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피카소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4
염명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모학습지에서 아이의 기초계산력을 강조하는 문구로 피카소의 데생실력을 떠오르게 한다. 이 말은 피카소의 실력을 알아야 공감이 가는 듯한 말일지도 모른다. 책에는 이렇게 소개 되어 있다.

피카소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그림을 그릴 줄 알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가 "연필"이였다.
10세 때 이미 아버지를 능가하는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피카소는 14세 어린 나이로 바르셀로나 혼자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 후 16세까지 스페인 미술학교의 모든 콩쿠르를 거의 다 휩쓸어 버려 더 이상 치러야 할 시험이 없었던 피카소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결코 어린아이다운 데생을 하지 않았다. 난 13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사진처럼 똑같이 사진보다 더 예쁘게 그림을 그리던 그 시대의 수준에서 보면 수많은 문제작들을 그리고 조각한 창조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네티즌이 피카소는 여자문제가 복잡해서 싫다고 인터넷에 올린글을  본 적이 있다. 후후^^

하지만 작가는 글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입체주의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이나 세악사를 보면 신선한 충격이다. 중간 중간 피카소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그림 감상도 볼만하다.그리고 피카소는 기성품을 새로운 발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못쓰게 된 자전거 핸들과 가죽으로 소의 머리를 만든것도 신선했고 만년에 만든 도자기 작품은  도저히 상품으로 못 쓸만큼 실용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재미있었다. 피카소도 전쟁을 겪었는데 미국으로 오라는 초청을 마다하고 꿋꿋이 파리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독일군에게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약간의 꾸며진 이야기일지라도 민족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 평화를 사랑했다는 점이 좋게 보였다. 

피카소는 야구계의 베이브루스나 영화계의 찰리 채플린처럼 근대 미디어가 창조해준 미술계의 영웅일질도 모른다. 말년엔 피카소답지 않은 태작도 많았고 여심을 이해하지 못한 그의 성격도 별루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히 알거 다 아는 12세 버젼 책이구 피카소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싶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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