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리딩에 대한 예찬?

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작년 언젠쯤인지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천천히 읽기를 권함(기억이 가물거려서 검색^^)'이란 제목의 책과 책 소개를 보고 사 봐야겠다는 생각은 결국 실천 못하고 해가 바뀌어 버렸다. 알라딘을 또 헤매이다 슬로 리딩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책, '책을 읽는 방법'이란 제목에 호기심과 나의 독서 습관에 대한 반성을 해 볼겸 구매 결정.

  평소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물론 재미있고 또는 관심있는 분야, 새로운 지식, 시각을 보여주는 책은 생각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있던 터였지만...) 나날이 책꽂이에 책은 쌓여 가는데 한창 총기(?) 반짝이던 때 읽었던 책과 달리 내용이 생각 안나는, 이 책의 저자의 표현을 빌면 인상깊었던 구절이 생각 안 나는 책이 많아짐에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책에서 어떤 부분이 정말 감동적이었는지, 뇌리에 깊이 박힌 구절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디 가서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가 참 부끄러운 건 사실이다. 그냥 재미있었다. 또는 새로웠다란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한다는 건 낯뜨거운 일이다.

  이 책은 기초편, 테크닉편, 실천편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저자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꼭 무슨 참고서처럼 예문을 들어가며 아주 친절하게 독서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있다. 슬로 리딩은 단지 독서를 천천히 하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음미해 보고 '왜'란 고민도 해 보고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면서 책을 쓴 이들의 생각을 읽어가며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은 되돌아 다시 읽는 독서 방법을 의미하는 것 같다. 흔히 국어 시간에 국어 선생님들께서 '행간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국어 시간에 들었던 말씀들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정해진 틀에서 해석을 하라는 것이었지만.)

  물론 책을 읽는 데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또 글은 읽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책으로 써 놓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책 읽기에 아직 서툴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한 번쯤 읽어 보시길 권한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론 이런 것들을 신경쓰며 읽어야겠다고 공감가는 부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책꽂이에 먼지만 켜켜이 쌓여 가는 책들을 다시 꺼내 저자가 권하는 방법대로 다시 한 번 읽어볼 참이다. 읽을 때 느꼈던 감흥들이 다시금 떠오를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놓치고 지나쳤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더욱 기쁠 것이다.

  다만 나처럼 책을 편식하시는 분, 특히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분들은 감흥이 좀 적을 것 같다. 더구나 예들이 주로 일본 소설이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그 또한 저자가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 두었으니 나름 참을만 할 것이다.

고조선, 그 가슴 설레는 이름.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 우리 역사 바로잡기 1
이덕일, 김병기, 신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고조선,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고대 국가.

 환웅과 웅녀(곰이 사람으로 변한)가 낳은 단군이 세운, 신화로 시작된 국가의 발생으로 인해 중국에서는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아픔을 가진, 2000년이 넘는 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고 국사책에 단 몇 페이지에 '8조 금법'이란 법조문 몇 개 나오는, 갑자기 중국에서 건너온 위만이란 인물이 철기를 갖고 들어와 준왕을 내쫓고 한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성했단 기록만 등장하는, 발해와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철저히 잊혀진(?) 나라.

   이 신화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의 역사를 실존의 역사로 이끌어 내기 위해 저자는 여러 역사책에서 근거를 찾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역사를 기록했던 역사책들이 사라져 버린 불행으로 우리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책에 나타나 있는 기록에서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중국 역사 기록의 철칙인 '爲國諱恥'에 따라 쓰여진 그들의 역사책에서 우리의 모습을 진실되게 찾아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저자는 그 속에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서 조목조목 고조선의 실재적 역사에 대해 규명하고 있다.

 주변 국가들에 의한 우리 역사 왜곡에 대해 공분하면서 진정 우리 내부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는 몇몇 뜻있는 학자들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심지어 공무원, 대학, 온갖 시험에 '영어'시험은 필수여도 '국사' 시험은 필수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아끼지 않는다 남이 아껴 주겠는가?  우리 역사를 찾아 열심히 국민들에게 알리던 방송 프로그램마저 시청률이란 괴물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다. 

 이런 현실의 답답함은 뒤로 하고 책 속에 부록으로 들어 있는 고조선의 강역 지도를 보면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질 것이다.

담백한, 그리고 솔직한 생에 대한 감동

책만 보는 바보 ㅣ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어릴 적 꿈이 그냥 방에 앉아서 책만 보고 사는 것이었던 내게 '책만 보는 바보'란 제목이 꼭 날 가리키는 것 같아 씨익 웃고는 주저없이 주문했다. 책 제목이, 그리고 정조 때 서얼 출신으로 왕의 신임을 얻어 규장각 검서관으로 일했던 이덕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엄격했던 조선시대의 적서차별의 설움을 함께 했던 그와 그 벗들에 대한 감동이 가슴 한 곳에서 물결쳤다. 서로의 어려운 처지를 항상 살피고, 자신의 자리에서 벗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는 그들의 우정과 인품에 가슴이 벅차오르며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이덕무의 집에 서재를 지어주던 친구들의 마음씀씀이, 책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해결한 이덕무를 위로하려 책을 팔아 술을 샀던 유득공의 마음씀씀이, 하나하나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난, 빈부를 떠난 그들의 우정을 느끼며 과연 내 주위엔 진정 벗이라 부를 만한 이가 몇이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과연 진정한 벗인가?'라는 질문에 가슴 속에서 맴돌았다. 내 가난했던 시절에 함께 했던 벗들은 무얼 하는지...내가 그들을 이렇게 잊고 살만큼 각박한 생활이, 나의 무성의함이 못내 원망스러워지고 지나온 시간들이 후회되고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국사 책에서나 대함직했던 한 시대를 살다간 선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조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과연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 본다. 불우한 환경에 태어났으나 솔직하고 담백하게 인생을 살았던 이덕무라는 사람의 매력에 푹 빠져 책을 손에 든 채로 읽었다. 나는 앞으로 남은 생을 어찌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에 담겨 있는 한시들의 원문까지 있었으면 훨씬 책의 맛을 제대로 더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