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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ㅣ 작가의 옮김 1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50문 50답 같은 것을 하다 보면 저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분명 별것 아닌 질문인데도 딱 잘라 대답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꼽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가장 기뻤던 순간이나 슬펐던 순간을 떠올리려면 기억을 힘들게 짜내야만 합니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저 자신에게 관심을 조금 더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 결심이 실천으로 잘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자문자답을 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했을 때야 다시금 그 결심을 어렴풋이 떠올리죠.
저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시도를 자주 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 행위에 뒤따르는 고통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이토록 특별한 게 없고 지루할 뿐만 아니라 저열한 구석도 많은 걸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깊이 파고들어가기를 멈추게 됩니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삶이 덧없게 느껴지는 걸 견디기가 힘들어서 그러는 거죠.
자살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삶의 끝에서 죽음으로 밀어 넣은 셈이니, 그 끝 언저리의 풍경 또한 목격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혹은 자살을 시도했던 작가의 글에는, 그렇지 않은 작가의 글에는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자화상』을 쓴 에두아르 르베는 자살 시도를 한 번 했고, 자살 시도 유혹을 네 번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요. 그렇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5년 전에 쓴 작품이 바로 『자화상』인데요. 이 작품에는 문단이 전혀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글 전체가 한 문단으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은 전부 ‘나’를 주어로 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들인 거죠.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자기소개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별 맥락이랄 것도 없이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등을 서술하는데요.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했습니다만, 갈수록 쉼 없이 연속되는 문장에 빠져들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자신의 몸에 직접 메스를 대서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여주는 것 같았달까요. 그래서 때로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고, 때로는 한숨을 푹 쉬며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에두아르 르베가 머물러있던 삶의 막다른 구석을 엿본 것 같았습니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http://bookchany.blog.me/220299124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