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 1년 넘게 여자로 살아본 한 남자의 여자사람 보고서
크리스티안 자이델 지음, 배명자 옮김 / 지식너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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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굉장히 강고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남자는 머리를 짧게, 여자는 머리를 길게 해야 한다는 인식을 들 수 있겠는데요. 법적으로 머리 길이를 규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편견이 섞인 일상적인 시선입니다.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 단발보다도 더 짧게 머리를 자른 여자를 향한 시선은 그다지 좋지 않죠. 그 시선에는 남자답지 못하다, 여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이한 머리 길이를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동성애자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고요.

성적인 억압 혹은 규제는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 안경을 쓴 여자, 다리를 모으지 않은 채 앉은 여자들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규정될 뿐만 아니라 자기관리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며 오히려 남성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까지 주장하던데요. 그건 그냥 헛소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균 임금부터가 낮은 사실도 중요하지만, 방금 말한 것 같은 바람직한 여성상이라는 그릇된 관념이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으니까요.

물론 남성들이 겪는 어려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은, 남성운동을 한다지만 사실은 여성혐오를 하고 있는 분들이 생각하듯이,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생겨난 게 아니라 바람직한 남성상이라는 관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겁니다. 강한 남성, 리드하는 남성, 너무 섬세하지는 않은 남성이어야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혹은 자기검열에 속박되어 있는 거죠. 남성과 여성이 권리의 지분을 놓고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공통된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안 자이델은 여자로 사는 체험을 하는데요. 여자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자신을 향한 시선이 확 바뀌는 것을 느끼고, 남자로서는 입을 수 없었던 옷과 악세사리를 착용하면서 한정된 남성의 옷차림에 회의감을 가집니다. 그러면서 고정된 성관념이 사람들을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가를 절실히 체감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여자로 살기 체험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찰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http://bookchany.blog.me/22029988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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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작가의 옮김 1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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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문 50답 같은 것을 하다 보면 저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분명 별것 아닌 질문인데도 딱 잘라 대답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꼽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가장 기뻤던 순간이나 슬펐던 순간을 떠올리려면 기억을 힘들게 짜내야만 합니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저 자신에게 관심을 조금 더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 결심이 실천으로 잘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자문자답을 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했을 때야 다시금 그 결심을 어렴풋이 떠올리죠.

저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시도를 자주 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 행위에 뒤따르는 고통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이토록 특별한 게 없고 지루할 뿐만 아니라 저열한 구석도 많은 걸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깊이 파고들어가기를 멈추게 됩니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삶이 덧없게 느껴지는 걸 견디기가 힘들어서 그러는 거죠.

