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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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푹 빠졌던 어린 시절, 저의 워너비는 단연 조자룡이었습니다. 관우도 멋지긴 하지만 어쩐지 근엄해서 부담스럽고, 장비는 털복숭이 외모가 맘에 안 들고, 유비는 싸움에는 문외한이니까요. 반면에 조자룡은 싸움도 잘하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으며 매너도 있는데다가 말년까지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의 생각도 비슷했나 봅니다. 삼국지 놀이를 할 때면 모두가 조자룡을 맡으려 했죠.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아이가 조자룡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누구든 삼국지 속 조자룡만큼 멋진 모습을 연출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나의 조자룡은 이렇지 않아! 라는 투정을 들어야 했죠.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다 보니 오랜만에 조자룡이 떠올랐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 속을 홀로 휘젓고 다닌 단기필마의 모습을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1장에서 ‘젊은이론’(한국의 상황에 맞춰 의역하자면 ‘청춘 담론’)의 역사를 짚어나가며 하나하나의 ‘젊은이론’을 경쾌하게 깨부숩니다. ‘청춘이라면 무릇 이래야 한다’는 기성 담론이 얼마나 앞뒤 안 맞는 말인지를 아주 간명하게 서술하죠. 수많은 ‘젊은이론’ 속으로 홀로 뛰어 들어가 그것들을 깨부수고 2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유비의 아들을 무사하게 품에 안고 돌아온 조자룡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후루이시 노리토시의 책 중 한국에 번역된 건 이 책이 유일합니다. 다른 책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꽤나 간절하네요. 조자룡의 활약상이 장판파 이전과 이후에도 가득했듯 후루이시 노리토시의 다른 책들도 훌륭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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