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때때로 글(쉬운 글~)을 읽고 들으며 언어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 데에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영어 선생님의 공이 크다.

단어를 조각조각 끊어 설명하며 단어의 유래와 함께 풍부한 예를 들어주고,
영어, 불어, 독어, 라틴어의 다양한 언어를 넘나들며 사례를 보여주고,
음악, 미술, 과학기술에 어문학을 연결시켜가며 연관성을 보여주고 생각의 범위를 넓혀주셨던 분. 

예를 들어,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을 하셨다.

토인비의 <<A study of history>> ... ... 토인비가 역사 연구의 명저이자 대작을 출간하면서도 'The study'를 쓰지 않고 'A study'를 썼다. 자신의 연구가 전체가 아니라  역사 연구의 일부분임을 표시하는 것이며, 학자로서의 매우 '겸손한' 자세이다 ...  

<<Une Vie>> ... ... C'est la vie, La vie en rose, ... 불어의 vie 앞에는 일반적으로 여성형 정관사를 사용하지만, 부정관사 'une'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여자의 일생, <<Une Vie>>. 우리 말로는 그저 '여자의 일생'이지만, 실제 의미는 '어떤 (한) 여자'의 일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

Invitation to the dance ... ....  춤을 의미하는 'dance'에는 관사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춤'에 관사를 붙이면 '무도회'가 된다. 무도회에의 권유, 'Invitation to the dance'처럼. (그러면서, '무도회에의 권유'의 한 장면을 직접 허밍으로 들려주고 곡조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이셨다. 남자가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춤을 청하는 듯한 멜로디,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높고 튕기는 듯한 멜로디를 들려주며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다른 모든 과목이 그렇지만, 언어를 그저 공부로만 인식하고 외우기 시작할 때 과목에 대한 재미도 떨어지고,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게 되는 게 아닐까.

요즘 아이들에게 영어 그림책을 사주고, 동화책을 챙겨주고, 함께 읽으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영어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말의 재미를 느끼고 책을 즐기게 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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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3-1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멋진 선생님이세요. 책세상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그분 덕에 영어라는 언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을 거예요.

bookJourney 2010-03-12 23:31   좋아요 0 | URL
그 당시에는 제가 얼마나 멋진 선생님을 만났는지 깨닫지 못했었답니다. ^^;

라로 2010-03-10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선생님이시네요!!!!!저는 제 남편이 제게 그런 역할을 햇던것 같아요,,,언어의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저도 아이들에게 말을 하거나 책을 읽어줄때 님의 마지막 말씀을 늘 기억해야겠어요~.좋은글이에요!!^^

bookJourney 2010-03-12 23:33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멋진 부부시군요~ (부러워요~~)

희망찬샘 2010-04-06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네요. 한 수 배워야겠어요. 영어책을 붙들고 아이를 쳐다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저로서는 영어는 끝없는 고민입니다.

bookJourney 2010-04-09 06:31   좋아요 0 | URL
샘도 영어가 고민이시라고요? ...
아이에게 제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옛날 옛적에 포기하고, ^^;
그저 재미있는 영어 그림책, 동화책 같이 읽는 것까지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