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81호 - 2014.겨울 - 창간 20주년 기념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먼 자들의 국가』를 사놓고도 여태껏 읽지 못했다. 도저히 책을 펼쳐볼 엄두가 안 났다. 책 표지만 봐도 먹먹함이 몰려와서 일부러 다른 책 밑에 놓기까지 했다. 그러면 책이 얇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책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거의 주기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책의 존재들 다시금 깨닫기도 했다. 그날 이후의 상황은 갈수록 더 답답해졌다. 개선의 실마리가 나타나기는커녕 더욱 가증스러운 사화의 민낯이 계속해서 드러나는데도 그날을 이제는 잊자는 여론이 우세해졌다. 그러니 반대편에서는 소리를 드높여 그날을 호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눈먼 자들의 국가』 역시 연말연시에도 호명됐다. 그때마다 나는, 예전에 내가 그 책을 샀었지... 라고 생각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단편 중에 그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또 창간 20주년 기념호라 쟁쟁한 작가의 단편이 무려 11권이나 실렸다는 설명도 덧붙여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 호에 이어 또 다시 초판이 모두 팔려 2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매진이 되어서 책을 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책을 덜컥 사기는 또 망설여졌다. 『눈먼 자들의 국가』를 샀을 때와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을 반복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문학동네 겨울호가 국내 문예지 사상 최초로 4쇄에 돌입했다는 대서특필과 마주했다. 결국 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문학동네 겨울호를 펼치는 데 성공했다. 아무래도 소설이라 부담이 덜 느껴졌던 모양이다. 물론 그것이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첫 번째로 택한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는 와중에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이를 찾는 데 매달린 부모가 11년 만에 기적처럼 아이와 재회했을 때부터 책에서 눈을 떼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다행히 중간에 읽기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다 읽었다. 여전히 아득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을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란 무엇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나하나의 ‘시’에 다가가는 데조차 난항을 겪는 내가 ‘시’를 정의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보다 친숙하다고 느끼는 ‘소설’이 무엇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 ‘시’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다니.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나란 인간은 참... 쓸데없는 것 같으니 오히려 더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얄팍한 대답, 오답일 게 분명할 대답이 떠올랐다.


‘시’는 삶의 최전선을 표현한 언어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핵심 없는 두루뭉술한 대답 같다. 역시 자문자답으로 멀리 나아가기란 어려운 일 인 듯싶다. 그리하여 정끝별 시인의 해설이 붙은 『돈時』를 읽으며 ‘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기로 했다.


‘시’를 ‘돈’과 비교해서 설명한 머리말의 한 문구에는 이 책의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난다.


“돈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시는 인간 정신 혹은 인간 언어의 꽃이다. 돈과 시가 ‘산다’로 압축되는 우리 삶의 꽃이라는 점에서는 그 뿌리가 같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반대 지점이다.”


“언제부터인가 돈에 관한 시를 보면 통쾌했다. 속되다고 하는 것과 고상하다고 하는 것이 만나, 둘 중 하나가 서로인 척한다는 점에서 키치라고나 할까.”


그렇다. 요새는 ‘산다’는 말에 ‘돈’이 꼭 붙어 다닌다. 무언가 일을 시작해볼까 할 때는 이게 돈이 되는지 고민해야 하고, 무언가를 하고 놀아볼까 할 때도 이걸 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놓았던 대답도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인가 싶다. 이제 삶의 최전선에는 항상 ‘돈’이 있으니... 라고 하기엔 너무 두루뭉술한 대답이라 어디에든 갖다 붙이는 게 가능해보인다.


‘돈’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시’들을 여러 편 연속해서 읽다 보니 ‘시’가 조금은 더 친숙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돈에 관한 시라는 것을 알다 보니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 중 한 단계를 이미 통과한 상태라 그랬던 것 같다.


