 따뜻하게 사람들을 감싸고 밤에는 고요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일상이 행복하다. 이 달콤한 케이크를 계속 먹고 싶어서 무당이 된 것 같다. 이 케이크를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싶다. - P8

매일매일이 기적의 연속이고 신기한 일들의 반복이라는걸 느낀다. 건조하게 보면 한없이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조각들이 사실은 동시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에너지체다. 무당은 이런 동시성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알아채는 걸훈련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 P17

신령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옆에 와 앉아 이야기해주는 존재라기보다는, 동시성으로 매 순간 함께 존재하는 에너지의 작용에 가깝다. 나는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물컵이 쏟아지거나, 식물에서 새싹이 튀어나오거나, 반려견 커리가 오늘따라 꼬리를 흔들며 나를 따라오는 일상의 조각이 내게는 모두 메시지가 된다. 작은 일들도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가지 않는 것은 이 일을 하면서 얻게 된 큰 기쁨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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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28 0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당도 세대별로 차이가 나는 듯하네요.

꾸준하게 2023-12-28 07:05   좋아요 0 | URL
그런가 봐요. ㅎㅎ 무당도 사람이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으니까요. ☺☺
 



공부는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물어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다. 타인에 대한 물음은 호기심에서부터 신문(訊問), 힐난, 비난까지 다양하다. 묻는 자의 정체나 위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 마디로도 묻는 자의 교양, 인격, 무지, 태도를 알 수 있다. "어쩌다 동성애자가 되었나요?" "자네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 "왜 아직도 취직을 못했나?" "여자가 왜 이런 일을?" 이런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인권 침해이다. - P78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수시로 이런 질문에 노출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 상대는 어디에 ‘서‘있는지, 내가 하는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이 평생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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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사놓고 완독하지 못했던 『이갈리아의 딸들』을 책의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그때 발췌한 구절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봤다. 책의 시작은 남성 중심의 기존 단어를 뒤집어 다시 정의하는 것부터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어 버렸기 때문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초반에 이런 설명이 붙는 것은 불가피할 테다.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으니까 아래 인용한 구절들이 어떤 의미인지 다들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남성이 기본값인 우리 세상과 달리 여기선 여성을 기본값으로 하고 있다. 영어에선 'man'이 남자이자 사람이고 여성을 표현하려면 'woman'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정반대의 세계인 이갈리아에선 'wom'이 여성이자 인간이고 남성은 'man'을 붙여 'manwom'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영어에서는 남성에게는 기혼/미혼 여부와 상관없이 성 앞에 'Mr'을 붙이고 미혼 여성에겐 'Miss' 혹은 'Ms',기혼 여성에겐 'Mrs'를 붙인다. 물론 요즘엔 미혼/기혼 상관없이 'Ms'를 성 앞에 붙이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지만, 예전엔 철저히 구분해서 말했을 테다. 


어째서 별도의 말이 생길 정도로 여성의 결혼 여부가 그렇게 중요할까. 남성에 해당하는 낱말은 없고, 오직 여성에게만. 해커스 유학 블로그를 보니 영미권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 성을 따르기 때문에 성 앞에 붙는 호칭이 달라진다는데, 별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만일 그런 거였다면 오늘날 Ms를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에게 모두 쓸 수 있도록 하진 않았을 거니까. 한국어에서는 그런 표현은 없지만, 지금도 회사의 취업 면접 때는 여성 면접자가 결혼했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남성 면접자에게도 가끔 물어보기는 한다지만 (나는 못 들어봤다) 그 의도가 다르다. 다들 알 테니까 그 의도를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소설 속 이갈리아의 세상에서는 완전히 반대다. 여성의 미혼과 기혼 여부를 구분하는 단어는 따로 없고, 맨움(남성)의 기혼은 성 앞에 Msass(미재즈)를 붙인다. 그러면 이 책에서는 맨움이 결혼하면 움(여성)의 성을 따르는 건가? 그건 좀 더 읽어봐야겠다.

움 wom 1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이라고 분류되는 성(性)의 인간. 2. 어떤 성의 인간이든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예를 들어 spokswom(대변인), seawom(뱃사람), 3. 일반적인 인간을 움으로 지칭할 수도 있다.

맨움 manwom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이라고 분류되는 성(性)의 인간.
미즈 Ms 움의 성, 성명 앞에 붙이는 경칭.
미재즈 Msass (미즈에 맨움형 어미 -ass가 결합한 것으로) 기혼 맨움의 성, 또는 그 아내의 성 앞에 붙여 기혼 맨움을 나타내는 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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