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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애호가로 가는 길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오래 기다려 받은 책.. 생각보단 책 크기가 크지 않다. 아담하니 부담없이 읽기에 좋겠다.
부제가 ‘왕초보 개미애호가를 위한 컬렉션 안내, 그림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이다.
표지의 다채로운 그림들이 화려하게만 느껴지는데.. 과연 이 책은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
표지를 넘기자 작가 소개가 나와 있는데.. ‘이민간 지 30년이 넘었다’ 라는 말에 살짝 거부감이 느껴진다. 으흠.. 아무리 작가의 모국어 사랑이 유별나다 해도 먼 곳에 있으면 맘이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혹 문체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림에 대한 사랑,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가의 그림 수집 이야기.. ‘그림치’로서 ‘고향과의 만남’을 위해 시작한 그의 그림 모으기는 이제 근 10년을 넘겼다. 그동안의 경험과 느낌, 화랑 또는 큐레이터와의 인연 소개, 편안한 그림 감상법, 수집 가이드 등을 모아 책으로 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을 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평범하게 시작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고 내용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미술은 결코 어렵기만 한 전문분야가 아니며, 미술품은 반드시 비싸지 않으며, 미술품 수집은 가진 자들만의 돈잔치가 아니라는 것..
사실상 그림을 보고 즐기며 그와 관련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고.. 하지만, 정작 그림을 내 것으로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우선은 고정된 내 수입에 턱없이 높은 가격이 걸림돌이고, 안목 없이 샀다가 좁은 집에 거는 곳이 마땅치 않아 짐이 될까 염려스러운 마음 또한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용기 없는 나.. 아마 앞으로도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참 힘들 것 같지만.. 그런 나를 별 자책감 없이 스스로 인정한 후 이 책을 읽으니 부담도 적어지고 그냥 작품만, 내 마음에 와 닿아 인연맺기를 원하는 작품만 눈에 들어온 것 같다.
남들도 다 아는 몇몇 서양화가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한국 작가들은 참으로 거리감 멀게 느껴진다. 하물며 근대도 아닌 현대 작가들은 더더욱.. 이런 문외한에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맛 볼 행운을 선사해 주다니..
김수익, 김원숙, 김혜옥, 류원복, 민병헌, 백승기, 서도호, 안윤모, 안창홍, 이만익, 이호신, 임효 등의 작가들.. 아마 이 책이 아니었으면 어찌 그 분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찌 미술정보 포탈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을 수 있었겠나.. 앞으로 이 분의 생활처럼 이런 사이트를 들락날락 자주 찾을지는 자신 없지만, 그래도 턱하니 자리잡은 목록을 보니 이미 마음만은 그림 부자, 에술 애호가가 된 듯하다.
작가는 유명작가라고 덜컥 사는 행동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을 한다. 유명도, 가격을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테마를 정해 사 모아야 오래 갈 수 있다는 충고와 함께..
나 또한 90여점이 넘는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풍이 무엇인지 어떤 테마가 내 가슴을 울리는 지 약간씩은 느낌이 온다. 그리고 욕심이 생긴다. 아.. 이 그림은 현관 앞에다 걸어놓고 오며가며 보고 싶다, 아.. 저 그림은 내 책상 머리맡에 가까이 두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씨익 웃음을 일으키는 용도로 사용하고 싶은데.. 음.. 저 색은 왠지 모르게 나를 치유해 주는 것 같은데.. 등등등..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분의 문체.. 삶이 녹아있는 듯한 그 분의 깊이 있는 말투는 읽으면서도 내내 어떤 분일까.. 스스로 30년째 미국 작은 소도시에서 잡화상을 하고 있는 평범한 이라고 말은 하고 있으나, 화려한 주변 인연들이라든지 녹녹지 않은 글투, 작품을 보는 안목 등으로 인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예전, ‘소리의 황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축음기, 스피커에 갑작스런 관심이 발동하더니.. 이제 이 책을 읽은 오늘.. 나는 그림 수집에 이제 슬며시 맘이 간다. 어쩌나.. 비록 현실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어쩌면 나도 그림 애호가의 길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저 벽에 그림 한 점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