꽤 오래 전에 쓰인 ‘시’들을 보면서는 예나지금이나 돈 걱정으로 한숨이 꺼지는 건 마찬가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시’가 언제 쓰인 것인지가 함께 표기되어있다면, 시대에 따른 돈의 역할 변화를 어림짐작해보는 재미도 더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과거에도 돈이 힘을 가졌지만, 돈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지금과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가졌을 테기 때문이다.


정끝별 시인의 해설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어서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해설을 여러 개 읽어갈수록 그것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졌다. 말하자면 각각의 시를 보고 쓴 에세이랄까.


앞으로 다른 시집을 읽을 때면 돈에 관한 시가 눈에 더 띌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시집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http://bookchany.blog.me/220250193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 힙합이 알려 준 삶의 행복과 긍정 에너지
김봉현 지음 / 탐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선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지 말라” 가르친다고 들었다. 편견일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자유의 언덕>에서 “일본 사람들은 깨끗하고 친절하고 예의바르다”는 윤여정의 말을 카세 료가 반박하듯 요즘에는 “네 주관대로 행동하라”고 가르치는 일본인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일본의 실정을 내가 알 수는 없으니, 그리고 어차피 한국의 실정을 말하려고 꺼낸 말이었으니, 주제를 조금 바꿔서 한국에선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르치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도 아니어서 요즘 한국의 실정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해본다면 이렇게 가르치지 않을까 싶다. “최대한 튀지 말고 사람 많은 곳에 섞여라.” 물론, 이런 워딩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일 뿐 핵심 메시지는 비슷하지 않을까?

튀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수다. 이제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사실상 겸손은 강요된다. 겸손하면 더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게 아니라, 마땅히 겸손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못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자화자찬을 했다가는, 혹은 스스로 뿌듯해하다가는 별의 별 소리를 다 들어야만 한다. 건방지다는 둥 초심을 잃었다는 둥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들으면서도 결코 반박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더욱 몹쓸 놈이 되어버린다.

그런 가운데에서 당당히 “내가 최고”라고 외치는 래퍼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귀가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다. 패키지여행을 즐기는 한국 사람들 표현을 빌리자면 느끼한 외국 음식에 시달리다가 컵라면을 먹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주변의 시선을 개의치 않으며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고, 스타일이 다른 래퍼를 과감하게 디스하는 모습을 볼 때면 평소의 답답함이 풀리는 기분이다.


요새 청년들은 패기가 없다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물론 그런 기성세대의 지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패기 있게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들은 게 어디 한둘이었던가. 뭐 그래도 패기 없는 청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과연 몇몇 청년들이 패기 없는 게 마냥 그들만의 잘못일까? 어쩌면 “튀지 말라”고 하고, 겸손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의 가르침이 체화됐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도덕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배웠던 도덕 교과서에는 회사를 집처럼 생각하고 일하라는 둥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내 잘못은 없었는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둥 헛소리가 가득했다. 내용이 바뀌었어도 한심한 소리가 가득한 건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힙합 정신을 배우는 게 도덕 교과서를 읽고 시험을 보는 것보다 훨씬 유익해 보인다. 힙합 음악을 반복해서 들어보고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삶의 어떤 부분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다 힙합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을 입문서 삼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청소년을 위해 기획된 책이기는 하지만 성인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힙합에 대한 오해는 풀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꽉 막힌 생각을 확장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http://bookchany.blog.me/2202476504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버산업이 미래의 유망한 사업이란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아마 5년 전쯤 이었던 것 같다. 내가 첨단 동향에 그리 빠삭한 사람은 아니니 훨씬 오래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전히 실버산업은 사업계의 블루오션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인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인에 특화된 사업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적은 것이 실정이니, 굳이 전문가의 보충 설명이 없어도 블루오션이라는 것이 이해가 될 만큼 확실한 블루오션이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노인에 특화된 사업은 왜 거의 없는 걸까?