자살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삶의 끝에서 죽음으로 밀어 넣은 셈이니, 그 끝 언저리의 풍경 또한 목격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혹은 자살을 시도했던 작가의 글에는, 그렇지 않은 작가의 글에는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자화상』을 쓴 에두아르 르베는 자살 시도를 한 번 했고, 자살 시도 유혹을 네 번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요. 그렇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5년 전에 쓴 작품이 바로 『자화상』인데요. 이 작품에는 문단이 전혀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글 전체가 한 문단으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은 전부 ‘나’를 주어로 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들인 거죠.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자기소개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별 맥락이랄 것도 없이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등을 서술하는데요.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했습니다만, 갈수록 쉼 없이 연속되는 문장에 빠져들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자신의 몸에 직접 메스를 대서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여주는 것 같았달까요. 그래서 때로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고, 때로는 한숨을 푹 쉬며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에두아르 르베가 머물러있던 삶의 막다른 구석을 엿본 것 같았습니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http://bookchany.blog.me/22029912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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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따져봐 - 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최훈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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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팔이’라는 말이 있다. 논리적 근거는 없으면서 감성에 호소에서 남을 설득한다는 근거로 상대방을 비아냥거리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판의 대상은 약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사람들이고, 주체는 강자의 군림을 옹호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력을 덜해서 혹은 능력이 부족해서 약자가 된 것이니까 처우가 부족한 게 당연하지 않냐, 상대적으로는 부족해보이지만 경쟁을 통해 사회 전체의 파이가 늘어나지 않냐, 하는 식의 주장이 ‘감성팔이’ 운운하는 이들의 주로 꺼내는 말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그래도 이건 심하지 않냐,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게 있는데...”라는 말이 주를 이뤄서, 다시금 ‘감성팔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최훈 교수의 『불편하면 따져봐』는 ‘감성팔이’ 운운하며 인권의 가치를 무시하려는 이들에게 다른 식으로 대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이랄까, 논리로 대응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인권을 옹호하는 주장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반박이 오히려 논리적이지 않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권을 터부시하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은 뒤 “제 논리가 틀렸으니 이제는 인권을 철저히 존중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지는 않다. 평행선을 달리는 의견의 대립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은 별 효용이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교양수준의 논리학 입문서로도 탁월하다. 자연주의의 오류, 당위-능력의 오류,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 등의 개념을 인권 이야기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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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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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푹 빠졌던 어린 시절, 저의 워너비는 단연 조자룡이었습니다. 관우도 멋지긴 하지만 어쩐지 근엄해서 부담스럽고, 장비는 털복숭이 외모가 맘에 안 들고, 유비는 싸움에는 문외한이니까요. 반면에 조자룡은 싸움도 잘하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으며 매너도 있는데다가 말년까지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의 생각도 비슷했나 봅니다. 삼국지 놀이를 할 때면 모두가 조자룡을 맡으려 했죠.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아이가 조자룡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누구든 삼국지 속 조자룡만큼 멋진 모습을 연출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나의 조자룡은 이렇지 않아! 라는 투정을 들어야 했죠.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다 보니 오랜만에 조자룡이 떠올랐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 속을 홀로 휘젓고 다닌 단기필마의 모습을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1장에서 ‘젊은이론’(한국의 상황에 맞춰 의역하자면 ‘청춘 담론’)의 역사를 짚어나가며 하나하나의 ‘젊은이론’을 경쾌하게 깨부숩니다. ‘청춘이라면 무릇 이래야 한다’는 기성 담론이 얼마나 앞뒤 안 맞는 말인지를 아주 간명하게 서술하죠. 수많은 ‘젊은이론’ 속으로 홀로 뛰어 들어가 그것들을 깨부수고 2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유비의 아들을 무사하게 품에 안고 돌아온 조자룡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후루이시 노리토시의 책 중 한국에 번역된 건 이 책이 유일합니다. 다른 책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꽤나 간절하네요. 조자룡의 활약상이 장판파 이전과 이후에도 가득했듯 후루이시 노리토시의 다른 책들도 훌륭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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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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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이 올라 부자가 된 사람은 이제 졸부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재테크에 성공한 부지런한 사람이요, 땅의 가치를 미리 알아본 능력 있는 사람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죠. 물론 그로 인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는 것은 아직 쉬쉬하고 있어서, 그것을 예능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농구선수 서장훈에게 건물 임대 수입이 얼마냐 되는지 묻고선, 그 질문에 진땀을 흘리는 서장훈씨의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땅값, 집값 이야기는 예능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본격 재테크 예능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곁들이는 토크의 주제로 참 자주 등장하죠.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는 평당 500만원이라는 부동산 문구를 오해한 아이들이 벌이는 귀여운 소동이 벌어지는데요. 그런 소동이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서 아이들이 집과 관련한 경제 관념을 일찍부터 접하기 때문이죠.

 

 

당연한 수순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공간을 형성하고 작동시키는 원리가 그래온 지는 오래고, 그 원리의 흐름을 잘 탄 사람들은 크나큰 경제적 이윤을 얻었으니까요. 그러한 욕망이 압축적으로 발현되어, 류동민 교수가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설명하듯 롯데월드, 초대형 교회 등을 만들어냈죠. 사람들의 생각도 확 바뀌었습니다. 배달원들에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인 강남 아파트의 주민들만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소도시 주민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나요? 집값의 액수가 다를 뿐 그 집값을 지키거나 올리려고 전전긍긍한다는 점에서는 별 다를 바가 없죠.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부제는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입니다. 임금은 그대로고 물가는 계속 오르는 시대에 집테크를 하는 게 어째서 문제냐는 반문에 대한 류동민 교수의 대답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자도생이 모여서 어떻게 사회 전체를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지를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테크의 가치가 일상화된 사회는 과연 정상일까요?

 

제가 비정상회담에 게스트로 나간다면(그럴 가능성은 1%도 없겠지만) 이 안건을 내보고 싶습니다. 예능에서 시작한 문제 제기를 예능으로 끝마친다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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