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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 유럽에서 아시아 바이킹에서 소말리아 해적까지
피터 레어 지음, 홍우정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평점 :
해적이라고 하면 으레 낭만과 꿈, 도전, 모험 같은 긍정적 단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편 도적, 약탈과 같은 부정적 단어도 떠오른다. 이는 해적이 역사 속에 존재하는 실존 인물이기보다 동화나 영화속에서나 존재할 것만 같은 환상이 크게 작용해서 더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해적은 엄연히 실재했고 존재했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존했던 해적에 대한 것보다 동화 속에서 만나는 해적이나, 영화 속 낭만적인 모험을 즐기는 해적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실존했던 해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존재했을까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읽게 된 이 책에는 진짜 리얼 현실 속 해적의 모습과 역사, 그들의 활동 방식, 전 세계적인 해적들의 사례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참담하고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책에는 역사를 통해 총 3부로 나누어 해적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세계적 흐름 속에서 변화해 가는 그들의 입지와 상황 및 시대를 반영한 삶은 물론, 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해적의 생애 주기, 현대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해적의 약탈과 무자비함을 해결할 방법까지 다루고 있다.
읽으면서 역사책처럼 서술되어 있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여느 영웅이나 큰 사건 중심이 아닌, '해적'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륙을 벗어나 과거 해양중심으로 발전했던 시대의 상황과 이를 통해 생겨나게 된 '해적', 그리고 지역 연안국에서 식민주의, 제국주의를 지나 현재의 세계화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과정 속에서 번성과 쇠퇴를 거듭했던 해적들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행동지침들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들어가기 전 참고하자!◈
('해적'과 '사략선'에 대한 개념 정의)
이 두 해상 약탈자들은 동일한 전술을 사용하고, 매우 비슷한 작전을 펼치지만 둘의 차이라면 '해적'은 자기 맘대로 움직이고, '사략선'은 합법적 권한을 부여받아 활동했다는 점이다.
■해적: 합법적 권한 없이 바다 위에서 또는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강도, 납치,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사략선: 합법적 권한을 가지고 바다 위에서 또는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강도, 납치, 폭력을 저지르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해적이 되었던 이유◈
해적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유가 늘 영웅적 낭만주의나 열정적인 모험심 때문은 아니었다.
첫 번째 이유. 극심한 가난이나 실업, 가혹한 생활여건, 암울한 미래 등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해적이 되었다.
두 번째 이유. 탐욕이나 손쉬운 돈벌이라는 유혹 때문에 해적이 되었다.
◈해적이 활개를 쳤던 이유◈
첫째. 탐욕과 불만, 그리고 둘의 조합에 신념이나 종교가 일정량 첨가되어 가속화되었는데, 본질적으로 한 개인을 해적으로 만든 것은 현재 생활 여건, 해적질로 벌어들일 예상 수익, 도주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지는 합리적 선택 과정이었다. 더불어 종교적 명문은, 어쨌든 수백 년 동안 코르세어들을 움직인 동력이었다.
둘째. 해적을 사회적으로 용인하거나 가능하게 해 준 환경도 빼놓을 수 없는데, 즉 부패한 관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영'하는 항구, 묵인하는 정부 등도 확실히 한몫했다.
⊙1부(700년~1500년)⊙
해상 중심으로 무역과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
■시대적 배경
1250년에서 1500년에 이르는 중세 후기에 지중해 여러 지역에서 경제가 성장했다. 이를테면 이슬람 제국의 주요 항구들, 카페 같은 흑해 연안 항구들, 그리고 비잔티움(동로마) 제국과 활발한 해상 교역을 추진해 부를 축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중해와 북해, 동쪽(동아시아) 바다는 서로 꽤 독립적으로 존재했으며, 주로 지역 연안국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여기서 꽤나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혹한 생활여건, 비참한 가난, 고질적인 전쟁 같은 조건이 해적 발흥의 근본 원인으로 동일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해적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동기
주로 탐욕이 목적이었고, 그들은 사략 허가를 받은 코르세어에 몸담았다. 그들은 대개 하층민 출신이며, 소위 '서민 출신'이 부업으로 해적질에 참여한 것이다.
■정치, 경제, 종교의 상충관계
이들은 대개 종교적 목적보다 정치적, 경제적 목적이 훨씬 컸다. 그러다 종교가 해적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면서, 종교는 정치적, 경제적 이권이 달린 해상 무력 분쟁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역들은 모두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곳이었다.