​다시 실버산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실버산업의 예시로 일컬어지는 것을 살펴보면, 전문요양원이나 활동보조기구 같은 것이 주를 이룬다. 즉, 그런 것이 현재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노인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는 부실한 노인 건강 관리 시스템을 몸소 뼈저리게 느낀 경험담이 나온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4년 가까이 간병한 작가의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투병 초기에 입원했던 종합병원은 건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고, 처음 고용했던 간병인은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딱 보기에도 초보 같아 보인다. 아버지의 병세가 이런 지난한 사정을 염려해서, 음 그러면 내가 활동을 좀 쉬어야 되겠군, 이러면서 주춤할 리 없었다. 하나의 난관을 수습할 때쯤이면 아버지의 병세가 확연히 나빠진 것이 확인되고 새로운 난관이 생겨나는 식의 일이 반복된다. 그 간극을 감당해낸 작가의 절절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실버산업 운운하는 예비사업가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어쩐지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실버산업이 탄탄히 구축된 미래가 온다고 해도 죽어가는 부모님을 오랜 시간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까지 저절로 단련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마음을 조종하는 기술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전까지는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를 읽고 나니, 어느 먼 미래에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아주 자신이 생겼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조금 덜 막막해진 정도다. 그래도 대략 어떠한 막막함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알게 된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를 읽으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가지만, 자식은 그렇게 커가는 것이다.


※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http://bookchany.blog.me/2202468847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제값주기 운동을 제안하는 목소리는 금세 묻히고 만다. 정말로 제값주기 운동을 주동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런 건 어떨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본 것인데도 대역죄인마냥 힐난을 듣는다. 비싼 돈 주고 사면 소비자만 손해 아니냐며, 그런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생산 단가가 내려갈 리가 없다며, 오히려 더 비싸지기만 할 거라며, 멍청한 입을 닥치라는 식의 쏘아붙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예의를 갖춘 지인의 말이라고 해도, 어이구 이 순진한 사람아, 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내가 먼저 제값을 치르면 나만 손해 볼 뿐이다, 라는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생각에 갇혀 있으면 결국 다 같이 고통스러워지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서로 제값을 치르면 최상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상대가 제값을 치르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모두가 제값을 치르지 않아 결국에는 최악의 결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이면에는 단가 후려치기에 앓고 있는 중소업체, 최저임금을 받으며 최고 수준의 감정 노동까지 강요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제값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중소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누구인가 하면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소비자의 권리를 운운하며 돈을 매개로 갑질을 하는 주체인 동시에 갑질에 고통받는 피해자인 셈이다.


물론 쉽게 바꿀 수는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변화를 막는 것은 완고한 현실의 장벽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내면의 장벽이다. 바꿔 말하면 완고한 현실의 장벽을 만들어낸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다. 분명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동네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사고 동네 문방구에서 학교 준비물을 샀다. 지금은 굉장히 불편한 것처럼 여겨지는 삶의 방식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왔던 것이다.


일본도 유사한 시대 변화를 겪은 모양이다. 1950년생으로 일본 경제의 부흥과 쇠락을 몸소 일선에서 겪은 히라카와 가쓰미는 『소비를 그만두다』에서 소비자 마인드가 어떻게 보편화되었는지를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해서 실리콘밸리를 오가기도 하는 사장으로 성공했지만, 이후에는 사업의 쇠락을 겪은 히라카와 가쓰미는 그야말로 일본 경제의 최전선에 서있던 사람이었다. 그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대세인 경제구조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는 책이 『소비를 그만두다』인 것이다.


이 책은 결코, 산 속으로 들어가 속세와 연을 끊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자, 같은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소비를 그만두다』라는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소비를 아예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아니고, 단지 공존할 수 있는 소비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동네 상권을 살리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알고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는 상인이 파는 물건은 더 비쌀지언정 믿을 수 없는 물건은 아니고, 불필요한 소비도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소비를 그만두다』를 읽고 나니 공정여행이 떠올랐다. 현지 상인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면서 현지인들과 교류도 넓히는 공정여행이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제값을 주고받으면서 공정하게 사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http://bookchany.blog.me/2202455550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