■해적의 활동 범위 및 종교집단을 약탈 대상으로 삼은 이유
해적의 공격은 바다 위로 국한되지 않고 점차 해안으로까지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지중해 일대의 기독교도들이 사는 해안을 조직적으로 노략질하거나 교회와 수도원까지도 공격해 성직자와 수녀, 일반인 들을 붙잡아 몸값을 요구하거나 노예시장에 파는 행위를 하면서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북유럽의 바이킹들도 해안 약탈을 지속하면서 수도원을 공격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바이킹이 종교적 증오 때문에 교회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바이킹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와 수도원은 값나가고 휴대하기 쉬운 귀중품을 약탈하기 좋은, 그야말로 훌륭한 사냥터였기에 대상으로 삼은 것일 뿐이다.
군다나 종교적 중심지들은 예배를 위한 장소일 뿐 아니라 금은 세공 기술 같은 고급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제단, 성물함, 기도서를 장식할 예술품을 만드는 공방이기도 했기에, 귀중품이 풍부한 사냥감의 표적이 되었던것이다. 다시 말해, 무방비 상태인 수도사와 사제를 값나가는 목표물로 만든 것은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약탈자의 탐욕이었다.
■국가가 해적 행위를 막지 못한 이유
1. 무역상과 해적은 서로 다른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웠다.
2. 약탈 행위가 악화되어도 해적 대응책은 없다시피 했는데, 해적을 막을만한 여력도 없었으며 인원도 부족했다.
■해적들이 폭력을 사용한 이유
1. 잔혹행위를 통해 약탈물의 양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2. 폭력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①이를테면 해적 내부를 향해, ②자신들의 사냥터를 항해하는 배들이나 자주 드나드는 지역의 주민들을 향해, ③해군, 민병, 치안관이나 행정관 같은 적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용도로 폭력 행사는 그들의 목적을 이행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2부(1500년~1914년)⊙
대 해적의 시대, 유럽 해상강국이 부상하던 시기
■시대적 배경
서기 1500년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상대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적이 되는 일은 '하층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도 군사력은 보통 모자랐고 때로는 그 지역 해적과 대적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기였다.
그러다 20세기 초 각국의 정책 기조가 변하고 국제 정세가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시기가 강대국들이 비서방 지역들을 식민지화 하기 시작한 시기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각종 해적 함대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던 해안 지역들도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유럽 해상강국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여기에는 대영제국이 단연 선두였다.
■인식의 변화
유럽 강국들이 자신의 세력권 주변부에서 점차 세계 무대로 제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세력을 넓혀나가기 시작하면서, 사략선이나 해적선을 활용해 소소한 이익이나 약탈물을 얻는 것보다 해상 무역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이것은 곧, 사략선과 해적선이 이제 더 이상 국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심지어 해로운 존재로 전략하고 만다. 게다가 유럽의 해상강국들은 기술발전에 힘입어 우월한 해군력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해적질은 역사책 속에 나오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해적 활동의 세계화
해상 무역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 서구 해상 강대국들이 급속도로 식민지를 확장해 전 세계에 걸친 제국을 건설하게 되면서 소위 '서양'식 해적 활동도 전 지구로 확산된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들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광활한 식민지를 연결하는 새 해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는 새로운 세계적 해상강국들 간에 벌어진 패권을 둘러싼 분쟁과 특정 지역의 작은 나라를 상대로 한 제국의 전쟁들이 벌어지는 동안의 그 틈새를 이용한 해적들이 치안이 부재하던 많은 바다들을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해운 활동지로 삼으면서 큰 대대적으로 그 규모가 커지게 된다.
1부에서 살펴본 해적행위와 이 시기 해적행위의 가장 현저한 차이는 '각 지역의 문제에 전 세계적 수준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다는 점이다.
⊙제3부(1914년~현재)⊙
세계화 물결이 불던 시기
■시대적 배경
서양 강대국의 이권다툼과 제국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식민화가 정리되고 안정화를 찾게 되면서, 유럽 강국은 해상무역을 통한 세계화가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해적에 대한 확연한 인식 변화와 시스템의 변화, 세계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혹한 생활여건'임에도 해적이 양산되지 않는 이유
첫째. 최근에 북대서양과 지중해 대부분 지역에서 효과적인 해상 감시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활발한 해상 감시는 해적행위를 감소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둘째, 사회적 승인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오늘날 해적행위는 더 이상 '옳은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셋째,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넘어오면서 귀족 계급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한몫할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합법적 해적인 사략선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대표적인 해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해적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대표되는 해적은 '소말리아 해적'과 '나이지리아 해적'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의 면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양상을 보인다.
1. 소말리아 해적
▷충격과 공포 전술로 '몸값 협상'후 풀어주며, 맞서 교전하지 않으려 한다. 이때 배에 어떤 깃발이 걸렸든, 배에 탄 선원들의 종교가 무엇이든 개의치 않는다.
▷전투 태세를 갖춘 선박은 공격하지 않는다.
▷1호 발호 시기에는 저인망어선으로 인한 불법어업과 자신들의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경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지만, 이내 외국 선박을 나포하고 선원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어업보다 훨씬 더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경단이 해적단으로 탈바꿈된다.
2. 나이지리아 해적
▷소말리아 해적보다 폭력 수위가 높고, 선원이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이지리아 해적의 주된 동기는 몸값이 아닌 선원들의 귀중품과 선박 금고의 현금 혹은 유조선의 정제유를 주로 노린다.
▷훈련된 무장 보안요원들이 있거나 말거나 상선을 덮치고, 긴 시간 동안 총격전까지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적과 공무원의 유착이 존재하며, 정치화된 범죄와 범죄화된 정치가 존재하고 있다.
■현대 해적행위의 범주
계류선박 단순 절도형, 계류선박 무장강도형, 항해선박 무장강도형, 항해선박/선원 납치 후 몸값 요구형, 마지막으로 선박을 납치해 불법적인 목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유령선형'이다.
소위 '뺑소니형'이라 일컫는 항해선박 무장강도형 공격은 현대 해적이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전략이고 공격 시간이 대게 30분에서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해적은 범죄자일까? 병사일까?◈
서구에서 기원한 고전적이고 전근대적인 국제법 해석을 살펴보자면, 해적은 단순한 범죄자와 적군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첫째로 그들은 "국가의 연관된 어떤 공공 목적을 추구하는 바 없이 '범법행위'를 목적으로 모였다는 점에서 범죄자이며, 자유무역과 통상을 방해함으로써 전 인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는 적"이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서 해적을 범죄자로 취급할 수도, 병사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쟁점은 당국은 물론, 심지어 국가가 제공하는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해적은 대리전쟁에 내보내 적을 약화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여차하면 존재를 부인할 수 있는 도구였다.
마지막으로 사략선과 해적선을 구분하는 것은 범죄 수법의 차이가 아니라 '사략선은 국가가 인한 업무를 수행'하는 반면 '해적질은 허가 없는 행위'라는 점이다.
역사를 통해 해적을 살펴보면서, 이들을 범죄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병사로 볼 것인가를 명확히 구분 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적에 가담한 이들 중에는 무역상이 포함되어 있어 약탈이나 무역이냐를 구분 짓기도 어려울뿐더러 국가의 허락 여부에 따라 '사략선'과 '해적선'으로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부패정치와 힘없고 안일한 대응책으로 인해 허락 여부조차도 판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더 그렇다.
특히 2부에서 언급되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신의 국익을 위해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해적들을 비공식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비밀 용병으로도 쓰였기에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때론 범죄자로, 때론 병사로 그렇게 활용되었던 듯하다.
◈최종 정리◈
역사적으로 해적이 출몰하고 쇠퇴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결국 원인이 되었던 것은 국가의 쇠퇴와 붕괴, 가난과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해적이 가장 활발하게 번성했던 시기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시대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해적과의 싸움은 단순히 전술과 작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지의 연대'에 달려있음도 알 수 있었다.
'해적을 없애는 방법'은 결국 앞서 언급한 조건들을 모두 없애는 것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존하는 모든 해적 위험 지역에서 해양 법질서 체제가 제구실을 해야 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알맞은 선박과 인력으로 나타나는 해상에서의 능력뿐 아니라 연안국들의 정치적 의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라는 식의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법 조업을 단속하려는 진정성 있는 정치적 의지도 가져야 한다.
간혹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선박 피랍의 이야기들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이유와 상황으로 생겨난 것들이며, 이것을 우리는 이해하고 세계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언제든 '해적'은 다시금 생겨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위의 조건들이 다시금 붕괴되는 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상이상의 혼란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다시금 코로나와 전쟁, 경제 위기 등으로 세계적인 위험을 감지하고 있는 이때, 빈곤과 사회적 현상, 불안과 탐욕 등으로 야기될 문제들을 살펴보고 돌보아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